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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인] 정태기 김해 서울이비인후과 원장

이비인후과 의사가 제약회사 차리고 학교 짓는 까닭

이원정 기자 june20@idomin.com 입력 : 2019-04-30 13:46:59 화     노출 : 2019-05-01 00:00:00 수

서울이비인후과 대표원장, (사)지구촌교육나눔 이사장, (주)서울의료개발 대표이사, (주)독립바이오제약 대표이사. 모두 정태기(60) 김해 서울이비인후과 원장의 명함에 찍혀 있는 직책이다. 하나도 허튼 것이 없다. 당장 돈 될 만한 것을 노리고 일을 벌이거나, 혹은 널리 이름을 내세우려고 허울뿐인 직책을 탐한 것이 아니다. 네팔에 학교를 지어주고, 지역에서 제약 회사를 만들고, 사비를 털어 병원 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일 등, 그가 벌인 일들은 결국 그가 품은 ‘신념’으로 귀결됐다. 벌인 일이 많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게 바쁜 정 원장을 진료 중간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렵사리 만났다.


창원의 새로운 먹거리 바이오

정태기 김해 서울이비인후과 대표원장이 2013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설립한 제약회사 ㈜독립바이오제약은 지난 1월 식약처 KGMP(Korea Good Manufacturing Practice·한국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허가와 품목 허가를 받았다. KGMP 승인은 전문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과 인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독립바이오제약 주주는 대부분 의사와 약사 등으로, 현재 140여 명의 주주를 두고 있다.

독립바이오제약은 제네릭(복제약)을 일부 자체 생산과 OEM(주문자생산방식)을 통해 생산·판매하고, 사업이 안정되면 신약 개발로 회사 가치를 높일 계획이다.

독립바이오제약은 20여 종류 약을 올해 안에 생산 및 시판 예정이다. 의사들이 주주라, 이들이 제품을 사용하면 판매 관리비용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신약 개발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수많은 제약회사가 밤낮없이 매달리지만, 그중 신약으로 빛을 보는 것은 극소수다.

독립바이오제약은 폐렴구균 변이주를 활용한 폐렴 예방 백신, 그리고 천식·알러지·COPD(만성폐쇄성폐질환)·궤양성 장염과 같은 점막 질환에 대한 예방 및 치료약을 개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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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기 김해 서울이비인후과의원 원장. /이원정 기자

정 원장은 “수도권에 대학과 연계해 연구개발센터를 두려고 한다. 현재 인재 영입 중”이라고 밝혔다.

창원에 제약회사를 만들면서 제일 어려움을 겪은 것은 자금과 인력 확보였다. 자금이 넉넉지 않으니 유능한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다.

“3F라는 말이 있습니다. 벤처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을 3F라고 하죠. 가족(Family), 친구(Friend), 바보(Fool)라고 합니다. 그들을 바보로 만들지 않으려는 부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의 돈은 안 받았습니다.”

돈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벤처캐피탈 등 모르는 큰돈이 들어오면 헤퍼지고 무책임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에는 그런 돈은 안 받으려고 합니다. 당분간은 나를 믿고 투자해 주는 사람의 돈으로 끌고 가고 싶습니다.”

부지 확보도 문제였다.

“지역의 산업단지는 대부분 제약업종이 들어설 수 없어 바이오가 중심인 충북 진천, 전남 화순 등 경남을 벗어난 지역으로도 부지를 찾아 나섰지만, 거리상의 문제로 포기했습니다. 주 생활권이 창원이라 시간상으로 관리를 위해서는 창원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나았죠. 다행히 박완수 시장님 시절 가포에 적당한 부지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 원장의 뜻에 공감한 주주들이 모여들면서 가포에 공장을 짓게 됐다.

“미국 암젠이나 이스라엘 테바 등 큰 바이오 제약회사가 있는 곳은 도시 자체가 그 회사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창원은 기계와 조선, 철강 등이 중심인데, 언제든지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제약산업을 창원에서 발전시켜 지역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면 지역이 산업 다양성을 가질 수 있으므로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독립바이오제약은 조만간 베트남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베트남 벤탐그룹과 합자회사를 만들어 고형제, 주사제, 소프트드링크, 화장품, 항생제 등을 만들어 베트남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을 노릴 겁니다.”

바이오와 IT 결합

정 원장이 제약회사 운영과 더불어 또 하나 노리는 것은 바이오와 IT의 결합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로 틈새시장 공략을 계획 중입니다. 하나하나는 기존에 다 있는 시장입니다. 제네릭을 생산하는 회사도 있고, 신약 개발이 우리보다 앞선 회사도 있고, 전자차트 회사도 있습니다. 이걸 융합시키는 것이 플랫폼 사업입니다. 메디컬 쪽에서 제약을 기본으로 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비즈니스를 계획 중입니다. 기본은 전자차트입니다. 기존의 전자차트가 가지지 못한 새로운 전자차트, 미래형 전자차트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정 원장은 이를 위해 지난해 말 군포 IT밸리에 있는 ㈜코메인을 인수합병 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래형 전자차트는 무엇일까. 정 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먼저, 무인 접수, 무인 수납 등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데이터를 저장하려 합니다. 기존 전자차트는 병원에서 데이터를 각각 가지고 있으면 보안 문제 등이 있지만,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용하면 훨씬 보안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 하나는 지금은 데이터를 의사만 가지고 있었는데, 환자와 공유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환자가 주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PHR(Personal Health Record·퍼스널 헬스 레코드)이라고 개인적인 건강 기록을 핸드폰으로 보내주는 겁니다. PHR 시장을 선점하려 합니다.”

IoT(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를 차트에 연동하는 것도 있다. IoT는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기술이나 환경을 말한다.

“예를 들면 환자감시장치, 즉 혈압, 심박 수, 호흡수, 체온 등 환자 생체 모니터링을 하는데, 이런 것을 근거리 무선통신 등을 써서 전자차트 안에 연동시킵니다. 그러면 간호 인력이 잡무에 시달리지 않고 간호에 전념할 수 있죠. 궁극적으로 의료비 절감을 할 수 있습니다. 병원 간에 기록을 공유하므로, 중복되는 필요 없는 검사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정보가 밖으로 나가 위·변조될 수 없도록 블록체인 기술 등을 이용해야 합니다.”

즉,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들을 통합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정 원장이 이루려는 사업 모델이다.

“옛날에는 차트라 하면 오더만 왔다 갔다 하는 OCS(Order Conveyor System)인데, 미래형 전자차트는 이를 탈피해 모든 정보가 융합되고, 1차 의료기관에서 정보가 끝나는 게 아니고 2차, 3차 의료기관까지 갈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진료 데이터와 개인적인 유전체 분석 데이터를 통합한 빅데이터로 맞춤형 의료, 정밀 의료로 가자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각각의 기술은 발전해 왔지만, 아직까지 통합한 데는 별로 없습니다. 정밀 의료에서는 환자에게 개별적으로 맞춤형 약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제약 시장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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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바이오제약 정태기 대표(사진 왼쪽)가 코메인 박상주 대표와 인수합병 조인식을 했다. /독립바이오제약

100년 가는 기업이 꿈

정 원장이 꿈꾸는 여러 가지 일 중 앞줄에 제약회사가 있다.

“손정의 같은 분은 ‘300년 기업의 야망’이라고 해서 300년 가는 기업을 만들려고 하는데, 저는 최소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제네릭을 생산하고, 동시에 신약을 개발할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다국적 제약 기업에 종속돼 있습니다. 거기서 독립하는 것이 1번 목표입니다. 그다음은 의사나 약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고 리베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목표 시한까지는 19년 남았다. 4년 후 기업 공개 예정이다.

“그동안에는 덩치를 키워야 하는데,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키울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M&A를 해서 뭉쳐서 선단처럼 가겠다는 계획입니다. 기업 공개 후에는 좀 더 큰 회사와 M&A 해서 키워나갈 것입니다. 19년 후에는 세계에서 30대 제약회사로 끌어올리는 것이 욕심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 주식은 (사)지구촌교육나눔에 기부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제약회사 중 최상위가 세계 80위권이라고. 즉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제약회사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정 원장은 의사로서 지역에 꽤 알려져 있다. 정 원장은 2002년 창원 상남동에서 처음 서울이비인후과 문을 연 후 2007년 인근(현재 창원 서울이비인후과 자리)으로 이전했다가, 2010년 김해로 옮겼다.

김해로 간 지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정 원장의 명성에 여전히 창원 지역 환자들이 김해까지 찾아가곤 한다.

즉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아도 ‘의사’로서의 삶은 그에게 어느 정도의 부를 보장해 준다. 도리어 열심히 수술하고 진료해 벌어들인 돈으로 네팔에 학교를 짓거나 지역 예술인을 지원하는 등 ‘돈 되지 않는 듯한’ 여러 일을 벌이고 있다.

제약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이런 힘든 길을 걷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 않은가.

제약회사를 만든 이유를 묻는 말에 정 원장은 ‘지구촌교육나눔’을 거론했다.

“지구촌교육나눔을 통해 학교를 지어주다 보니 이것이 우리 대에서 끝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죠. 그렇다면 뭘로 지속 가능하게 하나, 고민하다가 기업 같은 게 있으면 내가 죽은 후에도 연속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0년은 갈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다가 내가 가진 네트워크 등을 이용해 제약회사를 시작했습니다.”

즉 기업을 운영하다가 사회환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회환원 수단으로 기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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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월 3일, 네팔의 안나푸르나 주위에 있는 소도시인 베니로부터 40여분 산길을 타고 올라가는 작은 마을에서, (사)지구촌교육나눔에서 후원하여 준공한 발만디르초등학교의 준공 및 기증식이 있었다.
왼쪽부터 교수 출신의 베니시장, 그 옆은 네팔 친구인 씨디, 이 학교 교장선생님, 필자, 이 학교 출신이며 한국에 귀화하였고 한국에서 네팔식당 6곳을 운영중인 성공한 사업가인 서민수님이 오늘 통역을 담당하였고, 그 옆은 우리법인 네팔 사무소 대표인 우프레디선생님, 학부형대표님. /정태기

네팔에 피우는 배움의 꽃

지구촌교육나눔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다.

정 원장은 오래전부터 병원 내 복도 등 공간을 지역 작가들에게 내줘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했던 작가 중 김경현 화백이 있었다.

“어느 날 김 화백이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김 화백이 일본 나가사키 대학에 유학했는데, 그때 만난 네팔 교수가 자기 마을에 학교를 하나 짓겠다고 했다고요. 2010년 7월 몇몇 사람과 뜻을 모으고 네팔로 갔습니다.”

가서 보니 그 교수가 지으려고 하는 것은 테크니컬 스쿨. 일종의 직업훈련원이었다. 교수는 네팔 노동자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는데, 이들을 교육해 내보내면 단순기술공이 숙련기술인력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이를 추진했다.

하지만 정 원장이 생각했던 것은 고등학교를 비롯한 일반 교육기관.

“뜸을 들이고 있다가 학교가 필요한 지역과 연결이 됐습니다. 카트만두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진 헤타우다라는 도시였습니다. 80km라고는 하지만, 네팔은 산이 많고, 그곳도 해발 1900m 고지를 넘어가야 하는 곳이다 보니 초반에는 차를 타고 가도 5시간은 걸리는 곳이었죠.”

당시 발조티 고등학교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인 12학년까지 있었지만, 교실 등이 부족해 건물을 짓다 공사가 멈춰 있었다.

학교를 지어주려고 했지만, 주민들은 믿지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도와주겠다고 말만 하고는 흐지부지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못 믿겠다며 일단 돈부터 보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는 교실 하나 짓는데 얼마가 들지 몰랐어요. 얼마를 보내야 할까가 제일 고민스러웠습니다. 다행히 교장이 양심적이었습니다. 건축 단계에 따라 필요한 돈을 하루도 늦추지 않고 꼬박꼬박 보냈습니다.”

여윳돈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당시 정 원장도 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창원에서 김해로 터전을 옮기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하지만 모자라는 돈은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약속을 어기지 않고 보냈다.

그렇게 꾸준히 학교를 지어나가면서 그 동네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됐다. 2013년 무렵이었다.

2015년 네팔에 지진으로 큰 피해가 생겼을 때 대한의사협회 선발대로 정 원장과 경남의사협회 소속 일행 2명이 카트만두를 바로 방문해 의약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학교를 딱 10개 지었습니다. 그동안 창원 파티마병원이나 창원에 있는 기업인 해성디에스 등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지원해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중심이 돼 작게 끌어왔어요.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이 10년은 꾸준히 해야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10년은 해보자, 10개는 만들어보자 하고 생각했죠.”

10개를 만들고 난 지금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도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짓는 숫자에 집착해 왔는데, 지금부터는 아이들이 진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물론 지금도 컴퓨터나 장학금, 기숙사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더욱 교육 퀄리티를 높여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자기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힘껏 돕겠습니다.”

기부금을 100% 사업비로 쓰는 것이 지구촌교육나눔의 장점이자 정 원장의 자랑이다. 관리비는 정 원장 사비로 처리한다.

가장 최근 지은 곳은 불이 났던 학교. 텐트 밑에서 공부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보냈다.

“올 3월, 네팔의 안나푸르나 주위에 있는 소도시인 베니로부터 40여 분 산길을 타고 올라가는 작은 마을에서 (사)지구촌교육나눔에서 후원해 지은 발만디르초등학교 준공 및 기증식이 있었습니다. 학교 건물이 2년 전 화재로 없어지고, 학생들이 천막 속에서 공부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우리가 나서기로 했죠.”

공사를 시작한 지 약 1년 만에 반듯한 2층 건물이 준공됐다. 공사비 7000여만 원 중 지구촌교육나눔이 70% 정도를 후원하고, 나머지는 주민들과 한국에 있는 네팔 교민들이 모은 돈으로 충당했다.

“특별히 우리 법인에서 10번째로 건립한 학교건물이라 의미가 더 있었습니다. 포카라로부터 편도 4시간 반, 왕복 9시간의 불편한 차량 이동이었지만, 아이들의 순박한 모습에서 오히려 우리가 위로받고 온 느낌이었습니다. 오가는 길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도로 확장 공사 현장을 보면서 네팔의 희망도 함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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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기 서울이비인후과 원장. /김구연 기자

운명을 바꾸는 교육, 또 다른 이의 꿈으로

정 원장이 현장에 가면 아이들에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태어날 때 선택 못 하는 게 3개가 있다. 첫째는 장소. 너희들이 네팔에서 태어나서 네팔인이고,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인이다. 두 번째는 시간. 나는 20세기, 너희들이 21세기 태어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 하나가 부모다. 이 3가지를 운명이라고 하는데, 이 운명을 깰 수 있는 것이 교육이다. 내가 1959년생으로 한국의 전쟁 직후에 가난한 시골(진주 이반성면 한골)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만큼 온 것이 교육의 힘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다.

“아이들은 ‘닥터(Doctor)’, ‘너스(Nurse)’ 등 왁자하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이야기하죠. ‘일단은 꿈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는 그 꿈을 계속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이 결국은 공부였다. 그러면 그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산속에 있고 가난하다고 안주하지 말고 공부해서 꿈을 이루면 여러분은 후배나 후손 등 다른 사람의 꿈이 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꼭 해줍니다.”

학교를 지어놓아도 산속 아이들은 공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네팔은 무상교육이지만, 학교를 오려면 몇 시간 걸리기도 한다.

“평지가 아니라 산 능선에 학교를 짓습니다. 여러 계곡에서 아이들이 올라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을 하나 더 넘고 오는 아이는 왕복 5시간 걸리는 거리도 있습니다. 기숙사가 필요한 이유죠. 그런데 기숙사 시설이 너무 열악합니다.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래서 학교와 더불어 기숙사를 지어주기도 한다.

정 원장 어머니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났다. 지역 사회에서 발이 넓은 정 원장이지만, 주위에 일절 알리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딸 결혼식을 치르면서도 마찬가지. 심지어 병원 직원들에게조차 결혼식 장소와 시간을 알리지 않은 정 원장이다.

이번에도 고인의 뜻에 따라 고인의 조카들까지만 연락해서 작은 가족장으로 조용히 상을 치렀다.

장례식 후 가족들, 즉 고인의 자녀와 손자·손녀 등이 돈을 모아 고인의 뜻을 기리며 네팔에 기숙사를 짓고 있다.

“외부 돈은 일절 받지 않고 자손들의 돈으로만 짓습니다. 이번 겨울 쯤 준공 예정입니다. 기숙사에서 아이들이 밥도 먹어야 하니까 부엌과 공부방 등도 갖췄습니다. 군대 내무반처럼 만들 예정입니다. 이전에는 흙바닥에 비바람만 피하는 정도였죠.”

네팔에 자주 방문하며 힘닿는 한 도움을 주고 있지만, 할 게 너무 많다. 보면 볼수록 일거리가 더 생긴다.

앞으로는 지어준 학교에도 계속 관심 가지고 장학금이나 기숙사, 과학관 등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 하나 정 원장의 꿈은 온라인 의과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이므로 국경이 없다.

“부탄에 가서 봤더니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하려니 의과대학이 필요하더군요. 하지만 운영할 수 없어 인도·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에 위탁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학생들이 앉아 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스리랑카에 위탁교육 받으러 간 학생들인데 의사들이 파업해서 교육 못 받고 왔다고 했습니다. 교육은 시간, 때가 중요한데 말이죠. 이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온라인 의과대학을 떠올렸습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40회 동기회장인 정 원장은 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동료 의사들에게 뜻을 밝히고 의견을 물었다.

“‘강의 한 꼭지 해볼래?’라고 물었더니 다들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했습니다. 관리는 국가가 하고, 실습은 나이지리아나 인도, 네팔 등 전 세계에 거점 병원을 마련해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기숙사를 지어주고요.”

정 원장의 눈이 반짝였다.

“재밌잖아요, 이런 걸 이루면. 대동사회. 같이 잘살자는 겁니다.”

 

지역 예술계 든든한 후원자로

정 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말~2006년 초 무렵이다. 그는 당시 창원 상남동에서 서울이비인후과를 운영하고 있었다. 창원에서 처음 터를 잡은 곳이다. ‘병원’이라는 특수한 곳에 미술 전시를 한다고 해서 취재를 위해 방문했다.

이미 그 병원은 몇 년째 지역 작가들에게 복도를 전시공간으로 내주고 있었다.

2006년 1월 열린 한 전시 개막식을 시끌벅적하고 흥겨운 잔치로 만드는 정 원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별다른 행사 없이 간단히 진행된 개막식 끝 무렵 작가가 행사 참석자들에게 추첨을 통해 작품 2점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그때 정 원장이 나섰다. “달랑 2점으로는 참석자들이 너무 서운해할 것”이라며 그 자리에서 4점을 구입, 추첨 이벤트를 통해 환자·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참석자들은 환호하는 등 엄청난 호응을 했다.

정 원장은 경남메세나협회 창립 때부터 회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미술인 등을 도왔으며, 사단법인 경남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청소년합창페스티벌도 후원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정 원장은 병원 내에 김해에서는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1300만 원의 사비를 털어 만든 소녀상은 도내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변재봉 작가에게 의뢰해 건립했다. 병원을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소녀상의 의미와 아픈 역사를 가르치려는 뜻에서 만들었다.

자신이 수술하고 치료한 아이들과 멘토·멘티가 돼 꾸준히 연락하며 인생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정 원장의 진료실 한쪽 벽면에는 아이들이 보낸 감사 편지가 가득 붙어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합포문화동인회가 고등학교 1~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한 영리더스강좌에서 ‘나누는 기쁨-한골 촌놈 네팔에 학교를 짓다’를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KBS창원총국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응진 PD는 2014년 출간한 책 <사랑으로 장난치기>에서 ‘우리 동네 싸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정 원장을 소개했다.

내가 만난 그 사내도 좀 ‘Funny’한 의사였다. (중략) 알고 보니 한국 최고 의대 출신에 이비인후과 분야에서 획기적 수술을 성공시킨 명의였다. (중략) 그의 존재가 갈수록 Funny했던 것은 의사로서 바쁜 중에서도 와인학원을 차려 스스로 강의를 했고, 또 1주일에 3~4권의 책을 읽고는 그것들을 불쑥불쑥 선물을 하곤 했다. (중략) 이 글을 마무리하는 데 또 전화가 왔다. “형님, 마일리지 얼마나 있소? 네팔 가는 데 동행하셔.” “거긴 왜?” “네팔 남부 헤타우다라는 곳에 학교를 짓는데 시각장애인 교실 기공식을 해요. 동행하면 가장 Funny한 사람을 생각해 보는데, 형님 당첨! 단 항공료는 자비 부담.” 이런 싸이코를 보듬어주면 세상은 더 빨리 아름다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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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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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체육부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