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기운이 돋으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산천에 생명이 움트면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몸은 근질거린다. 꽃눈이 터져 세상이 바뀌면 더 그렇다. 군항제 막걸리에 취해 집으로 가다 까만 하늘에 빛나는 벚꽃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새 주둥이처럼 내민 새순들은 더 반갑다. 메말랐던 산등성이는 폭신폭신하게 변해간다. 연둣빛은 눈을 편하게 한다.
한동안 이런 풍경은 전화기 사진함에 담긴다.
그러나 한때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달뜬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다른 감정이 피어오른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왜 그럴까? 하면서 생각해본다.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만 만끽하기엔 해마다 찾아오는 봄은 무겁다. 뚝뚝 떨어진 붉은 동백을 볼 때면 핏빛 제주4·3을 잊을 수 없다. 찬란한 신록 속에선 세월호가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존재 자체를 흔드는 참변이다.
함께 슬퍼할 때 슬퍼해야 한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할 때 잘못은 되풀이되지 않고, 당사자들이 껴안은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을 함께 들어주는 것일 테니, 그래서 세상은 더 안전해지고 나 또한 건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최근 진주에서 발생한 참극…. 앓게 되는 요인은 여럿이겠지만 정신병은 사회가 만든 병이다. 온전한 정신머리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도 있지만 사회 책임이 더 무겁다. 그렇게 보면 진주사건 또한 우리가 함께해야 할 아픔이다.
시간은 또 흘러 만발했던 꽃은 졌다. 그러면서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고 읊조린다.
싸하게만 여길 필요는 없다. 연둣빛은 푸르게 짙어간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는 영글어가고, 머지않아 씨앗이 여물겠지.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