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순간들 5년의 기록-연재를 마치다

 

오토바이에는 ‘낭만’과 ‘여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우리나라에서 대접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단언컨대, 이 시대에 가장 ‘합리적’인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유지비가 적게 든다. 125cc 스쿠터를 기준으로 하면 휘발유 1리터면, 아무리 성능이 떨어져도 30km는 달린다. 천천히 달리면 그 2배도 가능하다. 자동차로는 실현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자동차만큼 빠르고, 자동차만큼 장거리 여행도 가능하다. 그것은 자전거처럼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으로는 불가능한 경지다. 공간도 적게 차지한다. 승용차 한 대 주차할 공간이면 오토바이 3대는 주차할 수 있다.

배기량이 크지 않기 때문에 환경오염도 적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오토바이는 옛날이야기다. 요즘 오토바이는 정부에서 정한 환경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판매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환경기준치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엄격하다. 이웃 일본에서 판매가 허용되는 오토바이도 우리나라에서는 불합격되어 수입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오토바이인데도 말이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현실에서 가장 ‘합리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해도 과장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 말을 못 믿겠다면 50cc 스쿠터 한 번만 타보시라. 그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 것이다. 50cc 스쿠터 타는 데는 스쿠터와 헬멧과 자동차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된다. 당장 해보시라. 얼마나 편리하고 재미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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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에 그 동안 타오던 BMW 1200cc 대형 오토바이를 처분하고, 올해 3월에 320cc 오토바이(야마하 MT-03)를 새로 들였다. 배기량이 4분의 1로 줄어든 만큼 출력도, 편의성도 그 만큼 낮아졌다. 하지만 가볍다. 그 하나로 족하다. 그 가벼움 만큼 자유로와지기를 소망한다. /조재영 기자

천대받는 오토바이

그런데 이런 가장 합리적인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리도 천대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자동차전용도로’라는 것을 만들어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다들 문제없이 다니는 고속도로에도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해놓았다.

시가지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정차로제라고 해서 오토바이는 항상 가장 바깥 차로와 그 옆 차로로만 다니도록 해놓아 항상 화물차 버스 등과 같은 차로를 쓰게 만들어놓았다. 지정차로제도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긴 하지만, 기왕이면 오토바이는 승용차들이 주로 달리는 차로를 달려야 앞뒤에서도 잘 보여서 사고 위험이 적다. 키가 큰 화물차, 버스 틈에 있으면 운전자들에게 잘 보이지 않아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고, 오토바이 운전자도 앞뒤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방어운전을 하기 어렵다. 건물 주차장, 실내 주차장, 야외주차장 등 당국에서 주차장으로 승인받은 주차장은 민영·공영을 불문하고 오토바이 주차를 거부할 수 없는데도 현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오토바이 주차를 거부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는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 인터넷 뉴스매체에서 오토바이 사고 건수가 늘었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제목에 ‘도로 위의 흉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가 대접받는 수준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사실 그 기사에서는 오토바이 사고만 언급했는데, 교통안전공단에서 낸 통계를 찾아봤더니 2017년 차종별 사고 현황을 보면 승용차 사고가 오토바이 사고의 거의 10배에 이른다. 사망자 수도 승용차 사고가 4배나 되고, 부상자 수도 10배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오토바이에게 ‘도로 위의 흉기’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부당한 것이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동안 언론이 오토바이의 긍정적인 면은 거의 조명하지 않고, 부정적인 면만 강조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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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 무렵의 장엄한 풍경은 언제나 나를 감동하게 하고 더욱 겸손하게 한다. 진주시 이반성면. /조재영 기자

쌓이는 독소

며칠 전 지인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국민소득 3만 달러면 뭐하나? 다들 놀지도 못하고 일만 하는데….”

옳은 말이다.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생활이라면 참 고단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작은 주간신문사에서 근무하다 2000년에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했다. 기자 경력이 있기는 했지만, 누구나 그렇듯 새로운 직장에서의 일상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다.

그 시절에는 주5일제는커녕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공휴일조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던 시절이다. 한국전쟁 전후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가 수면으로 떠 올랐을 때였다. 휴일에 관련 행사가 열렸다. 그날은 부모님을 포함해서 가족들끼리도 작은 행사가 계획된 날이었다. 휴일이었지만 그 행사를 취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가족 행사도 빠질 수 없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행사장에 도착해 관계자들을 만나고 확인해야 할 부분을 챙겼다. 행사는 길게 이어졌고, 나는 그 중간에 취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월요일 신문에 기사가 보도되고 나서, 기자가 현장에 가지 않고서 기사를 쓴 게 아니냐는 독자의 지적이 있었다. 해당 독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현장 취재를 통해 기사를 작성한 것임을 알려드렸다. 독자의 오해는 풀렸지만 마음 한구석엔 무언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그런 생각은 옳든 그르든 내 몸과 마음에 독소가 됐고, 그런 독소가 해가 갈수록 차곡차곡 쌓였다. 

궁핍

경제적 궁핍함도 있었다. 도대체 어땠길래 ‘궁핍’이라는 표현을 쓰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 중에 타는 것들만 따로 모아 주말에 본가에 갈 때 가져가서 버렸다. 본가 마당에 물을 끓일 때 사용하려고 만든 아궁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타는 쓰레기봉투를 아궁이 옆에 던져두곤 했다. 어느 주말에 본가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 식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대충 짐작이야 했지만 그런 정도인 줄은 몰랐다. 도대체 그 월급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 그걸 보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꼼꼼한 분이다. 쓰레기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분이다. 일일이 하나하나 확인해서 버린다. 특히 자식과 관련된 것은 개미처럼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챙기신다. 내가 필요 없다고 아무렇게나 버린 것도 나 몰래 주워서 따로 챙겨놓으실 정도다. 단지 자식 손때 묻은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알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월급봉투를 그 쓰레기에 함께 버린 것이 내 실수였다. 어머니께서 내가 버린 쓰레기를 확인하다가 월급봉투 속에 들어있던 월급명세서를 보신 것이다. 사실 그 시절 우리 회사 월급은 월급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적긴 했다. 그때는 아내도 일을 했지만 벌이가 적었기 때문에 두 사람 월급을 합쳐도 중견기업 종사자 한 사람 월급보다 적었다. 그러니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서 사람 만나기가 겁나던 시절이었다. 그게 나만 그랬을까. 그 시절 우리 회사 동료들은 다들 그랬을 것이다. 조금씩 나아졌지만 힘든 시기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엄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큰아이가 네 살 무렵이었다. 어린이집에서 ‘가족’ 그림을 그렸는데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엄마와 아이만 있었다. 나는 없었다. 아빠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고 휴일에도 집에 없는 사람이니 아이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 니가 틀린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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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이웃 라이더가 찍어준 사진.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할 때 발견하게 되는 나의 밝은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보면 굳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설명으로 달지 않았도 되지 않을까. /조재영 기자

섹스와 오토바이

대략 한 10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정말 지쳤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나를 딴 세상으로 인도해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때는 그 딴 세상이 먼 나라이든, 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4차원의 세계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뛰어나지도 않았던 기자, 특종도 하나 못해본 기자 주제에 피해 의식만 지나치게 컸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현실도피처가 필요했고, 그 도피처로 나를 보내줄 도구를 찾아냈다. 그게 바로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는 지친 나를 지금과는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보는 세상은 사무실 책상이나 자동차 운전석에서 보는 세상과 분명히 다른 세상이었다. 같은 세상이었지만 다른 세상이었다. 어떻게 다르냐고 설명을 요구하지 마시길 바란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설명한다고 해서 제대로 전달될 리 없기 때문이다. 섹스 안 해본 사람한테 한 시간 동안 설명한다고 해서 그 느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그냥 좋을 뿐이다.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주말 마다는 아니지만(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빡빡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짬을 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려고 노력했다. 오토바이 덕분에 나는 일상에서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쉴 수 있게 됐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부드럽게 됐다. 그런 일상을 블로그http://blog.naver.com/32day32에 기록했다. 당시 <피플파워> 편집장을 겸했던 김주완 편집국장께서 블로그를 보고 “블로그에 쓴 것처럼 피플파워에 연재해보면 어떻겠냐?”라고 제안을 하셨다. 좋아하고 재미난 것을 해보라고 제안이 왔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느 지면에 오토바이 이야기를 신나게 써보겠나? <피플파워> 2014년 7월호에 첫 편이 실렸다. 그리고 이번 5월호까지 한 회도 빠지지 않았다. 5년을 거의 다 채웠다.

내 나름의 또 다른 기록도 있다. ‘조재영 기자의 모터사이클다이어리’는 회사 업무와 상관없이 내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취재처럼 평일에 하지 않았다. 언제나 주말이나 쉬는 날, 혹은 휴가를 내서 다녀왔고, 지금까지 단 한 푼도 회사에 비용을 청구한 적이 없다. 심지어는 사진 조차도 대부분 개인 카메라와 휴대폰을 사용했다.

5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나의 여행 이야기가 매월 실렸고, 그 덕분에 여행 과정의 느낌과 사유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한편씩 차곡차곡 쌓였다. 가끔은 숙제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작업이었다. 연재는 내 ‘생각 주머니’를 채우는 데 큰 도움이 됐고, 훗날에도 젊은 날을 추억하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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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지켜주는 오토바이 헬맷. /조재영 기자

가벼움

지난겨울을 지나면서 1000cc가 넘는 큰 오토바이를 처분하고, 배기량을 4분의 1로 줄여 320cc짜리 오토바이를 새로 장만했다. 배기량과 크기를 줄인 것은 더 자유로워지고자 함이다. 가볍게 가고 싶다는 소망이다.

모터사이클 라이프 시즌2가 시작됐다. 자~ 출발!

 

(편집자 주: 조재영 기자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58화를 끝으로 연재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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