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여 삽입된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아름다운 음악 통해 현실의 고통 잊는 경험 선사

영화 속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화면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나도 얼어붙어 버렸다. 그저 멍했고 왜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함께 영화를 보던 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의 일이었고 그 잠시 동안을 비웠던 친구가 나는 안타까웠다. 이토록 음악과 장면이 어우러져 많은 의미를 품었던 영화가 있었던가? 영화 <샤이닝>의 원작자 '스티븐 킹'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명작 <쇼생크 탈출>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인지 다시 한번 보여주며 '다라본트' 감독은 그의 장기인 감옥 이야기를 탁월하게 연출해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를 만들어 낸다.

▲ 탈옥에 성공한 앤디./스틸컷

◇탈옥

촉망 받는 은행원 '앤디', 그는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쇼생크에 수감된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 간수에게 찍히면 목숨마저 보장되지 않는다. 세상의 밑바닥과 같은 이곳에서 만난 '레드', 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오랫동안 복역한 장기수이며 죄수들에게 물건을 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감옥생활에 적응한 '레드'에게 앤디는 관찰대상이다. 적응하기보다는 대항하며 불가능 속에서도 늘 자유를 꿈꾸는 그가 속절없어 보이면서도 가슴속에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 중 간수장이 세금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들은 앤디는 나서서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 제안한다. 위협적이던 간수장은 그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원하는가 묻는 그에게 앤디는 대답한다. '한 사람당 맥주 3명'. 앤디의 덕으로 함께 즐기는 맥주, 힘든 노동 후 누리는 소박한 그것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자유였고 앤디는 그 자유를 모두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이제 그곳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앤디, 쇼생크의 간수들뿐만 아니라 타 교도소 간수들의 세금업무까지 처리해 주던 그는 어느덧 교도소장의 은밀한 자금까지 관리하게 된다. 덕분에 교도소 내 도서관을 만들게 되고 최장기 복역수인 '브룩스'와 함께 어렵지만 즐겁게 이 일을 해 나간다. 곳곳에서 기증받은 책들이 속속 도착하고 그리고 정리하고……그러던 어느 날 40여 년을 복역하던 브룩스의 석방이 결정된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죄수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브룩스, 그는 이렇게 해서라도 죄를 지어 그곳을 벗어나기 싫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내던 감옥생활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에게는 낯선 행성에 홀로 버려지는 것과 다름 없기에 말이다. 이에 세상으로 나온 브룩스는 결국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새장 속에 가두어져 그곳이 세상이 되어버린 새, 새장 문을 열어 자유롭게 날아가라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쇼생크엔 앤디의 무고함을 증언해 줄 죄수가 나타난다. 하지만 앤디가 필요했던 교도소장은 그 죄수를 살해해 버리고 앤디의 마지막 희망 또한 사라지는 듯했으나 비와 천둥이 몰아치는 날 앤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탈옥을 시도한다. 결코 새장에 적응할 수 없는 그 새는 탈출에 성공하였을까?

◇편지의 이중창

기증받은 책들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섞여 있던 음반, 그는 가만히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리고 흘러나오는 선율에 젖어 들다 곧 무언가를 결심한 듯 방송실의 스위치를 올린다. 이어 쇼생크의 모든 곳에 천국에서 들려오는 듯 울려 퍼지는 선율, 운동장에서 산책을 하던 죄수들도 작업장에서 작업을 하던 죄수들도 심지어 그들을 감시해야 할 간수들조차도 발은 땅에 들러 붙었고 눈은 스피커를 향했으며 귀는 가사는 알 수 없지만 천사임에 분명할 두 여성의 목소리에 빠져 든다. 영화사에 남을 명 장면으로 이때 흐르는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수많은 명곡을 남긴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라 평가 받는 걸작이다. 작곡가 '파이시엘로'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의 동명작은 리메이크작이다)가 장기 흥행하자 모차르트는 그 흥행을 이어 받기 위하여 대본가에게 속편 제작을 제안하게 되고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피가로의 결혼>으로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바람둥이 백작은 피가로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수잔나에게 엉큼한 마음을 품고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백작과 백작부인의 사랑을 이어주는 피가로의 이야기이니 괘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피가로와 수잔나, 그리고 백작부인은 그러한 백작을 골려 줄 희극적인 묘안을 짜내게 되고 여러 가지 어수선한 일이 벌어진 후 결국 저택의 정원에서 수잔나를 유혹하던 백작의 행동이 백작부인에게 들통이 나게 된다. 백작은 크게 놀라 부인에게 용서를 빌고 그곳에 있던 이들은 모든 것이 무사히 수습된 것에 기뻐하며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식 피로연으로 향한다는 소동극인 것이다. 영화 속에 쓰인 '편지의 이중창'은 백작의 흑심을 알게 된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그를 유인하기 위하여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의 이중창으로 백작부인이 선창하면 수잔나가 따라 부른다. 백작부인이 편지내용을 읊으면 수잔나가 받아 적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오늘 저녁 불어옵니다….'

이렇듯 영화 속 장면과 오페라 속 이중창은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 하지만 절묘하다. 왜? 그 이유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나오는 '레드'의 내레이션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노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비천한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가 갇혀 있는 삭막한 새장의 담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 마지막 장면에서 가석방된 레드(사진)는 앤디를 찾아간다. /스틸컷

◇자유

인간의지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을 보여주려 했던 영화들은 많았다. 영화 <트루먼 쇼>가 그러했고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Wind)'라는 주제곡에 빛나는 명화 <빠삐용>이 그렇다. 하지만 3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이토록 절절히 자유를 말하는 장면이 있었던가.

가석방이 결정된 '레드', 그의 족적은 이전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던 '브룩스'의 것과 같다. 같은 아파트, 같은 직업, 그리고 부적응. 하지만 '레드'의 선택은 달랐다. 이미 앤디로부터 자유를 배우고 익혔기에 이제 쇼생크에서 탈출한 것은 앤디가 아니라 레드인 것이다. 적응과 포기에서 자유와 희망으로의 탈출. 브룩스가 목매달기 전 새겼던 '브룩스가 여기 있었다' 옆에 '나도 여기 있었다'를 보기 좋게 남긴 '레드'는 이제 주거제한지역을 넘어 '앤디'를 찾아간다. 이미 방법을 알고 있는 레드, 용기만이 필요했을 뿐이며 이제 그 용기를 낸 것이다. 눈부신 해변, '레드'는 마침내 앤디를 찾아내고 앤디는 그를 웃음으로 맞이한다.

이 푸르른 마지막 장면, 앤디가 실현한 파라다이스 해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그곳, 앤디의 자유에의 염원은 이렇게 끝나지 않고 더 넓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그는 바다로 나가기 위한 배를 손질하고 있다. 영화 속 '브룩스', 그는 악인은 아니지만 우리가 버려야 할 군상이다. 그러하기에 내 안의 브룩스를 버리고 앤디를 찾아내야 한다. 적응에 적응해 버린 우리들, 이제 희망을 희망한다. 희망, 그것은 꿈꾸는 자에게 있다. 그렇게 앤디가 레드에게 가르쳐 준 것은 희망이었고 그 희망하기에 서투른 우리들에게 레드가 선물한 연습 가이드가 있으니 되뇌어 볼 일이다.

'꿈, 희망, 꿈을 갖고 살든가 희망 없이 죽든가…… 희망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 무사히 국경을 넘길 희망한다. 그를 만나 포옹할 수 있길 희망한다, 태평양이 꿈 속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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