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도 주민들도 안전망 없이 방치돼
국민보호 시스템엔 여전히 구멍 숭숭

"제가 원하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살해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진주시 등 지원기관과의 회의에서 '뭘 원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우문현답이다. 엉망인 응급구조 시스템과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유족들의 원망 섞인 절규이기도 하다.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나자 "이대로 가면 끝이겠지요"라며 자조의 말도 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임시방편으로 이번 사태를 수습하려는 행정기관에 대해 경고도 했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며 5주년 추념 행사가 열리는 와중에 진주에서 제2의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한 조현병 환자가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이 몰리는 길목인 계단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대피하는 같은 동 주민 10여 명을 무참하게 사상케 한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 안인득은 장기간 방치돼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고통받던 위층 주민 또한 방치돼 있었다. 경찰에 호소했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 위층 주민은 위험으로부터 국가가 보호해주길 원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고, 선장이 도망간 세월호 안에 버려진 학생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국민보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설계되고 작동됐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세월호 이후 사회안전망 구축을 쉴 새 없이 논의했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행정의 정신질환자 관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고, 경찰 또한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장 시급한 것이 폭력성이 강한 중증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인권에 막혀 행정에서 주저하는 사이에 시민의 인권은 처참히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한 이상 더는 미루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밝힌 입장문을 보면 해답이 나와있다. 국가 책임하에 중증 정신질환자가 입원과 외래치료 등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강제 입원 등을 국가가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은 거의 불가능하다. 절차 등이 까다롭고 복잡해 가족은 강제입원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지만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실제 안인득도 형이 강제입원을 시키려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했다. 행정입원도 가능하지만 행정소송 우려 등 각종 한계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경찰도 민원과 행정소송을 염려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입원 치료가 어렵다면 외래치료라도 가능해야 하는데 이 역시 강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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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가 11만 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행정과 경찰이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 어디에서 이번과 같은 참극이 벌어질지 모른다.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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