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남자 스포츠?…일제강점기 진주서 깨진 관념
마산의신-진주시원여학교 대결 〈동아일보〉 '조선서 처음' 보도
선교사들, 학교에 야구 등 보급해 여학생도 자연스레 신문물 수용

◇진주서 전국 최초 여자야구 경기 = '마산야구'는 1914년 창신학교(현 창신중·고) 야구부 창단을 통해 태동했고, 이후 1921년 마산구락부 운동장을 중심으로 꽃을 피워나갔다. 이후 1920년대 중반 우리나라 야구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이 있었다. 마산의신여학교(현 의신여중)가 진주시원여학교(1939년 폐교)를 찾아 '전국 최초 여자 야구 경기'를 한 것이다.

1925년 3월 5일 마산의신여학교 교사 4명과 학생 14명이 진주를 찾았다. 이들은 다음날인 6일 오전 11시 진주시원여학교 운동장에서 이 학교 학생들과 야구 경기를 펼쳤다. 마산의신여학교는 1회부터 7점을 뽑으며 기세를 올렸고, 결국 48-40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 <동아일보>는 1925년 3월 14일 자 신문에 마산의신여학교-진주시원여학교 여자야구 경기 관련 내용을 담았다. 소제목의 '조선 처음'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동아일보는 1925년 3월 14일 자 신문에서 '여학생의 야구전'이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을 다뤘다. 특히 '여자 야구전은 이번이 조선에 처음임으로 상당한 흥미를 끌었다'고 적어놓았다.

<한국야구사 연표>는 이 당시 경기를 '조선 최초 여자야구 경기'로 공식화하고 있다.

이 경기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9회까지 진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그 외 좀 더 자세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이후 마산의신여학교·진주시원여학교의 '여자야구 명맥' 관련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흩어져 있는 여러 상황을 하나하나 모아보면 유추 가능한 대목들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마산의신여학교'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산의신여학교' 뿌리는 이 지역 야구 시초인 창신학교에 있다. 호주 선교사들이 1906년 설립한 창신학교는 1908년 개교 당시 '남녀 공학'으로 운영됐다. 여전히 유교 사상이 지배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실제 운영은 순탄하지 않았다. <창신 90년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술해놓고 있다.

'막상 그것을 운영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중략)…서울에서 초빙된 남승 선생은 학생지도를 하는데 어찌나 엄한 분이었던지, 교실 안에서 어쩌다 눈만 한 번 돌려 여학생을 보아도 벌을 주고, 또 운동장에 나와서 놀 때도 남녀를 별도로 놀게 할 뿐만 아니라, 남학생 공이 여학생 노는 속에 들어가면 여학생이 주워 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는 등….'

창신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반기를 들었고, 결국 해당 교사 사임까지 끌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창신학교는 남녀 공학에 따른 어수선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결국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여학교를 독립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913년 4월 5일 개교한 마산의신여학교였다.

이 학교 역시 호주 선교사 이름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들이 여자 야구 씨앗 역할을 했다.

마산의신여학교 초대 교장은 호주 선교사인 '아이다 맥피(한국명 미희. 1881~1937)'였다. 이후 호주 여성 선교사 몇몇이 교장직을 이어가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 있다.

'에디스 커(한국명 거이득. 1893~1975)'는 1924년부터 1927년까지 마산의신여학교 교장을 지냈다. 그는 이 시기 전후로 역시 호주 선교사 학교인 진주시원여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즉, 그가 1925년 여자야구 친목 경기를 펼친 두 학교 간 연결고리를 두고 있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을 좀 더 풀어보면, '마산의신여학교 올해 졸업생들이 경기 전날 진주에 도착했고, 경기 다음 날에는 진주 곳곳을 견학했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졸업 시기는 3월 말이었다. 즉, 마산의신여학교 졸업 예정자들이 일종의 '수학여행' 형식으로 자매 학교인 진주시원여학교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진취적 기상' '신문물 갈망' 속 잉태 =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운동 경기, 그것도 야구를 한 배경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김부열(57) 현 의신여중 교사는 이런 얘길 전했다.

"'에디스 커' 관련 기록을 찾아보면 한 가지 의미심장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디스 커가 여성들에게 농구를 가르쳤다'는 설명과 함께 관련 사진 하나가 나옵니다. 사진은 치마 입은 여학생들이 작은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에디스 커가 마산의신여학교·진주시원여학교에서 근무했으니, 두 학교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진주시원여학교 운동장 규모는 야구 경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컸습니다. 다른 사진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죠. 이를 고려할 때 농구 장면은 마산의신여학교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즉, '에디스 커'가 여러 운동을 여학생들에게 가르쳤고, 그것이 1925년 3월 마산의신여학교-진주시원학교 야구경기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론해 볼 수 있다는 거죠."

또한, 당시 호주 선교사들은 창신학교 야구를 위해 본국에서 관련 용품을 공수해 오기도 했는데, 그러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의신여학교로까지 스며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 마산의신여학교는 1925년 3월 6일 오전 11시 진주시원여학교와 야구 경기를 펼쳐 48-40으로 승리했다. 당시 경기가 펼쳐진 곳은 진주시원여학교 운동장이었다. 사진은 1920년대 진주시원여학교 운동회 모습으로 야구 경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운동장 규모다. /2013년 9월 '경남근대사진전’ 당시 경남도 제공 사진(원 제공자: 호주 교민 신앙교양잡지사 <크리스천리뷰>)

김재하(61) 현 창신고등학교 교사는 이렇게 전했다.

"당시 의신여학교는 창신학교와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남매학교였습니다. 이는 창신학교와 마찬가지로 호주 선교사들 영향으로 신문물에 열려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산시 체육사>도 당시 두 학교 간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사립창신학교와 사립의신여학교는 같은 재단인 관계로 연합체육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중략)…1927년 5월 17일에는 연합춘계대운동회를 마산구락부운동장에서 개최하였다. 창신악대의 주악과 교장의 개회사가 있은 다음에, 연합 체조를 비롯하여 60여 종의 경기가 진행되어 수천 관중들이 환호하였다.'

마산의신여학교의 진취적인 분위기는 좀 더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이 학교 교사·학생들은 창신학교와 함께 1919년 3·1운동 선봉에 나섰다. 박순천(1898~1983) 교사 같은 경우 직접 태극기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사는 훗날 최초 여성 국회의원, 민주당 총재로 활동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박영주(59) 지역사 연구가 얘기다.

"마산지역 3·1운동 특징 중 하나가 여학생들이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여학생 22명이 결사대를 조직해 태극기를 그리는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죠. 큰 가두시위가 세 번 있었는데, 여학생들이 두 번째 시위 때까지 가두행렬 앞에 섰습니다. 그러한 진취적인 정신이 몇 년 후 '여자 야구'라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김부열 교사도 비슷한 풀이를 했다.

"호주도 영국 지배를 받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호주 선교사들이 일제 강점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좀 더 각별한 마음을 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당시 의신여학교에서 여성 평등권을 심어주려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하는 스포츠를 여자가 못할 리 없다, 우리도 해보자'는 분위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선진 문화에 대한 갈구도 컸던 것 같고요. 야구·농구와 같은 스포츠가 그 도구 가운데 하나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한편 1925년 11월 3일 자 <동아일보>는 당시 여자야구 관련 기사 하나를 다뤘다. 미국여자야구단이 일본에서 원정 경기를 펼쳤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여자들로서 그와 같은 야구단이 조직돼 있다는 것은 진기한 일이오, 또한 여자들 운동경기가 그만큼 발달되었다는데 있어서 일반의 흥미를 끈다'며 당시 여자야구에 대한 시각을 담았다.

이 미국여자야구단은 얼마 후 한국에도 왔다. 우선 11월 21·22일 일본팀인 경성일본사람야구단과 시합을 했다. 그리고 23일에는 당시 남자 야구 국가대표급인 서울군과 경기를 펼쳐 5-7로 패했다. <동아일보>는 서울군과의 시합 분위기를 한 면에 걸쳐 특집 형식으로 다뤘는데 '우리 여자 운동계에 얼마나 자극과 영향을 주고 갈지 매우 흥미 깊은 시합'이라고 했다.


※참고 문헌

-<창신 90년사>, 창신 90년사 편찬위원회, 1998

-<마산시 체육사>, 조호연 책임 집필, 마산시, 2004

-<마산시사>, 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한국 야구사 연표>, 홍순일 편저, KBO·대한야구협회, 2013

-김부열 마산의신여중 교사 소장 자료

-경남야구협회 소장 자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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