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와 과일로 채운 역사적 거장의 만찬
"고통 주는 건 최고의 악"
자신만의 음식 철칙 세워
'비건'식 느타리버섯 덮밥
간단 조리·고소한 맛 가득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그는 화가이자 철학자이자 과학자이자 음악가이면서 근본적으로 휴머니스트였다. 레오나르도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남달라 수학과 음악, 회화 등 모든 학문에서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그는 또한 채식주의자였다. 채식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전부터 레오나르도는 동물을 죽이는 것을 살인처럼 생각하며 고기를 먹지 않았다.

▲ 냄비에 양배추와 느타리버섯을 손으로 쭉쭉 찢어 담는다. 그 위에 간장, 설탕, 청양고추 액키스, 콩가루를 넣는다./김민지 기자











◇고기를 거부한 르네상스 거장 = 레오나르도는 말했다. "나 자신은 움직이지 않는 식물만을 먹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명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얻을 가치가 없다." 그는 채소나 과일을 즐겨 먹었다. 부유한 고객의 초청을 받아 저택에 갔을 때도 그는 기름기 많은 음식과 고기를 거부했다.

레오나르도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당시 유행했던 신(neo)피타고라스주의, 또 다른 하나는 레오나르도의 절친한 채식주의자 친구 때문으로 추정된다.

신피타고라스주의자는 채식과 금욕을 강조했고 피타고라스와 같은 철인을 숭배했다. 레오나르도는 육체의 고통을 최고의 악으로 보았고 동물도 인간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의 절친 영향도 있었다. 견습 시절 친구 토마소 마지니(Tomasso Masini)는 채식주의자였고 음식에 엄격했다. 그는 겨울에도 가죽, 양모, 털로 된 옷을 거부했고 가죽으로 된 신발이나 벨트도 착용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에게는 자신만의 음식 철칙이 있었다. 몇 가지 꼽아보면 △배고플 때만 먹고 가벼운 음식으로 만족할 것 △음식은 잘 씹어 먹고 잘 요리된 단순한 것만 먹을 것 △분노와 더러운 공기를 피할 것 △잠을 잘 자고, 자는 동안 머리와 마음에 행복을 느낄 것 등이다.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았던 레오나르도는 자신만의 요리법을 노트에 적었고 몇 개의 레시피가 모여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 음악가 봄눈별이 현미밥 위에 느타리버섯을 담고 있다./김민지 기자

◇시간을 버는 채식 = 음악가 봄눈별(40)은 2008년부터 채식주의자의 삶을 선택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현미밥과 채소로 꾸려진 식단이 참 맛있게 보였다. 궁금했다 그 레시피가. 그래서 그에게 채식 메뉴를 하나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봄눈별 집은 김해 봉리단길 회현종합상사 근처다. 마침 장을 보고 온 그를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그의 손엔 1500원어치 느타리버섯이 있었다.

"오늘 메뉴는 느타리버섯 덮밥입니다. 근데 이거 요리라고 할 수 있나? 너무 간단한데…." 그렇게 그는 요리를 시작했고 채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봄눈별은 2008년 광우병 논란을 보도한 PD수첩을 본 후 고기와 계란, 우유를 먹지 않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부턴 해산물도 먹지 않았다. 그는 곡식과 과일, 채소만 먹는 비건(vegan·완전채식)이다.

▲ 냄비에 양배추와 느타리버섯을 손으로 쭉쭉 찢어 담는다. 그 위에 간장, 설탕, 청양고추 액키스, 콩가루를 넣는다. 불 위에 놓고 끓이다가 적당량의 물을 부어주고 또 끓이면 된다. /김민지 기자

채식주의자도 종류가 있다. 비건은 고기·물고기·난류·유제품을 일절 먹지 않는다. 락토(lacto)는 고기·물고기·난류는 먹지 않되 유제품은 먹는다. 오보(ovo)는 고기·물고기·유제품은 먹지 않되 난류는 먹는다. 락토-오보 채식주의자는 난류·유제품은 먹고 페스코(pesco)는 고기만 먹지 않는다.

봄눈별은 냄비에 양배추를 손으로 쭉쭉 찢어 담으며 말했다. "채식은 개인의 선택이지 법과 원칙이 아니에요. 채식주의자라 하면 거기에 대해 간섭을 하고 우려를 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예요."

그는 냄비 가득 버섯을 쭉쭉 찢으며 담았다. 수북했다. 그 위에 생강가루를 솔솔 뿌렸다. 그리고 간장 적당량(6스푼 정도)과 청양고추 진액을 넣었고 다크 머스코바도(비정제 사탕수수) 2~3스푼도 더했다. 거기에 그만의 비법, 전분 대신 콩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끓이다가 자작하다 싶으면 적당량의 물을 부으면 됐다.

"간단하죠? (웃음) 저는 요리를 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냉장고와 식용유를 쓰지 않고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하는 거죠. 설거짓감이 거의 나오지 않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멋진 요리를 하는 대신 요리를 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소박한 음식을 만들려고 해요."

그는 비거니멀리즘이라고 칭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봄눈별이 만든 단어다. 비건과 미니멀리즘을 합한 단어로 소박한 생활을 뜻한다. 그는 매일 현미밥을 먹는다. 현미를 7시간 물에 불린 후 전기밥솥에 밥을 한다. 이날도 그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사온 투명 밥그릇에 현미밥을 소박하게 담았다.

짭조름한 간장 냄새와 고소한 콩가루 냄새가 코를 찌르는 느타리버섯을 밥 위에 예쁘게 담았다. 그 위에 깨소금도 얹었다. 봄눈별은 슬로 쿠커로 만든 김치찜도 내놓았다.

▲ 완성된 느타리버섯 덮밥. 색깔만 보면 흡사 짜장 덮밥 같다./김민지 기자

그가 만든 느타리버섯 덮밥은 흡사 짜장덮밥과 같아 보였다. 간장 색깔 때문이었다. 느타리버섯과 밥을 야무지게 섞어 한 입 크게 넣었다. 현미와 흰 쌀이 섞인 밥은 먹어봤는데 100% 현미로만 만든 밥은 처음이었다.

봄눈별 눈에는 몇 번 안 씹고 넘기는 듯해 보였는지 "꼭꼭 씹어야 돼요"라고 말한다.

콩가루를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짭조름한 간장 양념을 순하게 만들어줬다. 입안이 고소했다. 조리 시간도 20분 내외였고 만드는 법도 간단해 집에서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완성된 느타리버섯 덮밥과 김치찜(오른쪽)./김민지 기자

봄눈별은 "술과 담배, 커피와 고기, 해산물을 끊으면서 매월 100만 원어치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그 결과 한 달에 200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 '시간을 버는 채식'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실천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문헌

<역사 속의 채식인>(2008), 이광조,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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