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박물관 학술제 발표 정리
이순신·수군 중심 서술 탈피
경제·외교 등 다각도로 분석

국립진주박물관은 정유재란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를 모은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을 발간했다. 이 책은 정유재란 발발 7주갑(420년)이 되던 2017년 국립진주박물관이 주최했던 국제학술심포지엄 '정유재란 1597'에서 발표하였던 글을 정리·보완한 것이다.

16세기 말 조선에서 벌어졌던 임진왜란(1592~1598)은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역사에 큰 파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대항해시대라는 세계사적 배경이 더해지면서, '동아시아 세계대전' 또는 '동아시아 7년 전쟁'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4월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파죽지세로 한양을 거쳐 짧은 기간에 조선의 대부분을 점령할 정도로 일본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조선수군의 활약, 명의 참전으로 장기화의 조짐을 보이게 되고, 1593년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탈환과 일본군이 총공세한 제2차 진주성전투 이후 명나라와 일본은 본격적인 강화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4년간의 강화협상은 결국 결렬되었고, 1597년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하였는데,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정유재란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파직과 백의종군, 원균의 칠천량해전 패전과 이순신의 통제사 복귀, 명량해전의 기적적인 승리, 노량해전의 승리와 이순신의 전사 등과 같이 '이순신'과 '수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정유재란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 〈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허남린 외 8명 지음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에 수록된 논고는 정유재란 당시 인물이나 개별 사건을 넘어 조선·명·일본이 개입된 7년 전쟁을 외교·경제·건축 등의 분야에서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허남린 교수(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는 '정유재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전쟁 장기화에 따른 각국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투영된 강화협상 과정, 전쟁의 전략을 통해 정유재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전쟁의 전개양상에 주목하던 관점에서 벗어나 투입한 전쟁비용을 통해 정유재란 해석을 새롭게 시도한 글도 주목된다.

완밍(萬明) 연구원(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은 만력회계록(萬曆會計錄)을 근거로 명 조정의 총수입을 추산하고, 전쟁비용을 파악했다. 결과 만력 초기(1580년대) 은으로 환산한 명 조정의 총수입은 1810만 167냥 규모인데, 임진왜란·정유재란에 2000만 냥 이상의 막대한 전비(戰費)를 투입했고, 이것이 전쟁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라 주장했다.

한편, 일본 가고시마 국제대학의 오타 히데하루(太田秀春) 교수는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주둔한 사천왜성에 주목했다. 이곳은 정유재란 당시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인 사천전투의 무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이곳은 전쟁이 끝난 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장소,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표상하고 시마즈 가문의 조상을 위한 현창 장소, 독립 후에는 이순신 등 조선 수군의 활약과 한국전쟁의 위령 장소로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과거 전투장소가 변화하는 시대상황과 결부되어 새로운 의미로 후대에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이 흥미를 끈다.

이 밖에도 남원성 전투와 명량해전, 울산왜성·순천왜성 전투 등 정유재란 시기 조·명 연합군과 일본군 사이에 전개되었던 주요 전투들의 실상에 대한 글도 수록됐다.

또한 강화협상 진행과정,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세판단과 정책 등 한·중·일 학자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을 시작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은 16세기 말 '동아시아 7년 전쟁'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을 지속적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푸른역사 펴냄, 408쪽,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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