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질문을 못 만들거나 못 던지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좋은 질문은 곧 불편한 질문이다. 즉 불편하지 않으면 기자가 아니다.

뭔가 있어 보이지만(?) 이런 신조로 수십 년을 산다는 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연인부터 가까운 친구·지인까지 가리지 않고 껄끄러운 질문을 쏟아내기 일쑤다.

간혹 참신하게, 소위 '에지(edge)있게' 봐주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질문에 그치지 않고 '평가', '분석', '대안제시'까지 하는 족속이 기자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옳고 그름 또는 좋고 나쁨의 잣대로 바라보고 자신에게 이러쿵저러쿵 '꼰대질'까지 일삼는 인간을 대체 누가 좋아하겠는가?

기자는 또 늘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닌 존재다. 다른 기자 기사를 베끼는 것만큼 기자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다. 이에 익숙하거나 완벽 적응한 기자는 기자는 기자되, '영혼 없는 기자'다. 공무원 사회에 윗사람이 시키는 일만 할 뿐 스스로는 연필도 못 깎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있듯이 말이다.

누군가 그래서 그랬다. 기자와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평소엔 속내와 진심을 나누는 사이인 듯하다가도 필요하면 그 친구를 '활용'할 수 있고 심지어 '배신'도 할 수 있는 게 기자라는 얘기다.

자랑스러운 <경남도민일보> 독자님들께 이런 '배부른 푸념'을 늘어놓는 건 기자들 나름의 고충을 헤아려주셨으면 하는 소망에서다.

백에 하나쯤 정말 눈에 띄는 기사, 어디서도 못 본 기사, 땀 냄새 물씬 풍기는 기사, 예리하고 깊이 있는 관점의 기사, 단어 하나 문장 하나까지 아름다운 기사를 만났다면 대개 위와 같은 '직업병'을 앓는 기자의 작품일 것이다.

오늘도 독자님들 주변에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되고자 발버둥치는 기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경남도민일보>가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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