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다 아는 회의·토론 예절
'미래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데…

요즘 도덕 수업 시간은 참 재미있습니다. 활기가 넘칩니다. 지금 어른들이 윤리·도덕 배울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요! 저요!" 손 번쩍 들어 예절 바른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 말합니다. 토론 주제는 아주 다양합니다. '도덕은 필요한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은?' '북극곰은 왜 울까?' 개인과 이웃, 사회, 지구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재치 있는 말로 웃기는 아이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모두 개성이 넘쳐납니다.

얼마 전에는 '회의와 토론은 어떻게 해야 할까?' '회의와 토론을 하면서 지켜야 할 예절은?' 이란 주제로 의견을 나눴습니다. 사회자의 예절과 발언자의 예절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요점을 정리해봅니다. 사회자는 발언권을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어야 합니다. 발언자의 의견을 사회자가 자기 마음대로 고쳐서 설명하면 곤란합니다. 사회자는 최대한 짧게 말해야 합니다. 무안을 주거나 화를 내고 발언하는 도중에 강제로 중단시키면 안 됩니다.

발언자의 예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눕니다. 말하고 싶은 사람은 손 번쩍 들어 정식으로 발언권을 얻은 후에 발표해야 합니다. 자기가 제일 똑똑한 척하면서 발언 기회를 독점하면 급우들 사이에 인기가 뚝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신도 무슨 말 하는지 모른 채 긴 시간 얘기하면 순식간에 '바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남의 발언을 가로채서 장황하게 말하거나 투덜거리며 토론을 방해하는 행위는 '폭력'입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에 우선은 존중해야 합니다. '패드립'치면서 사생활 간섭을 하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지한 태도로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회의할 때는 서로 존댓말을 써야 합니다. 회의 중에는 함부로 돌아다니거나 큰 소리 날 정도로 문 여닫으며 들락날락해서는 곤란합니다. 회의가 맘에 안 든다며 교실 바닥이나 골마루에 드러누우면 쓰레기 취급당할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알고 보면 유치원 아이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도 다 아는 회의와 토론에 관한 예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회의와 토론 예절 '개무시'하는 어른들 때문에 부끄러워 제대로 얼굴 들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이들도 다 보고 있는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른들은 상대방 발언을 끝까지 듣지 않고 우르르 몰려가서 다짜고짜 따지기부터 합니다. 발언권에 대한 개념은 아예 없는 듯합니다. 큰 소리로 떠드는 걸 보면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모양입니다. 꼭 필요할 때 사회자에게 발언권 얻어서 말해야 하는 의사 진행 발언을 다짜고짜 남발합니다. 시간 끌기 위해 웃기는 지연작전도 펼칩니다. 어떨 때는 서로 발언하겠다며 싸우기까지 합니다. 상대방을 비웃으며 손가락질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볼썽사나운 광경이 밤낮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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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회의가 되어야 합니다. 독재는 타도되어야 하고 헌법은 수호되어야 합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끝났다. 죽었다!' 함부로 말해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민주주의는 펄펄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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