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이 설계한 것 바로 조선왕조 철학
경복궁 '근정-사정-강녕전' 유교적 이상세계 구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냐'는 시인 이상의 말처럼 한때는 천재같은 존재였으나 지금은 박제처럼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 버린 공간이 궁궐이다. 하지만 박제라고 단정해 버리기는 아쉽다. 궁궐은 그곳을 만든 사람, 나아가 그 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조선왕조를 한 번에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는 게 가장 빠를까? 겸재나 단원의 그림? 백자? 박연의 음악? 모두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는 것은 궁궐일 것이다. 청나라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자금성에 가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자금성을 통해서 중국을 짐작하고, 버킹엄궁의 건축 언어를 통해 영국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들렀던 <아이언맨>을 비롯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제작·출연진이 들른 곳이 경복궁과 경희궁이었던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단순히 멋진 사진 배경만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궁궐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 얼마 전 우리나라에 방문해 경복궁과 경희궁을 찾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제작·출연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궁궐 구성의 원칙

경복궁은 조선의 첫 궁궐로 조선왕조가 구현하고자 했던 세상을 그려낸 곳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따라야할 격식, 즉 건축의 문법이 있었다. 일단 첫째가 3문3조(三門三朝)다. 궁궐에는 문 세 개와 3개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3조는 공식적인 행사 공간인 외조(外朝), 일상적인 통치 공간인 치조(治朝), 통치자의 생활공간인 연조(燕朝)를 말한다.

두 번째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이다. 조정은 앞에, 생활(寢)공간은 뒤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뭔가 어려운 용어 같지만 따지고 보면 왕도 사람인 이상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원칙에서 궁궐을 만드는 사람들은 외조를 가장 밖에 배치하고, 그 다음 치조, 그리고 연조를 가장 뒤에 배치했다. 이 3조를 각각 정전, 편전, 침전이라는 말로도 불렀다.

경복궁의 정전은 근정전(勤政殿·국보 223호)이다. 광화문, 흥례문 그리고 근정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건물이다. 그 뒤에 있는 공간의 중심건물이 사정전(思政殿·보물 1759호)이다. 다음 공간은 강녕전(康寧殿)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경복궁의 정전은 근정전, 편전은 사정전, 침전은 강녕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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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녕전.

◇정전과 편전

정전과 편전은 국가 통치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당연히 다른 건물들과 격이 달라야 하는 요소가 필요했고,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월대(月臺)이다. 월대는 근정전을 받치는 큰 석조구조물이다. 얼핏 보면 기단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월대는 기단과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기단은 기둥에 튀는 빗물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기단 위로 떨어지면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단은 지붕 안쪽에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처마를 지난 빗물이 기단 바깥쪽 땅바닥에 떨어진다. 하지만 근정전에서 기단으로 보이는 석조물은 처마선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이건 기단이 아니라 월대이다. 달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월견대(月見臺)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의례를 진행하던 시설이었다. 월대가 있는 건물은 의례와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니 월대의 존재는 건물 위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이렇게 중요한 시설이니 당연히 이 월대를 만드는 데도 법식이 따른다. 황제는 3단을 사용할 수 있고, 왕은 2단만 가능했다. 그래서 경복궁 근정전에는 2단 월대가 구성되고 그 위에 본전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근정전은 국가를 대표해야 하는 건물의 위상에 맞게 2층으로 올렸고 화려한 다포 위로 팔작지붕을 만들었다.

이에 비해 편전인 사정전은 규모를 살짝 줄였다. 월대를 생략했고 건물도 1층으로 만들었다. 일상적인 집무를 위한 공간이다 보니 근정전처럼 격식을 생각할 이유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조정 건물 사이의 이런 차이점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것은 바닥시설이다. 각종 공식 행사가 이루어지는 근정전 바닥은 벽돌인데 사정전은 마루를 깔았다. 그래서 근정전은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가 일을 보는 곳이고 사정전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다.

◇침전

침전은 생활해야 하는 곳이니 일단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정면기준으로 대청은 3칸, 양쪽의 생활공간도 3칸씩 구성했다. 그래서 정면 9칸 건물이 기본이 된다.

경복궁에는 두 개의 침전이 있는데 강녕전과 교태전이다. 일반적으로 강녕전은 왕의 건물, 교태전은 왕비의 건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왕과 왕비가 엄격하게 공간을 구분해서 이용했다는 근거는 적다. 법식상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구분했지만 오히려 그런 구분 없이 사용했다는 증거들이 더 많다.

강녕전과 교태전 모두 최근에 복원한 건물이라 당시 모습이 어떠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현재 다시 만든 교태전은 정면 9칸 건물이고 강녕전은 11칸으로 만들었다. 강녕전을 좀 더 살펴보자. 기본 9칸의 좌우로 작은 복도 같은 공간을 굳이 칸을 구분해서 덧붙였다. 기능적으로 꼭 필요한 구조가 아닌데도 굳이 11칸을 만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힌트는 자금성 태화전에서 찾을 수 있다. 태화전은 자금성의 정전인데 3중 월대에 정면 11칸 건물이다. 정확하게 황제의 법식을 따르고 있다. 조선은 끊임없이 천자와 제후국의 경계를 넘나드는 나라였다. 예를 들어 묘호다. 제후국은 원나라 간섭기의 고려왕들처럼 충렬왕·충숙왕 같은 명칭을 써야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태왕이 아닌 태조가 나라를 만들고 세왕이 아닌 세종이 기틀을 잡은 나라였다. 이건 천자의 예법이었다. 강녕전도 이런 식으로 황제의 법식을 살짝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놓고 11칸을 만들지는 않고 유사시 변명이 가능하게 좌우에 살짝 복도를 덧붙여 놓았다.

중심이 되는 생활공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총 9개의 공간이 나오는데 가운데가 왕과 왕비의 공간이다. 주변 8개 공간은 주인공의 생활을 돕기 위한 궁녀들이 있는 공간이었다. 왕이나 왕비를 수발드는 데 8칸이나 필요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왕의 공간에는 수납하는 공간을 두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옷장 같은 것을 놓았을 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암살자의 매복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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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전.

◇정도전과 경복궁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은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설계되고 이름 붙여졌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 10월 7일 두 번째 기사를 보면 태조는 정도전에게 새 궁궐 전각의 이름을 짓게 했다. 이에 정도전은 궁궐과 각 전각의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직접 조선을 설계했고 그 설계를 경복궁이라는 건축을 통해 구현하려 했던 정도전의 말은 지금 다시 봐도 큰 울림이 있다. 인터넷 'sillok.history.go.kr'로 들어가 검색어로 '경복궁'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내용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주옥같은 말들로 가득 차 있어 같이 이야기하면 더 좋겠지만 한 가지만 짚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머지도 꼭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정도전은 지금 필자가 설명한 근정전-사정전-강녕전 순서가 아니라 강녕전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유로 정도전은 왕도 사람이니 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 곳에서야 왕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겠지만 혼자 있는 곳에서는 흐트러지기 쉬울 것이니 언제 어디서나 안일한 것을 경계하는 것이 왕의 기본이라고 내세운 것이다. 왕에게 혼자 있을 때도 열심히 자신을 다스리라는 말을 하는 신하의 모습이 정도전이 그린 유교적 이상세계였다.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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