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었는데 처벌 솜방망이…원청 안전관리 책임 강화해야
태안화력서 숨진 김용균 씨 등 작년 산재 사망 39% 하청 소속
책임자 벌금형·집행유예 그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시급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일하다 각종 사고로 숨지는 노동자 10명 중 4명은 하청노동자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원·하청 피라미드 구조에서 밑바닥에 있는 하청노동자들은 임금격차에서도 뿌리 깊은 차별에 시름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산업재해 불안감 속에서 일하고 있지만 원청의 책임을 묻는 처벌은 가볍기만 하다. 하청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한 현장은 어떻게 조성할 수 있을까?

◇산재 사망자 다수는 하청 = 한국 산재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17년 동안 모두 4만 217명이 사망, 1년 평균 236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1년 이후 284조 7479억 원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기준 노동자 300명 이상 업체 3478곳을 조사한 '고용형태공시' 결과를 보면 사내하청 노동자를 의미하는 '소속 외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 486만 5000명 중 18.6%(90만 6000명)를 차지했다. 사업장에서 일하다 각종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 소속은 하청이 약 40%로 집계됐다.

2016년 숨진 884명 중 40.2%(355명), 2017년 854명 중 40.2%(343명)였고, 지난해에는 796명 중 38.8%(309명)가 하청 노동자였다. 이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사고 가능성을 줄이지 않는 한 산업현장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사고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위험으로 내모는 원·하청 구조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경종을 우리 사회에 울렸다. 여론은 미흡하지만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 개정을 이끌어 냈다.

◇원청에 관대한 산재 처벌 = 끊이지 않는 산재 주요 원인으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원청업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지난해 이용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8년 6월까지 6년간 한 사건에서 3명 이상 숨진 중대재해는 모두 28건이다. 중대재해로 109명이 숨졌는데 85%(93명)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그러나 원청 사업주가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으며, 현장 책임자 등 52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단 2명뿐이었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 등 관리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소홀히 해서 노동자가 숨지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처벌은 솜방망이다.

법원의 재판 현황을 살펴봐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형사재판 건수는 모두 5109건(1심 기준)이었으나 이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0.5%(28건)뿐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 고려아연 황산 누출사고로 하청노동자 5명이 전신화상을 입고 이 중 2명이 사망했지만 원청은 5000만 원 벌금, 하청업체 책임자는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2월 메탄올 중독 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시력을 잃었는데 원청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3차 하청업체 책임자 3명만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 2년(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 산재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것이다. 안전한 현장을 위해서는 법이 강제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를 비롯한 산재 유가족은 책임자 처벌이 일터에서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사업주나 법인·기관의 경영책임자가 산안법을 어기거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산재사망사고가 일어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형법에는 기업이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해도 기업을 직접 처벌할 수 있는 양벌 규정이 없다. 기껏해야 직원 몇 명만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정도 처벌을 받는다. 그마저도 고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가기 일쑤다.

이상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은 "산재가 발생해도 원청을 엄격하게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산안법 같은 일부 법안으로 기업이 처벌을 받고 있지만 직원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지는 책임이다. 벌금이 수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기업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살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정부의 책임 방기다. 이것이 우리나라 산재사망 핵심이자 본질"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정부가 기업에 준 죽음의 면죄부를 끊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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