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교원 돕고 싶어했다는 고인
교사·교육 중요성 알아줘 고마워

아직도 따뜻한 햇볕이 그립고 꽃피는 새봄이 기다려지는 지난 입춘 무렵이었다. 늙수그레한 할머니 한 분이 청년을 대동하고 경남교육삼락회 사무실을 찾아 왔다. "여기가 퇴직한 선생님들의 모임인 삼락회 사무실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좀 앉으세요." 서로 인사를 하고 억센 남자의 손이지만 커피 한잔을 대접하였더니, "우리 남편도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작년에 고인이 되셨는데, 병중에 있으면서도 살아생전에 여윳돈이 있으면 몇 푼이라도 삼락회를 좀 도와주어야 할 텐데…" 하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고 한다.

요즘 퇴직한 사람들은 대부분 연금을 받고 있지만 80살이 넘은 사람은 연금을 택하지 않고 일시불로 받았다. 퇴직 당시에는 시중 은행 금리가 높아 이자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한다고 조금 도와주고 나니 연금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요즘 노후 생활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할머니의 남편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겨울에는 역의 대합실이나 양지바른 쪽에 넋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먼 하늘만 쳐다보며 소일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인근에 있는 무료 급식소를 찾는 퇴직 교원들이 많다고 하시면서, '국가에서 별다른 대책이 없으면, 퇴직교원단체인 삼락회에서라도 도와주는 일을 하면 좋을 텐데'하고 유언을 남기더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생전에는 삼락회를 예사롭게 생각했는데 막상 남편이 돌아가시고 혼자되자 서울에 있는 아들네하고 살림을 합치려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삿날까지 받아 놓았단다. 70년 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아쉽고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혼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말씀에 가슴이 메었다. 그중에 제일 아쉬운 것은 돌아가신 남편이 입버릇처럼 삼락회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 가슴을 후벼 며칠 동안 걱정을 하다가, 매월 받는 연금 일부라도 조금씩 모아 삼락회에 기부하고 고향을 떠나려고 삼락회를 찾아 왔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생각하였으며, 자기 수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오복의 하나로 삼았다. 그러나 죽음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고인은 병원생활을 오래한 것도 아니고, 천수(天壽)를 누리다가 편안히 가신 데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삼락회 말씀을 하시기에, 더더욱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유언장보다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잊어서는 안 될 유언이라고 생각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다는 말씀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너무나 고마워서 "사모님! 얼마 되지 않는 연금인데, 손주들에게 용돈도 좀 주고 할머니가 잡숫고 싶은 것 많이 잡수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거절을 하였으나, "돌아가신 남편의 유언인데 적지만 받아 주셔야 돌아가신 고인이 눈을 편히 감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씀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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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생전에도 청백리에 버금가는 삶을 사시면서, 선생님들이 신바람 나게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지론과 우리나라가 이 정도 발전하고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도 무료급식 행렬에 서 있는 말 없는 퇴직 교원들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자주 말했단다. 기부한 금액이야 많고 적음을 떠나서 고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리면서, 고인께서 삼락회를 살펴주시는 정성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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