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문화공간에서 '소확행'찾아줄 나침반 되길

2017년 5월에 시작한 수소문 연재가 만 2년을 맞았습니다. 새삼스럽게 말씀드리면 수소문은 '수상한(?) 문화부 기자들이 만든 소소한 동네 문화지도'의 줄임말입니다. 동네마다 '일상 속 예술'을 누릴 소소한 문화 공간을 찾아내, 경남의 새로운 문화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으로 시작한 거였죠.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모두 22장의 지도를 그려냈습니다. 이번 23회로 긴 여정을 끝냅니다. 인제 와서 되돌아보면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경남 곳곳에 숨은 장소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기자들이 행복했다고 고백하고 싶네요. 그동안 수소문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진주시민미디어센터(진주시 진주대로 506-1)

"경상대 학생들은 좋겠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 공간이다. 센터 내 상영공간 인디씨네에서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다. 매년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진주같은 영화제'도 열린다. 미디어 교육도 하고 청소년 대상 영화 모임도 한다.

◇회현종합상사(김해시 김해대로2273번길 46)

젊은이들은 '봉리단길', 어르신들은 '갓 스트리트(신의 거리)'라 부르는 작은 골목이 재밌다. 회현종합상사가 식당과 소품 가게 등을 열면서 유명해졌는데, 원래 점집이 많은 곳. 대나무를 꽂은 집과 '힙(hip)'함과 묘하게 어울렸다. 간 김에 사주라도!?

▲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가는 길 기세 등등한 129번 송전탑. /이서후 기자

◇밀양 129번 송전탑(밀양시 부북면 화악산길)

2008년 7월 25일 밀양시 대책위 송전선로 백지화 총궐기대회가 열리면서 기나긴 밀양 송전탑 투쟁이 시작됐다. 10년이 지난 2018년 7월 여름 길을 다시 걸었다. 129번 송전탑 근처를 지나 마을 안까지 둘러보고 차를 돌려 나오다가 마주친 압도적인 송전탑의 모습이란….

◇황해당인판사(창원시 진해구 백구로 21-2)

반성의 시간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좋아라 갔던, 진해군항마을의 역사와 아픔을 잊었던 망각의 길. 이를 일깨워 준 이는 손도장을 만드는 정기원 할아버지였다. 도장을 찍듯 기억해야 할 것은 절대 잊지 않으려는 어르신의 얼굴이 선명하게 남았다.

◇돌창고 프로젝트(남해군 삼동면 봉화로 538-1)

2016년 시골에서 예술로 삶의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이들은 3년 만에 돌창고의 관람료 수입만으로 전시를 기획·운영할 수 있도록 자립했다. 돌창고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한 이들의 성장이 놀랍다. 남해군은 청년 문화예술인으로 청년 인구 비율을 높이려는 계획까지 있단다.

◇만초집(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서1길 16)

"조남융 어르신은 잘 지내는가요?" 마산의 노포를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 묻는 안부다. 조남융 부부가 운영하던 만초는 조금 달라졌다. 며느리가 일손을 돕기 시작했고 내부도 깔끔(?)하게 정돈됐다. 어쩌면 자신의 추억이 그대로이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통영시 충렬4길 33-5)

한옥게스트하우스 '잊음'이라고 수정해야겠다. 잊음 안에서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라는 책방을 열었던 책방 주인은 삐삐책방을 따로 열었다. 그래도 한옥에 있던 서재는 그대로다. 눈이 펑펑 오는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찾아 정원을 보고 싶은 집.

◇카페 정미소(사천시 진삼로 150)

진삼로에 사는 주민 말을 빌리자면 이상한 게 생겼단다. 정미소였는데 어느 날 뒤편을 보니 커피집과 갤러리, 도서관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관광지도 아니고 젊은이가 사는 동네도 아닌데, 복합문화공간이라니. 더 놀라도록 옛 삼천포 여기저기에 더 생겨나길.

▲ 2018년 3월 추웠던 탓에 노랗게 말라버린 잎이 무성한 하동 매암차문화박물관 차밭. /이서후 기자

◇매암차문화박물관(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346-1)

지난해 3월 몹시 추워 냉해를 입은 차밭은 연둣빛을 잃었다. 하지만 박물관 옆 매암다방에서 마신 차는 싱그러웠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국내 차문화의 출발지인 하동의 역사는 놀라웠다. 녹음이 짙기 전 지리산과 섬진강, 녹차밭을 꼭 보러 가겠다는 다짐은 어쩌지.

◇거제초등학교(거제시 거제면 읍내로2길 20)

학교에서 감흥을 받았다고? 맞다. 1907년 개교한 거제초등학교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건물 재료로 쓰인 화강암을 손수 채석한 아저씨, 헌금을 선뜻 낸 이웃 아주머니들. 개교 100주년을 맞아 세운 탑과 공원이 전혀 멋쩍지 않다.

◇함안 고려동유적지(함안군 산인면 모곡2길 37-10)

"여기는 고려땅이다!" 고려 말 성균관 진사 이오는 고려가 망하자 충절을 지키고자 함안군 산인면에 은거지를 정하고 담을 쌓아 고려 유민을 자처했다. 600년이 지난 지금, 그 높은 뜻은 고려동 유적지로 남아 있다.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맞이한 따뜻한 햇볕이 좋았던 곳이다.

▲ 남해군 남면 덕월리에 있는 이터널 저니 남해점. 책 선별이 독특했던 곳. /이서후 기자

◇아난티 남해 이터널 저니(남해군 남면 남서대로 1179번길 40-109)

딱딱한 서점이 아니다. 이국적이고 세련됐다. 눈에 띄는 구역은 '이터널 저니가 읽고 있는 책들'. 직원들이 직접 읽고 쓴 책 추천사는 정겹기까지 하다. 서점 외에도 키즈존, 라이프스타일존이 있다. 책 구매 시 아난티 앱을 내려 받으면 10%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고성 장산숲(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230-2)

기대 없이 갔다가 더 없이 만족했던 숲이다.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느티나무, 서어나무 등 200여 그루가 서로 맞대며 연못 가운데 작은 정자를 향해 뻗어있다. 그야말로 깊은 세월의 느낌이 묻어난다. 숲은 조선 초기 김해 허씨 문중이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창원 아틀라스 로스터스(창원시 의창구 도계두리길 8)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도리단길 편을 취재할 때 가장 먼저 찾아갔던 곳이다. '전기'라고 쓰인 낡은 간판을 그대로 살려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카페다. 아틀라스란 이름보다 '전기집'으로 불린다. 커피 로스팅이 중심인 곳이라 신선한 원두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창원 돝섬 내 '인터레이스' 조각(창원시 마산합포구 돝섬)

2012년 시작한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매년 영구 설치 작품을 곳곳에 남겼다. 그중 창원시 마산합포구 돝섬에 2012년에 설치한 '인터레이스'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벽돌, 강철, 시멘트로 만든 일종의 미로형 계단을 따라가면서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거창 구연서원(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거창 수승대관광지 안에 있는 서원.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서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었다.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뜻밖에 운치가 좋다. 출입구 노릇을 하는 관수루가 바위 위에 들어앉은 모양새도 좋고, 서원 안에는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비석들도 인상 깊다.

◇곽재우 생가(의령군 유곡면 세간2동길 33),

평일 오후였고 추운 날씨 탓에 인적이 드물었다. 그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그래서일까. 곽재우 생가 뒤 대나무숲 색깔과 하늘빛이 그날따라 참 예쁘게 보였다. 곽재우 생가 마루에 앉아 그를 떠올린다. 그의 직설적이고 호탕한 성격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집이다.

◇진주 옛 진주역(진주대로891번길 57)

2018년 10월 3일 타계한 허수경 시인.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에 다녔던 시인의 흔적을 따라갔다. 젊은 날 시인은 저녁 무렵이면 진주역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시인이 가난한 역으로 기억했던 진주역은 이제 폐역이 됐다. 쓸쓸한 흔적마저도 이제 시인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 2018년 11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합천 해인사 앞 산채정식 특화거리 풍경. /이서후 기자

◇합천 해인사 앞 상가 단지(합천군 가야면 치인1길)

2018년 11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합천 해인사의 가을 풍경을 찾아갔다. 점심을 해결할 생각으로인근 산채정식 특화거리로 향했다. 이 거리가 뜻밖에 인상이 깊었다. 옛 건물 안에 새로 생긴 상가, 오래된 간판과 새로운 간판이 주는 대비가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켜서다.

◇양산 통도사 자장암(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에서 가장 오래된 암자. 자장율사가 수행했던 거북바위를 건물 안에 끌어들이고, 높이 4m 마애불을 훼손하지 않으려 맞배지붕 방식을 도입한 관음전의 정성에 한 번 놀라고, 자장암 벽에 서양화가 이목을 선생이 선과 점으로만 그려낸 부처의 미소에 두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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