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에 녹슬지 않은 기량 뽐내

경남도민체전이 열리는 거제종합운동장 주경기장. 21일 오전 9시 30분께부터 10㎞ 마라톤에 출전한 남녀 선수들이 속속 주경기장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마지막 한 바퀴 트랙을 다 돌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한 선수가 있었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라고는 하지만 검은 피부였다.

경기가 끝나고 숨을 고르고 난 후 그를 잠시 만났다. 창원시 대표로 출전한 그의 이름은 김창원(42·본명 부징고 도나티엔).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이라고 했다. 얘기를 나눠보니 '난민 마라토너' '귀화 마라토너'로 그쪽에서는 꽤 이름이 있는 선수였다.

지난 2003년 대구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을 때 부룬디 국립대학생이던 그는 마라톤 선수로 출전했다. 대회가 끝났지만 그는 내전에 휩싸인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눌러앉았다고 했다.

부룬디는 아프리카 동남부에 있는 나라로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지만 1993년 인종 대학살로 이어진 내전으로 오랜 세월 불안한 정정이 유지되고 있었다.

▲ 김창원 씨가 도민체전 마라톤에서 힘껏 달리고 있다. /경남체육회

유나이티드 출전 후 UN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2005년에야 난민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인쇄소 직공 등 궂은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우연히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 현대위아 직원을 만나면서 그는 '창원 사람'이 됐다.

당시 현대위아는 전사적으로 마라톤 육성책을 펼치고 있었다. 마라토너 출신인 창원 씨가 회사에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회사에 다니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은 그는 귀화신청을 했고 2010년 11월 귀화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이름이 '김창원'인 이유에 대해서 "한국인에 가장 많은 김씨와 내가 한국에서 정착하고 살게 도와준 창원을 더해 지었다"며 자신이 '창원 김씨 시조'라고 설명했다.

마라톤은 그가 한국과 창원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버팀목이었다. 지금까지 각종 마스터스 대회 우승 경력만 40여 회에 이른다.

이날 도민체전에서는 6위에 머물렀지만 그의 기량은 녹슬지 않았다.

"도민체전에는 전문 선수들도 출전하므로 우승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해마다 각종 마라톤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성적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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