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양육자도 차단하는 행위
차별 통해 쾌적함 추구 '위험'

복잡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먹을 메뉴가 있으며 아기 의자가 있는 곳. 가족 구성원 5명 중 3명이 어린이인 우리 집의 외식 장소를 고를 때, 맛보다 우선되는 기준이다. 계획된 외식일 때는 충분히 검색을 해보고 방문하지만, 간혹 갑자기 외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 주말이 그랬다.

밖에서 놀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을 넘겨버렸고, 눈에 보이는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잠과 허기가 함께 몰려온 쌍둥이들의 보챔이 시작됐다. 서둘러 공깃밥부터 주문해서 밥을 먹였지만,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어르고 달래다 못해 밖으로 나가 한참을 안아주었다.

결국, 우리의 식사는 스마트폰이 해결해주었다. 유튜브로 핑크퐁 영상을 보던 아이들은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마저 밥을 다 먹었지만, 속이 더부룩했다.

식당에서 우는 아이를 달랠 때 두 개의 시선이 엇갈렸다. 불쾌하게 쳐다보는 청년과 '아이가 그렇죠, 뭐' 하고 작은 장난감을 쥐여 주는 중년. 불편한 시선들을 뒤로하고 식당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달랬다. 우는 아이를 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보며 나는 그것이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를 만나거나 돌본 경험의 유무.

노키즈존이 대화의 주제로 오를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가족 또는 친구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보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자기 일이 되었을 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먹고사니즘'이 강력해질수록 타인에 대한 경계는 뚜렷해진다. 손해 보는 배려는 하고 싶지 않다. 불편하고 보기 싫은 존재를 일상에서 차단하는 것. 그것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중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이다.

노키즈존은 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양육자까지 함께 차단한다. 아이가 뛰어다녀도 돌보지 않는 양육자도 문제라고 말한다. 개인사업장과 양육자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놓고 교묘하게 제한하는 대상은 '키즈'로 국한한다. 아이들이 힘이 있다면, 적어도 아이들의 권리가 존중받는 나라였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인권위는 이미 노키즈존을 차별행위라고 판단하고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전국 800개가 넘는 사업체가 노키즈존을 선택했으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노키즈존을 선택하는 데는 어떤 기준이 없으며 아무런 규제도 없다.

흔히 최저 출생률을 거론하며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문제'라고 표현하지만. 아이와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좁은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서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 느낀다. 세상에 어린이를 배려하지 않는 곳이 많다는 것을. 많은 것이 어른의 편의에 맞춰서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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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의 작가 전이수 군은 노키즈존 식당에서 거절당한 경험을 하고 이렇게 썼다. "어른들이 조용히 있고 싶고 아이들이 없어야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생각한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 하는 그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차별을 통해 쾌적함을 추구하는 노키즈존은 사회의 위험한 신호다. 알면서도 우리는 공회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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