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인 학교 건물 바꾸기 더디기만 해
관리·통제 중심의 철학과 규정 혁신부터

경남교육은 책임교육, 혁신교육, 미래교육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경주에서 박종훈 교육감의 특강을 들었다. 주제는 '학교 공간 혁신으로 접근하는 미래교육'이었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강연을 소개하면서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근대의 학교는 교도소, 감옥, 병원처럼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만시지탄을 느끼지만 이런 성찰과 사유가 경남의 전체 교장을 대상으로 공론화되어 반갑고 감사하다.

일찍이 유현준 교수는 어느 강의에서 "학교는 교도소다"라고 외쳤다. "아이들이 다양성을 경험하지 못해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는 애를 보면 왕따한다. 전국 어디를 가도 학교는 똑같다. 양계장 닭이랑 제일 비슷하다. 초중고 12년 그렇게 키우고 너만의 길을 가라고 하는 건 양계장에서 키운 닭에게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며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 유 교수는 "평당 공사비가 가장 낮은 데가 초중고 학교다. 격납고가 더 비싸다. 학교가 550만 원, 교도소가 850만 원, 시청이 750만 원이다. 제일 낮은 수준에서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보내는 거다. 제가 보기에는 아이들이 미래라고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꼬집었다.

박종훈 교육감은 유현준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획일적 공간, 다양성이 없는 공간으로는 미래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억눌려 지내는 약자는 학생들이다. 아이들 중심의 학교 공간 혁신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도 지난 1월에 미래교육 변화에 부응하고 쾌적하고 안전한 학교 공간을 조성한다는 내용의 '학교시설 환경개선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학교 공간 혁신을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18조 90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강의를 듣는 내내 만감이 교차했다. 교육감은 몇 년 전부터 저렇게 분명한 관점과 철학을 갖고 앞장서서 학교 공간을 바꾸자고 방향을 제시하고 교육부도 거들고 나서는데, 왜 현장의 변화는 느리고 더디기만 할까? 정말 예산이 부족해서 그럴까?

아니다. 관점과 철학의 빈곤 문제다.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면 관점과 철학이 바뀐다. '관리와 통제'라는 철옹성 같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의 벽을 허물면 강력한 실천의지와 열정이 나올 것이다. 관점과 철학에 맞는 규정과 절차를 신속히 바꾸는 일부터 먼저 하길 바란다.

상주중학교는 지난해 2월 말에 본관 교사(校舍)동 정밀안전진단 결과 E등급을 받았다. 그 사이 행정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많은 진통과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지난주 1년 2개월 만에 드디어 철거작업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많다. 최근에는 남해초등학교도 정밀안전진단 결과 E등급을 받고 우리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앞으로 2023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철거대상 학교 건물은 200동 규모라고 한다.

어차피 철거하고 새롭게 짓는다면 정말 튼튼하고 아름다운 미래형 학교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 실제 상주중학교를 사랑하는 전국의 많은 교육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학교'에 어울리는 학교 건축물 하나 반듯하게 세워보라는 기대와 응원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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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의 벽은 의외로 높다. 기존의 규정과 절차를 따르다 보니 처음 우리의 기대와 상상력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렸다. 결국, 근 50년 만에 재건축을 하면서도 '근대학교의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설계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교직원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 감출 길이 없다. 그 많은 돈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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