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된 지 한 갑년이 지났으나 우리 사회에서 친일과 일제 잔재는 여전히 청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일제 치하 36년이었음에도 이처럼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잔재가 박힌 것은 해방 이후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채 소위 친일파들이 득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밀양에서 친일 음악과 가요박물관에 이어 밀양의 상징이라 할 아랑 영정이 친일 미술가로 정평이 난 김은호가 그린 것이라는 것이 문제 되는 것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은호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 화단을 주름잡긴 했으나 이후 친일행적이 드러나 대표적인 친일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진주의 논개 영정 등 그가 그린 것들이 철훼를 두고 논란을 거듭한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단을 위시하여 우리나라 법조계 문화계 등 거의 전 분야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친일 잔재를 거두는 것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으로 온전히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광복되었지만 아직 진정한 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며 우리 국민 스스로 해방을 찾아야 하고 친일 잔재를 일신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친일 잔재의 청산은 국민 모두 원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것이 미완에 그치고 있는 까닭을 이번 밀양 아랑 영정 논쟁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랑 영정은 육영수 여사가 시혜를 베풀어 당시 최고 화가였던 김은호에게 그리게 한 것이니 친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은 일제 치하에서 친일적 행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니 괜찮다는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친일 부왜는 민족을 팔아먹은 것이다. 이것은 시효가 없으며 죽어도 지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추상같은 심판이 아니면 민족을 지켜낼 수도 스스로 긍지를 가질 수도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했다. 우리 사회, 나아가 시의회에서 이런 식으로 친일 부왜가 미화된다면 이것은 정말 위험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 저변에 일제의 그림자가 얼마나 두텁게 자리 잡고 있는가. 법률용어를 비롯하여 일본식 한자와 표현이 생활 저변에 알게 모르게 깔려있다. 친일 잔재 청산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청산은 청소이다. 말끔히 비질해야 비로소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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