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바빠 놓쳤던 공부, 온가족 응원 받으며 3월 입학

올해 3월 함안 대산초등학교에 입학해 새 학기를 시작한 박분선(72) 할머니. 지난 18일 오후 1학년 교실에서 만난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머니 자리는 1학년 학생 9명 중 책·걸상 높이가 제일 높은 뒷자리였다. 어느덧 입학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서 그런지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자리에 '3번 박분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서광숙(56) 담임교사는 "우리 학교 4학년에 어르신 학생이 계시고, 박분선 할머니가 2번째 어르신 입학생이다. 제가 어르신을 가르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엔 부담이 됐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든든하다. 할머니는 리더십이 있어서 반 학생들도 잘 따른다"고 했다.

▲ 3월 함안 대산초등학교에 입학한 박분선 할머니. 할머니는 "공부해서 마을 이장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가난해서 미뤘던 학업 = 할머니는 지난해 여름 자전거를 타고 대산초교를 처음 방문했다. 대산면 연산마을 집에서 학교까지는 자전거로 산길을 지나 20분 거리다.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혹시 나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고, 흔쾌히 "당연히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남편도 "하고 싶은 걸 하라"면서 지지했다.

할머니는 "친정이 의령 지정면 성당리다. 비가 오면 골짜기에 물이 많이 들어서 농사가 잘 안됐다. 6남매 중 둘째였는데,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집에서 소 먹이를 주는 일을 했다. 그때 친구 중에 필통 매고 학교 가는 걸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결혼 후 50년가량 수박 하우스 농사를 지었다. 오랜 농사로 몸이 불편해지면서 농사일에서 손을 놓았다. 그러다 이웃 할머니들에게서 '학교에서 공부 가르쳐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여태껏 글도 모르고 사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냈다.

지난 2017년 다른 초등학교 문해학교에 잠깐 다니다가 아예 초등학교 6년 정규 과정을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대산초교를 찾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입학 전 "책상도 필요 없다. 글만 배우면 된다. 구석에 앉아 글만 배우게 해주소"라고 했다.

▲ 인터뷰 후 집으로 돌아가는 박 할머니. 학교가 신입생에게 나눠준 교통안전 가방덮개를 착용한 모습이 눈에 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가족들 지지 속에 도전 = 할머니가 입학을 결심하자 온 가족이 도왔다.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가족에게 고맙다고 했다. 며느리가 산수책과 운동화를 사다줬고, 손자들은 필요한 물건을 챙겨줬다. 고등학교 다니는 손녀는 연습장, 막내 초등학교 3학년 손자는 연필깎이와 자를 선물했다. 중학생 손자는 할머니에게 산수를 가르쳐주고 있다. 특히 남편은 학교에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한다며 바지를 3벌이나 선물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은 지금 왜 배운다고 그러냐고도 한다. 친구들한테도 같이 학교 가자고 했는데, 친구들은 '남한테 안 속고 살면 되지'라고 말했다. 생각이 다 다르더라. 그런데, 나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오니, 너무 좋다. 학교서 배우니까 학교를 와야 되는 갑다 싶다"고 했다.

글을 몰라서 받았던 설움을 이제는 털어내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남짓 기간이지만, '한글 받침 어려운 거 아니면 이제 좀 쓴다'며 웃었다.

할머니는 입학해서 국어, 수학, 안전한 생활, 미술, 체육, 음악을 함께 하는 통합교육을 배우고 있다. 8살인 반 학생들은 처음에는 "어른이 함께 공부해요?"라고 물었지만, 이제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수업이 어색하지 않다. 반 학생들과 할머니가 똑같이 손을 들고 발표를 한다.

할머니에게 꿈을 물었다. 할머니는 "글을 모르니, 남한테 나서지도 못하겠더라. 멀거이 해 가지고 글도 모르니, 남들이 저더러 부녀회장·새마을지도자를 하라고 추천해도 할 수가 없었다. 학교 졸업하면 78살이다. 이제는 공부해서 마을 이장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교실 뒤편 게시판에도 화가, 의사, 디자이너, 요리사, 경찰관 등을 꿈꾸는 반 학생들과 나란히 할머니의 '마을 이장' 꿈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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