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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29) 카타니아

3323m 활화산 에트나에 오르니
이틀 묵은 카타니아 그림 같아

조문환 시민기자 webmaster@idomin.com 2019년 04월 23일 화요일

1669년 5월 25일, 이날은 에트나 화산 분출로 카타니아(Catania)를 비롯한 인근 도시에서 2만 명이 사망했었던 날이다. 그 훨씬 전인 1169년에는 1만 6000명이 사망했던 기록도 있다. 최근에는 2017년에 분출하여 아직도 살아 있음을 천명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이 에트나산은 '죽은 신(神)의 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아그리젠토에서 실망한 여행자들을 위해 남겨 놓은 살아 있는 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신은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로 말이다.

백 리도 더 되는 거리에서도 에트나 산(Mount Etna)을 금방 알아 챌 수 있었다. 이제 나의 여정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물론 괴테도 그랬다. 이 산을 오른 후 하산할 때면 여행에서도 하산해야 할 시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타고 있는 산으로 올랐다. 카타니아역 입구는 불나방들의 집합소처럼 에트나산을 등정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버스를 타고 중턱까지 거의 2시간, 다시 케이블카로 20여 분, 다시 사륜 구동 버스로 20분, 트레킹으로 30분, 그렇게 하여 3323미터 고봉에 섰다.

▲ 에트나산(Mount Etna)은 아그리젠토에서 죽은 신만 보았던 여행자들에게 신은 살아 있다는 증거의 장소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2017년에 분출했다. /조문환 시민기자

◇화산

올라가는 길 사면에는 불에 탄 검은 재들이 산을 뒤덮고 있었다. 타다가 만 주택들, 나무들, 그 정상 부위에는 하얀 눈으로 덮였다. 바람은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거셌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로 인간의 도전을 애써 막아내려 했다. 언제나 신을 거역했던 이들, 신은 거역하기 위해 있다는 듯 기어코 그 불가마와도 같은 화구에 서서 끓는 속을 내려다보았다. 타다 만 소나무 가지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분화구에서는 가스가 솟아올랐다. 메시나에서만 1만 200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3만 명이 집을 잃은 대 재앙의 울분이 아직도 다 가라앉지도 않았다.

내 발 바로 아래는 내가 이틀 동안 헤매고 다녔던 도시 카타니아와 그 주변의 해안가들이 손에 잡힐 듯하였다. 온종일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카타니아가 손바닥만큼 작은 동네로 보였다. 그렇기도 했지만 도시는 하나의 평평한 평지로서 산과는 완전히 별개의 땅처럼 느꼈던 곳이 이제 보니 에트나산의 발등이 아니었던가? 내가 이틀 동안 머물고 잠을 잤던 곳이 에트나산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이 동거하는 장소였다. 불나방들이 저 죽을 줄 모르고 불을 향하여 돌진하듯 언제나 사람들은 죽음의 언저리에서 숨 쉬고 있었다.

◇미완성 희곡

괴테의 에트나 등정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오로지 마차와 두 발에만 의지했으니 오늘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불나방과 같은 열정은 그나 나나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8개월 동안의 여정이 이 살아 있는 신의 산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가 이 땅 시칠리아에서 본 그 원시적 자연, 분출하는 화산, 황홀한 바다와 섬들, 이들은 문학가인 그에게는 잘 준비된 재료처럼 작품이 도사리고 있었다. 산맥과 하늘, 바다를 동시에 녹여 최적의 원소로 만들어 그의 작품 나우시카를 쓰기로 작정했다.

오디세우스는 배가 난파되어 표류하다 나우시카가 사는 스케리아 섬에 떠밀려 왔다.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마련해 주었다. 결국은 오디세우스가 자기의 남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 알키노오스 왕 또한 오디세우스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미 결혼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이를 간곡히 만류한다. 괴테는 이런 나우시카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희곡을 썼지만 미완성에 그치고 말았다.

▲ 타오르미나 원형극장, 백 리도 더 되는 거리의 에트나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조문환 시민기자

◇이상과 현실

메시나로 오기 전에 카타니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해서 타오르미나(Taormina)에 내려 산봉우리에 있는 원형극장(Teatro Antico di Taormina)을 감상하고 바로 내 손으로 잡힐 듯 가까이 와 있는 에트나를 행해서 다시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난 후 메시나 문(Porta Messina)에서 카타니아 문(Porta Catania)을 거쳐 아예 타오르미나 역까지는 걸어 내려오면서 점점 고도가 낮아지면서 바뀌는 시가지와 바다의 변화를 오후의 태양과 함께 즐겼다.

메시나 역 바로 앞 항구에 정박해 있던 이탈리아 철도청에서 운항하는 페리를 타고 20여 분 만에 메시나 해협을 건너 빌라 산 지오반니에서 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지난 번 뚱보 아줌마 마리아 집과는 대조적으로 밝기도 했지만 건너편 메시나 쪽으로 너른 문이 나 있어 굳이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아도 일몰과 그 붉은 태양이 바다에 잠기는 장면과 가로등과 조명등이 밝게 빛나는 메시나 항을 편안히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었다.

잠깐 사이에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있는 곳은 현실이 되고 그 너머는 늘 이상이 되었던 것 같다. 건너편에 있을 때에는 이상이었던 빌라 산 지오반니가 단지 20분가량 배를 타고 건너와서 보니 현실이 되어 내가 그를 밟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적으로 보였던 이탈리아가, 역사의 물결이 도도하게 흘렀던 시칠리아가, 그것도 그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나를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들였던 메시나와 빌라 산 지오반니가 이제 와서 보니 현실이 되어 내 곁에 있는 것 아닌가?

차라리 지금의 이상은 나의 나라, 내 고장, 나의 작은 집과 마당이 이상이요 이상 중의 이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현실에 신물이 나서 도망치듯 빠져 나왔건만 석 달 만에 그 현실이 이상이 되고 이상에 저려 있는 듯했던 나의 이상 이탈리아는 너무도 분명한 현실이 되어 있다. 카타니아 시내의 에트나 거리(via Etna)에서 빌딩 사이로 보였던 에트나 화산은 눈까지 덮여 그림처럼 보였는데 분화구에 서서 바라본 카타니아와 그 해변이 오히려 그림이 되어 있었다. 이상과 현실, 현실과 이상이 서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었다.

◇그리움

시간이 흐른 후 내가 그 자리를 떠나 있으면 모든 사물은 그림이 되고 이상이 되는 것이리라. 내일 아침에 이곳 빌라 산 지오반니라는 시골 동네를 떠나 저녁에 피사의 앞바다를 보고 있을 때 이미 나는 시칠리아를 하나의 꿈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시칠리아에 도착하여 메시나에서 팔레르모로 가는 기차에서 바라본 북쪽 연안의 티레니아해, 밤 12시까지 시끄러웠던 팔레르모의 볼라로 시장, 눈이 내린 듯 하얀 트라파니 염전, 내게 바가지를 씌웠던 아그리젠토의 택시 기사, 눈이 부셨던 시라쿠사의 원형극장, 이런 것들이 나의 이상 가운데서 손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이곳 이탈리아가 너무나도 확실한 현실이지만 내가 살아왔던 동네 사람들은 나를 이상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카타니아 시가지가 현실이면서 이상이 되었듯이, 눈 덮인 에트나산이 아래에서 볼 때는 이상이었지만 내가 그곳에 섰을 때는 오히려 그곳이 현실이 되었듯이 이상과 현실은 단지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그렇다. 어제는 모두 이상이요, 꿈이 되는 것이다. 떠나왔던 곳은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리움들을 매일 남기고, 또 남기고 떠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물러나면 그것은 그리움이 되는 것이다.

그랬다. 카르타고가 멸망의 종지부를 찍게 된 것도 결국은 그리움이었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카르타고는 로마 당국으로부터 바다에서 15킬로미터 내륙으로 들어가서 살 것을 명령받았다. 단지 15킬로미터였다. 하지만 카르타고는 그것만은 거부했다. 패배자가 겨우 15킬로미터 물러나는 것이 무슨 대수였을까? 그리움으로 남게 될 그들의 바다를 못 잊어 할 것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그리움 따위'로 그들은 패권자 로마의 명령을 거부하고 항전했던 것이다. 단 한 명의 최후까지. 타인의 그리움을 지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존심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 나는 이 아침에 또 하나의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섬 하나를 남기고 떠난다. 이 작은 항구 빌라 산 지오반니도 그럴 것이다. 시칠리아여 잘 있거라! 나의 이상이여! 나의 현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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