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음악과 함께 하는 은퇴 후의 삶

매달 셋째 주 화요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청 앞 광장서 음악이 울려 퍼진다. 트럼펫 등 여러 관악기의 화음이 거리를 채운다. 연주하는 것은 김종원(64) 단장을 중심으로 뭉친 ‘폰스 아모리스 윈드 오케스트라’다. 2016년 4월을 첫 시작으로 매달 이어온 이 작은 음악회는 지난 4월로 36회, 만 3년을 채웠다. 스무 명 남짓의 일반인들이 주기적으로, 열정 넘치게 음악을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김 단장을 통해 그들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직접 만든 지역 문화 공간 ‘범골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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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원 폰스 아모리스 윈드 오케스트라 단장. /이종현 기자

김종원 단장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마산의료원 맞은편 건물의 지하 1층, 범골문화원이다. 범골문화원은 김 단장이 운영하는 공간으로, 현재는 폰스 아모리스 윈드 오케스트라(이하 폰스 아모리스)의 연습장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한눈에 보이는 무대와 김 단장이 나를 반겼다.

Q. 인터뷰에 앞서 단장님과 폰스 아모리스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려 했지만, 활동 내역 외 구체적인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먼저 단장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마산 토박이 김종원이라고 합니다. 마산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빼고는 쭉 마산에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서울에 갔는데,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건 아녜요. 그냥 당시 좋은 대학, 요즘 말하는 스카이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고, 재수하고 했었죠. 그러다 두 번 대학에 떨어졌어요. 이걸 보던 아버지가 그만하고 마산 내려와서 일이나 도우라고 해 내려왔습니다. 짧은 서울 상경이었죠.”

Q. 집안에서 하던 일, 가업 같은 게 있으셨나 보네요.

“철강 사업을 했습니다. 저도 마산 내려온 뒤 아버지가 하던 철강 사업을 이었죠. 사업을 하다가 IMF 때 타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애로를 겪어가며 운영해왔는데. 자식들도 다 출가해서 자리 잡아서, 저도 사업을 정리하고 폰스 아모리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폰스 아모리스 전속인 셈이죠.”

Q. ‘범골문화원’은 뭐 하는 곳인가요?

“처음 만든 건 2004년입니다. 제 작은 꿈이랄까요.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죠. 애시당초 지역민들이 고루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소규모 어린이집 등에서 학예 발표회를 위한 공간으로 개방하기도 했고. 일반 공연이나 오페라, LP판 이런 걸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려고도 했는데. 일반인들의 호응이 낮았습니다. 지금은 폰스 아모리스 전용 연습장으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음악

Q. 단장님이 음악에 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완월성당에 다녀요. 2000년도가 완월성당 설립 100년이 되는 해였는데, 그때 100주년 음악회를 크게 열었습니다. 그때 진행할 성가단장을 맡은 게 음악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어요.”

Q. 음악에 대해 모르는 상태서 큰 행사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부담은 없으셨나요?

“부담이야 많았죠. 당시 2000년도 행사를 1998년부터 준비했을 정도로 큰 행사였어요. 음악에 대해 아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했지만, 당시 추진위원장께서 “성가단장 자리가 꼭 음악을 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단원들을 조율하는 역할이니, 행사를 위해 맡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수차례 반복된 설득에 넘어갔죠. 행사를 준비하다 보니 완월성당 단독으로 준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습니다. 나중엔 완월성당뿐만 아니라 천주교 마산교구가 함께하게 됐어요.”

Q. 성가단장. 2000년도 행사면, 이후에는 어떻게 되셨나요?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걸 계기로 천주교 마산교구 전체 합창단이 조직됐어요. 자연스레 제가 초대 단장을 맡아 2013년까지 역할을 했습니다.”

Q. 결국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셨다 들었습니다.

“첫 단장을 맡을 때인 1998년부터 색소폰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취미의 수준이었죠. 합창단 내에 전문 성악가나 연주가도 많았습니다. 단장이라는 게 반드시 음악을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음악을 아는 게 모르는 것보다 나을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01년도에 창신대에 가 젊은 애들과 어울리며 음악 공부를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전공자가 된 케이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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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원 폰스 아모리스 윈드 오케스트라 단장. /이종현 기자

사랑샘 밴드에서 폰스 아모리스 윈드 오케스트라로

Q. 폰스 아모리스의 원래 이름이 ‘사랑샘’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가톨릭과 연관이 있을 듯한데.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둘 다 천주교 색이 강한 이름입니다. 천주교 안에 레지오 마리에(Legio Mariae)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존경하는, 기도하는 큰 단체입니다. 이 단체 안에 ‘사랑의 샘’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를 따라 ‘사랑샘’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Q. 지금은 폰스 아모리스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름의 뜻은 같습니다. ‘폰스’가 샘, ‘아모리스’가 사랑. 사랑샘이라는 이름을 라틴어로 바꾼 것이죠. 굳이 사용하던 이름을 바꾼 건, 조금 웃기기도 한 이윤데. 저희가 이런저런 행사에 초청받아 연주하러 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밴드’라고 하니까 소규모 밴드 같은 걸 생각하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정작 갔더니 저희 인원이 들어갈 공간도 안 나오기도 했고…. 소위 ‘있어 보이는’ 게 조금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나와서 바꾸게 됐습니다.”

Q. 폰스 아모리스의 조직 배경. 마산교구 합창단의 영향인가요?

“그렇죠. 완월성당 100주년 행사 직후 창단해서 20년 됐습니다. 성당 내에서 활동하는 걸로는 아쉽다 보니. 우리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 반경을 넓혀보자는 생각에 모이게 됐습니다.”

Q. 성당에서 시작된 것치고는 연주하는 음악 장르가 다양한 편입니다. 어떤 종류의 음악을 하시나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게 답이 될 거 같네요. 종교색을 띠는 음악부터 대중가요, 팝, 동요, 가곡 등 다양하게 연주합니다.”

Q. ‘윈드 오케스트라’라는 용어, 생소한데요.

“윈드 오케스트라는 바람을 통해 소리 내는 오케스트라, 즉 관악기(관 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가 주가 되는 오케스트라를 말합니다. ‘취주악단’에 가깝습니다. 저희 악기 구성이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클라리넷, 플룻 등 관악기가 많습니다. 물론 기타, 키보드, 드럼 등도 있고요.”

Q. 현재 구성원은 몇 명 정도 있는지, 어떤 분들로 구성돼 있는지 궁금합니다.

“연주자 22명, 가수 3명, 음향 관련 담당 스탭 2명. 총 27명입니다. 소속돼 계신 분들의 직업은 다양합니다. 주부, 사업가, 교사, 직장인 등.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만 있었는데. 지금은 1/3 정도는 비신도입니다. 저희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하시거나 한 분들이 대부분이죠. 구성원 평균 연령은 60대 초반 정도입니다.”

Q. 지역 내 이런저런 행사에 많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활동 내역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정적으로 하는 행사와 비고정적으로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고정적으로 하는 행사는 연에 30회 정도입니다. 매월 마산합포구청 광장에서 하는 공연부터, 창원 파티마병원 위문 공연, 마산 국화축제, 진해 군항제, 창원시에서 주최하는 토요 야외 음악회, 창원 봉림사 초파일 연주 등이 주가 됩니다. 비고정적으로는 사회단체나 복지시설 등의 요청에 의해서 연주하는 것들, 또 천주교 마산교구 내 행사에서 하는 것들 등이 있습니다.”

Q. 봉림사 초파일 연주? 절을 말씀하시는 것 맞죠?

“네. 창원 의창구 봉림동에 있는 절입니다.”

Q. 불교와 가톨릭. 종교 화합이네요.

“그렇죠. 봉림사 주지스님이 열린 마음을 가지셔서, 저희를 자주 불러주십니다. 거기에 연주곡도 저희에게 다 맡기십니다. “불교 음악도 좋고, 대중음악도 좋고, 심지어 가톨릭 음악을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불자들 호응도 좋고,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공연입니다. 물론 절에 가서 가톨릭 음악을 하진 않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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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폰스 아모리스 윈드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김종원 씨 제공

미래는 문화의 시대,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메시지 던지고파

Q. 이런 모임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운영하시면서 겪은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아무래도 비용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음향 장비를 구하는 것, 또 그 장비를 수송하는 것, 이를 관리하는 것 등 다 비용입니다. 그리고 노래를 우리 악단에 맞는 노래로 바꾸기 위한 편곡비가 큽니다. 저희가 확보하고 있는 곡이 800곡 정도 되는데, 편곡료가 곡당 20만~30만 원 정도 됩니다. 이런 비용들 모두 단원들끼리 해결하다 보니 어려운 편입니다.”

Q. 여러 행사 중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하는 합포구청 광장 연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합포구청이라고 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저희 활동을 인정해줬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저나 단원들의 활동이 인정받는다는 것. 수익 활동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인정이 참 고맙고 만족스럽습니다. 두 번째로, 제가 성당 밖으로 나와 연주하는 게, 이런 연주를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회를 두고 100세 시대라고들 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이 너무 깁니다. 저는 은퇴 이후에 어떤 삶을 보내야 하는지,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메시지를 시민들께도 던지고 싶었습니다. 저 스스로는 ‘품격있게 늙고 싶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노년 문화 활동의 좋은 예로 남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우리 사회에 ‘저는 이렇게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즐길 거리를 찾으세요’,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싶습니다.”

Q. 이후 활동 계획이나 꿈꾸는 것, 여쭤봐도 될까요?

“군항제나 국화축제 등 지역 행사에 메인 무대를 맡고 싶습니다. 지역 행사인데도 메인 역할은 중앙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하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소극적인 역할만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입이 어려워요. 물론 실력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을 좀 더 키워서 큰 무대에 서보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서울 같은 데는 구청에 자체 밴드가 있어서, 지원이나 관리를 돕고 하더라고요. 3년 전에 창원시가 ‘문화예술도시 선포’를 했습니다. 이때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선포 전후로 바뀐 게 없었던 거 같습니다. 광장 사용 허가를 내준 게 고맙지만, 주민 복지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문화 활동에 좀 더 투자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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