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자리보다 반짝이는 눈 마주할 시간 선택
아이와 함께할 순간 놓칠까봐, 고민 끝에 백화점 제안 거절
다른 삶 제시하는 유혹들 넘쳐, 매 순간 경고등은 딸들의 눈빛

얼마 전부터 팔꿈치가 아팠다. 시간을 내어 손님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은 자주 뵙지만, 언제나 예의를 차린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팔꿈치를 눌러보면서 안부를 물었다. 골프 엘보라고 진단을 내렸다. 나는 억울했다. 골프채를 잡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포터 필터와 골프채 손잡이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커피 찌꺼기를 제거하는 동작과 빠르게 반복하는 설거지가 원인이었다.

나는 컵 세척을 많이 하는 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나처럼 약간의 통증을 가지고 있지 싶다. 우리는 구조상 식기 세척기를 둘 수도 없고, 양심상 고된 노동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팔뚝에 압박 밴드를 차고 일을 하고 있지만, 약간 두렵다. 맥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다.

살면서 문제가 없는 날은 없지 싶다. 봄은 그 자체가 찬란하지만, 꽃가루와 미세먼지가 걸린다. 밤이 훈훈해질 무렵이 되면 강변에서 시작된 모기가 달려든다. 가을은 마음이 곡선을 그리고, 겨울은 손이 시려서 싫다. 계절의 순환처럼 삶도 그렇지 싶다.

▲ 아무리 바빠져도 별빛은 보고 싶다. 별과 같은 두 딸과 시간을 보내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듯싶다. /정인한 시민기자

◇이십 대

안온한 날이 줄줄이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지 자체가 문제, 백수일 때는 자기만의 시간이 너무 많아서, 직장이 생기면 과한 업무에 치여서 이직과 퇴직을 바란다. 부모가 되면 응당 가족을 위해서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해서 자연스럽게 피로가 쌓이고 때때로 잠이 부족하다. 그러다 어디가 아프거나 말 못 할 고민이 생기면 옛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이십 대 시절, 나는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작은 울타리 안에서는 구속되지 않았다. 친구도 많았다. 불러주면 어디든 가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의 불안을 고백했다. 고독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서 동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머리가 좋고 스타크래프트를 제일 잘했던 영호는 신림동으로 들어가서 고시 생활을 시작하고, 키 크고 잘생긴 민호는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 작은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다. 중간 즈음의 어설픈 나는 동생의 하숙집과 노량진을 오가면서 지하철에서 교육학책을 읽었다. 성실과 나태는 자기의 영역으로 우리들을 끌어당기려 했다.

장래 희망을 이룬 녀석들은 아무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이었다. 꿈을 향해 달리던 시절, 우리는 가끔 만나서 소주를 마셨다. 언젠가 민호가 교환학생이 되어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는 양주를 마셨다. 어떤 날은 그렇게 필름이 끊어지도록 마셔야지 미래를 마주할 용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바닥까지 내려가서 맨땅에 완전히 누워버리면 편했다. 밤하늘이 훤히 보였다. 날숨은 꿈에 닿을 것 같았다.

▲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정인한 시민기자

◇목표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첫째의 태명은 별이다. 우리 부부는 작은 원룸에 살았다. 다들 그렇게 시작하니까,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이 기적 같다.

왜냐하면 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미래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없었고, 건실한 것은 몸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일하고 돈을 벌고, 조금씩 집을 크게 키워서 딸의 방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집중했고 아직 이룬 것은 없지만, 인간관계는 단정해졌다.

선비 같은 나의 하루는 당연하다. 결심이 누적되고 행동이 쌓인 결과다. 나는 그런 토대 위에 산다. 어떤 날은 유혹이 있기도 했다. 다른 삶을 제안하고 더 큰 수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 사람의 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딸의 눈빛이 경고등처럼 마음에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서온이는 아침마다 묻는다. "아빠, 얼집가요?" 어린이집 가는 날이라고 묻는 것이다. 오늘도 둘째는 그렇게 물으면서 나에게 굴러왔다. 나는 그녀의 보드라운 몸을 꼭 안으면서 오늘은 아빠랑 놀자고 했다.

얼마 전에 부산에 있는 모 백화점에 자리를 제안받았다. 나는 고민을 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바빠져도 별빛은 보고 싶다. 별과 같은 두 딸과 시간을 보내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듯싶다.

주말은 돈을 버는 것보다, 마트의 시식코너를 도는 것처럼, 여러 놀이터를 돌아다니고 싶다. 배 모양의 놀이터, 성 모양의 놀이터, 모래가 있는 놀이터.

▲ 아내와 두 딸./정인한 시민기자

◇작은 것

어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교정 구석의 작은 연못에서 개굴개굴하는 소리가 연신 들렸다.

탁한 웅덩이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딸의 맑은 얼굴이 보였다. 그것이 우리 부부의 뭉친 어깨를 풀어 주었다. 서온이는 연애하는 개구리를 보며 어부바한다고 좋아하고 서우는 짝짓기하는 거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점심은 분식집에서 우동이랑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또 걸었다. 돌이켜보면, 올챙이 시절은 이렇게 피곤과 싸우지는 않았다. 졸리면 방석을 베개 삼아, 책상에 엎드려서 낮잠을 청했다. 오지 않은 여유로운 미래를 기다리며 살기는 싫다. 몇 년이 지나면 오늘이 저릿하게 그리우리라. 그저 함께 걷는 이 길에서 작은 것을 찾길 원할 뿐이다.

▲ 꽃을 안고 우는 아이./정인한 시민기자

어느새 온이는 아내의 등에 업혔다. 돌아오는 길의 운동장에는 야구공들이 허공에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별 같았다. 오늘따라 구름도 천천히 흘렀다. 고단했다. 그래서 잠시 벤치에 앉아있다 가기로 했다. 먼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픈 팔을 뻗어 그리움, 이기, 욕심 같은 것을 구름 속에 살짝 넣을 수 있을까.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흘러간다. 바람 덕에 내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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