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학생이기 전에 이미 인간
교육청, 학생인권 보장 앞장 당연

어느 날 중학생인 딸이 며칠 점심을 못 먹었다며 투덜거렸다. 학교 체육복을 입고 급식소에 못 들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학교 오케스트라 연습 때문에 급히 급식소를 찾았지만,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의 엄한 모습에 차라리 굶고 연습에 참여하였다는 것이었다. 학생생활규정에는 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는 복장은 교복 및 학교 체육복으로 규정이 되어 있었다. 학교에 전화했을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학생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였다. 끝내 아이의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당당하게 대처하기가 참 어렵다. 이같이 여전히 학교에서는 학생지도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권리들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

바야흐로 지금은 경남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자 하는 요구가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제법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물론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교육적으로 학생의 인권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당시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똑같은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촛불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한층 발전된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는 아직 민주적인 학교문화로 발전해 가는 데 더디기만 한 것 같다. 일부에서는 학생의 인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학생의 인권은 제한되어야 한다'라고 한다. 이는 학생은 학생다운 존재가 되어야 하고 학생답기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사람이 되어가는 존재가 아닌 이미 사람인 것이다.

한편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측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저변에는 교사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느껴져 불편하다. 지금 많은 교사가 학생을 중심으로 배움과 성장을 위한 '배움중심수업'을 통해 노력하고 있고, '회복적 생활교육' 등을 통해 더욱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가치를 가진 생활교육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은 믿음이다. 학생이 바람직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교사들은 오늘도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함께한다. 학생인권조례도 마찬가지이다. 조례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사들이 교육적 가치 판단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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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존중받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 어렵듯이 인권적인 학교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이 인권적인 사회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생들에게 인간으로서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인권에 대해 교육하고, 학생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교육기관에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책무일 것이다. 법과 제도가 학생인권의 보장에 아직 미진하다면 교육기관이 마땅히 학생인권의 보장을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이에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경남교육청의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면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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