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신세 처량하게 느껴질 때 있지만
'아내·아이 웃을 수 있다면' 생각하자

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누구나 흔하게 하는 말이다. 얼마 전 친한 친구와 술을 먹었다. 25년 지기 친구라 서로 간에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그런데 본인 생일 때 아내에게 서운한 게 많았나 보다. 사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40대 중반에 생일 챙긴다는 게 어찌 보면 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친구는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자기 딴에는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가정에서 받는 대접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서운한 감정이 많았던 것 같다. 대뜸 필자에게 "내가 돈 버는 기계도 아니고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필자는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사적으로 받아쳤다. "야 우리 돈 버는 기계 맞잖아. 당연한 걸 왜 그래."

벌써 20년이나 된 구닥다리 이야기지만 필자가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불면증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잠을 푹 자야 다음날 맑은 컨디션으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칠 텐데 도통 잠이 오지를 않는 거다. 눈을 감으면 방금 전까지 공부했던 법률, 판례가 떠오르고, 자야지 자야지 하는 강박관념에 의미도 모르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계속 되뇌어 보지만 잠은 저만치서 고놈 재주 부리는 거 재밌네, 계속해봐 하며 쳐다보기만 했다. 시험공부를 하는 몇 년간 잠이라는 당신은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그런데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 또 한 번 피나는 등수경쟁을 하게 되었을 때는 웬걸 잠이 술술 잘 오는 거다. 오히려 사법연수원에서의 공부할 분량이나 난이도가 사법시험에 비해 훨씬 높았음에도 그랬었다.

사람이 하는 일에 물리적인 어려움은 정해져 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인 것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해야 할 일이라도 어떤 심리적 상태로 대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는 걸 보게 된다. 사법시험에 떨어지면 상상하기도 싫은 고학력 백수가 되어서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하게 되지만 사법연수원에서는 시험을 망치더라도 최소한 변호사는 하잖아, 그런 심리가 나도 모르게 작용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돈 버는 기계냐고 항변하는 그 친구나, 돈 버는 기계 맞잖아, 뻔한 걸 왜 물어라고 받아치는 필자나 해야 할 일의 물리적인 어려움은 대동소이하다. 필자 역시 자신의 존재를 돈 버는 기계 정도로 격하시키는 표현이 좋은 건 아니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짜증이 난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다면 내가 힘들어도 내 아내, 내 아이들이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싶다. 필자가 가족들에게 내가 돈 버는 기계야 이랬을 때 아내는 그럼 나는 식사 준비하고 청소하는 기계인가요, 아이들 역시 우리는 뭐 공부하는 기계예요, 이렇게 맞받아친다면 얼마나 머쓱해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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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신세가 처량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감정에 너무 오래 머물러있지는 말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물론 나 자신을 속이는 위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억지웃음이라도 웃었을 때 우리 몸에 좋은 엔도르핀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뭐 세상살이 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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