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먹는 것·먹이는 것 간절해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그 크기와 무게

이맘때 즈음 무작정 밤거리를 쏘다닐 때가 있다. 이팝나무를 찾아서. 쌀밥 같아 보여서 이름 붙여졌다는데, 수년째 요양병원에 계신 아흔 바라보는 우리 외할매도 많은 어르신이 그랬듯 어릴 적 이팝나무 아래 앉아 주린 배를 달랬다고 했다. 보리밥을 먹는 것도 사나흘에 한 번, 쌀밥은 꿈에서도 못 봤다는 할매가 손녀에게 내민 밥 한 그릇은 언제나 반도 못 먹어 배가 불렀고, 까만 밤 더욱 뽀얀 이팝나무 꽃 무더기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이제는 못 먹을 할매의 밥 한 그릇을 다시 받아든 것 같아 마음이 부르다. '…그 집의 대문이 열린 것은 혼자 살던 노인의/부음이 꽃잎처럼 떨어진 날이었다/외국에 사는 아들내외는 너무도 담담하더란다/석 달이나 지나 발견된 해골의 구멍 안에는/캄캄한 외로움이 그렁거렸다고 한다/목련나무가 꽃등을 내리고 조문을 끝내자/대신 이팝나무가 하얀 고봉밥을 가득 담아/담 위로 고개를 쭈욱 내밀고 있더란다/잘 먹어야 그리움도 훤히 켤 수 있다는 듯이'.(이영옥 시인 작 '이팝나무 고봉밥' 중)

아담한 그 다세대 주택에는 자신을 예술가라 내세우지만 사실 개그맨이 더 어울릴 것 같은 101호 백수 청년, 불평불만이 많고 성격도 불 같아 주민들은 물론이고 고교생 딸과도 항상 티격태격하는 102호 남자, 자기 자신 외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그의 딸,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뒤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104호 여자와 그의 뒤에서 수군대거나 외면하는 주민들이 산다. 어느 한 사람도 쉽게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이웃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곳에 이사 온 시골 노인 김영광은 곧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 보게 만든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밥 한 그릇으로…. 사고로 다쳐 오랫동안 누운 채 지내는 아들에게 그저 밥 한 번 다시 먹이고 싶은 마음을, 김 씨는 닭죽을 끓여 이웃과 나눠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 무엇으로도 허물 수 없을 것 같던 벽은 그 닭죽 한 그릇에 녹아내린다. "쌀밥 한 공기 딱 멕이고 싶은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만 쏙쏙 골라 묵어도 좋고, 펄펄 끓는 닭죽 퍼먹다가 입천장 까져도 좋으니, 제대로 된 밥 한 끼 맥일 수만 있다면."(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작품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김영광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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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먹을 수 없는 밥 한 그릇과 먹일 수 없는 밥 한 그릇. 그것은 이토록 크고 무겁다. 그런데 금품수수·청탁보도 의혹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다 결국 지난달 시민단체로부터 형사고발당한 한 언론인은 과거 칼럼에 이렇게 썼더라. "기자들이 김영란법에 반발하는 건 알량한 '밥 한 그릇' 때문이 아니다. … 기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직무연관성'의 덫에 걸려 취재원의 입이 닫히는 것이다." 그는 틀렸다. 밥 한 그릇을 알량하다고 한 것도 틀렸다. 가장 걱정하는 게 밥 한 그릇은 아니라고 한 것도 틀렸다. 밥 한 그릇은, 밥 한 그릇만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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