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소외된 교통환경, 쓰레기 분리배출 '미흡'
실내흡연·운전 중 통화…문화 충격 연속인 일상

베트남 출근 첫날. 퇴근한 남편이 입에 할 말을 가득 담은 채 현관에 들어섰다. "방금 무단횡단해서 왔어요!" '자랑이다…'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무려 10차로를 건너왔다고. 위험하게 왜 그랬냐고 하니, 통근버스 기사가 길 건너편에 내려줬는데 근처에 횡단보도가 없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횡단보도를 본 기억이 없다. 그러면서 베트남 동료에게서 무단횡단 팁을 얻어왔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Slowly Naturaly, 천천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건너면 된대요." 오토바이는 알아서 사람을 피해 가고, 차는 먼저 가도록 잠시 기다렸다 건너면 된단다. 그게 무슨 팁이냐고.

▲ 횡단보도가 없는 찻길을 익숙하다는 듯 건너는 보행자들. 양 옆으로 오토바이가 지나고 있다. /김해수 기자

◇찻길 걷는 사람들

다음 날에는 독일 직원과 문제의 '그 길'을 건넜다고 했다. 무단횡단 해봤느냐고 묻기에 어제 경험했다고 답하니 남편 뒤에 슬쩍 붙더란다. Igitt(이런)! 순진하긴. 다음에는 무조건 그 사람 뒤에 서라고 했다.

베트남 도로는 보행자에게 매우 불친절하다. 횡단보도를 거의 찾아볼 수 없거니와, 있다 하더라도 보행자 신호가 녹색불이라고 기다려주는 차량은 없다. 지하도나 육교는 베트남 살이 두 달이 다 돼가도록 못 봤다. 발견하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인도도 무의미하긴 마찬가지다. 만약 인도에 오토바이나 차가 세워져 있지 않다면 그곳은 십중팔구 공사 중일 것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베트남이 개발도상국이라 그런지 온통 개발 중이다. 이른 아침, 늦은 밤에도 드릴과 망치질 소리가 멈출 줄 모른다. 주말도 예외가 아니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외출을 하기도 한다. 정말 괴롭다. 공사 소음 때문에 죽겠다는 제보자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겠다. 다시 돌아와서, 횡단시설이 부족하니 직선거리로 걸어서 몇 분이면 될 곳도 차 없이는 이동할 엄두를 못 낸다. 때문에 차량과 뒤섞여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교통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후다닥 뛰어 빠르게 차도를 벗어나고 싶겠으나, 절대 금물이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뛰어난 거리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보행자가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걸어가면 피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갑작스럽게 뛰면 오류가 날 수 있으니,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조류에 몸을 맡겨야 한다.

아이러니하다. 시민사회부에 있을 때 그렇게 '무단횡단 위험'을 경고하는 기사를 써놓고, 무단횡단 팁을 공유하고 있다니.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별표 다섯 개!

▲ 큰 공사 장비가 인도를 차지하고 있어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김해수 기자

◇편함과 죄책감 사이

머무는 숙소는 우리가 첫 입주자로, 따끈따끈한 최신식 아파트다. 남편 혼자 쓸 계획이었기에 평수는 좁지만 전체적으로 화이트톤이라 깔끔하고 넓어 보여 마음에 들었다. 웬만한 고급 아파트에도 기본 옵션이라는 바퀴벌레, 개미, 도마뱀도 안 보인다.

첫날 집주인에게 아파트 이용 안내를 받으면서 분리배출 방법을 물었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쓰레기를 분류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꺼번에 봉투에 담아 각 층에 있는 지정 장소에 두면 된다고. 한꺼번에. 먹다 남은 밥, 망고 씨, 빈 생수통, 종이 안내문, 깨진 유리컵과 맥주 캔까지도.

분리배출은 굉장히 귀찮다. 특히 음식물쓰레기 버리기는 하기 싫은 집안일 '톱 3' 안에 꼽힌다. 안 해도 되니 편하면서도 찜찜한 마음이 든다.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어쩔 방법이 없다.

베트남 정부가 악취 주범인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분리수거 시행에 나서긴 했다. 생활 폐기물을 유기폐기물과 재활용폐기물, 기타폐기물 등 3가지로 구분한다. 벌금도 있다. 지난해 11월 호찌민부터 시범적으로 하고 있다는데, 종량제봉투는커녕 분리수거통도 못 봤다.

카페나 식당도 다르지 않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뚜껑과 빨대, 음식 포장지와 남은 음료수를 따로 버리려고 보니 구멍이 하나다. 다른 통이 있나 둘러보는데 뒷사람이 와서 쓰레기가 담긴 판을 탈탈 비우고 유유히 사라진다.

직원들이 따로 작업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당장에 쓰레기를 분류하느냐 마느냐보다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게 우선일 텐데.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아파트 각 층에 쓰레기를 버리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분리배출을 하지 않은 쓰레기가 쌓여 있다. /김해수 기자

◇익숙한 불편함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동남아시아에는 카카오택시와 비슷한 공유차량 서비스 '그랩(Grab)'이 있다. 미리 목적지까지 금액을 확인할 수 있어 자주 이용한다. 어느 나라나 외국인은 바가지요금 목표물이다.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두 개 택시만 타면 된다. 비나선(VINASUN·흰색)과 마이린(MAILINH·녹색). 이 외에는 일명 '가짜 택시'이기 때문에 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자칫 신변이 위험할 수 있다. 비나선·마이린과 비슷하게 생겨 베트남인도 속는다고 하니 주의해야겠다.

그랩이든 택시든 차를 타고 있으면 어느새 앞좌석에서 이야기꽃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보조석에는 아무도 없는데. 소오름. 기사님이 통화 중이다. 간간이 SNS 확인도 한다. 이제 한 손으로 핸들을 쥐고,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만지는 모습이 꽤 어색하다. 더군다나 사방에서 오토바이가 날아들고 있으니, 흔들리는 핸들 따라 심장도 철렁인다. 안전벨트를 꽉 쥐어본다.

▲ 남편이 퇴근길 무단횡단 했다는 10차로 도로.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횡단시설이 없어 건너편으로 가려면 무단횡단을 하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김해수 기자

뿐만 아니라 길거리나 실내에서 흡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고, 교차로 꼬리물기를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오토바이에 3~4명 타는 것은 기본이다.(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모유 수유까지 한다. 태양의 서커스 저리 가라다.) 신기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부족한 보행 시설, 쓰레기 분류 않기 등.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안전·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당연함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상황들. 길게는 10~20년 전, 짧게는 고작 몇 년 전 우리 모습이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만치 나아갔다는 데 새삼 자부심을 느낀다. 집 떠나면 애국자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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