의도하지 않았던 '작품'덕 새로운 질서 만들어 내며
탑의 도시로 우뚝 선 피사

'시칠리아가 섬이 아니고 육지였다면 역사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별일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까짓 것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이나, 한니발이나, 염전이나, 지평선이나, 영화의 대부나 하는 것들도 그대로 있었겠지만 '이따위' 그리움이라는 것까지도 그대로일까에 내 생각이 멈춘다.

시칠리아는 이상과 상상과 그리움은 같은 본향으로서 명장 한니발이나 그보다 더 나았다는 알렉산더라도 단 칼에 베어 버리지 못하는 불멸의 사신이었으니. 몸서리가 쳐진다. 육지가 아니라는 것에 긴장이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 속에 녹아 있는 그 그리움은 어떻게 하라고. 메시나 항구에서 멀어져 가는 괴테도 결국은 그리움 가득 담은 사람인 것을.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그리움 가득 담은 여행 가방에 걸터앉은 여행자였던 것을. 멀어져 가는 항구와 해변에 솟아나 있는 암벽들도 〈오디세이〉에 나오는 두 괴물 카리브디스로 보이고 스킬라로 보였다. 베르테르는 이상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저곳'이라는 이상(理想)이 '이곳'의 현실(現實)이 되어 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핍과 절박함 속에 머물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사라져 버린 활력소를 또다시 갈망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이른 아침부터 빌라 산 지오반니 역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이 도시는 적어도 여행자들에게는 로마 못지않은 중요한 곳이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장화의 코와 같은 이 도시를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다른 몇 군데 항구나 공항이 있지만 그래도 만만한 곳은 이곳이다. 새벽 같은 아침 6시20분에 배낭을 메고 역으로 오면서 이 동네가 수고에 비하여 저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좀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외형으로 도시를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해 버린 것 같았다.

빌라 산 지오반니에서 피사까지의 거리는 대략 1100km, 우리나라 부산에서 서울까지 거리의 세 배에 달한다. 이탈리아에 온 이후 가장 빠른 기차를 탔다. 아침 7시에 출발한 기차는 연착 없이 오전 11시37분에 로마 테르미니 역에 나를 내려놓았다. 피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21번 플랫폼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20분밖에 안 된다. 군대에 갓 입소한 훈련병처럼 배낭을 메고 각개전투를 하듯 21번 플랫폼이라는 진지를 향해 여행객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 피사의 사탑. 1173년 착공 후 3층을 올린 상황에서 탑이 기울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공사가 중단됐고 그 후 3차례에 걸쳐 근 200년 동안 공사가 계속되었다. 현재의 기울기는 5.5도다. /조문환 시민기자

◇쓰러져가는 탑

테르미니 역에서 다시 세 시간 만에 교과서에서만 봤던 피사에 도착했다. 사탑으로 유명한, 아니 아는 것이라고는 사탑밖에 없는 내게 피사는 가는 빗방울을 뿌리며 맞이해 주었다. 피사 역에서 불과 300m 거리에 있는 삼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배낭을 침대에 던지기가 무섭게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솔페리노 다리(Ponte Soleferino)를 건너 사탑으로 향했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도심지는 텅 비어 있는 듯하였지만 사탑이 있는 피사 대성당은 인파로 붐볐다. 생각보다 탑의 규모는 컸다. 기울기도 아찔할 만큼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인파는 성당과 그 주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실패한 작품'인 쓰러져가는 탑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쓰러져 가기에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이상한 사람들의 집단과 같았다. 손으로 받쳐 보는 사람, 등으로 밀어 보는 사람, 줄로 당겨 보는 사람 가지가지였다. 이 탑을 구원해 보겠노라고 세계 각지에서 밀려든 것이다. 쓰러져 가는 탑보다는 오히려 애쓰면서 세워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동작들이 내게는 더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다음 날 피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루카(Lucca)로 가기 위해 장난감 같은 기차에 올랐다. 피사에서 루카까지는 전용 노선이 설치되어 있어 기차가 시간 단위로 운행되었다. 루카의 구 시가지는 거의 타원형의 옛 성벽(mura)으로 둘러싸여 신시가지와 뚜렷이 양분된 동네였다. 이제 그 성벽은 하나의 산책길이 되어 주말을 맞아 시민들이 산보와 조깅을 즐기고 있었다.

성 피에트로 문(Saint Pietro Gate)을 통하여 높이가 12m인 성벽으로 올라가 4km의 순환도로를 걸어서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에는 느린 걸음으로 두 시간이 걸렸다. 루카에도 크고 작은 탑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구이니지 타워(Guinigi Tower)는 이 도시의 대표적인 탑으로 4유로를 내고 올랐다.

▲ 피사 중심부를 흐르는 아르노강의 아름다운 노을. /조문환 시민기자

◇탑의 도시

이탈리아에는 탑이 있는 도시들이 많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도시가 볼로냐다. 특히 볼로냐의 투 타워는 이탈리아의 많은 탑들 가운데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높이뿐 아니라 아찔한 기울기가 아래에서든지 탑에 올라서든지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이 투 타워는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사탑이다. 당시에 탑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요새의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나 후에는 가문 간의 세력 다툼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높이로 경쟁을 하던 것이 의도적인 기울기를 통하여 그 기술과 재력을 뽐내고자 했던 것이다.

피사의 사탑은 이와는 그 태생이 다르다. 1173년 착공 후 3층을 올린 상황에서 탑이 기울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위기 중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수치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쳐 근 200년 동안 공사가 계속되었다. 현재의 기울기는 5.5도다. 그러니까 수직으로 한다면 4.47m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다.

피사와 루카, 볼로냐는 모두 탑의 도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유독 피사만이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의도하지 않은 '실패한 작품' 때문이다. 출생 신분 자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자칫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할 비운의 탑이 될 뻔했지만 오히려 피사의 사탑은 서자(庶子)의 신분에서 적자(嫡子)로 살아남아 있다. 더 높은 위용을 자랑해야 할 볼로냐의 투 타워도 피사의 사탑에는 대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울기 자체가 덜하고 사각의 생김새가 원뿔의 대리석인 피사의 사탑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도적으로 기울기를 준 것이 오히려 사생아가 될 뻔했던 '사고 쟁이' 피사의 탑에 밀리고 말았다.

세 도시를 다 가보고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피사의 사탑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물며 루카의 탑들을 누군들 기억해 주겠는가? 탑의 높이나 출생 연도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얼마나 그들에게 불안한 즐거움을 주는가, 내가 어떤 포즈를 취해 줘야 이 불쌍한? 탑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피사에 이 잘못 탄생한 탑이 없었다면 세상 사람들은 피사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아마 피사를 그냥 그렇고 그런 도시로 기억할 뿐이리라.

▲ 루카의 산 미켈레 성당. /조문환 시민기자

◇파문과 새로운 질서

오늘의 피사가 피사 된 것은 서자로 잘못 태어나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할 뻔했던 그 부끄러운 사고 때문이었다. 잘나가던 도시에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의 수치스러운 파문을 던져 놓았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과 수치가 가문의 영광이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그것을 알았더라면 루카의 모든 탑들도 오늘날 다 드러누워 있을 것이다. 볼로냐나 산지미냐노의 탑들도 높이의 경쟁이 아니라 기울기 경쟁의 장이 되었을 것이다.

의도적이었든 사고였든 파문은 새로운 질서를 태동시키고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 파괴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지난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괴테가 그랬듯이, 그의 잠행으로 명문가에 파문을 일으켰을 수 있었듯이, 그의 말대로 이탈리아와 로마를 통하여 다시 태어났다고 했으니. 나는 자진하여 나에게 파문을 던졌다. 피사의 사탑은 아닐지라도 나의 작은 파문으로 새로운 질서가 생기고 잔잔한 파문이 호수에서 물을 마시는 새들과 작은 짐승들과 물고기들에게 이 호수가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만한 호수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면 나의 파문은 그것으로 가치 있지 않을까? 오, 나의 작은 파문이여, 잔잔히 퍼져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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