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확 선생 의지로 야구부 결성 "강한 신체, 나라 찾는 원동력"

창원은 '야구 열정' 가득한 도시입니다. 유별난 분위기는 '마산 아재'라는 말을 낳기까지 했습니다. '야구도시'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창원 야구 역사'가 100년을 막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창원은 '지역 야구사'를 정리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경남도민일보>가 관련 기록, 사진,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원로 야구인 기억 등을 체계적으로 담아보려 합니다. <창원야구 100년사>라는 이름으로 매주 월요일 자에 그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겠습니다.

▲ 1922년 전조선야구대회에 참가한 마산선수들 모습으로, 이 사진이 '창원 야구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모습이다. /경남야구협회

◇일제강점기 의식 전환 수단 = 대한민국 야구는 1800년대 말 꿈틀대기 시작했다. 인천영어야학교에 다니던 일본인 학생이 쓴 1899년 2월 3일 일기에는 '베이스볼이라는 서양식 공치기를 시작하고 5시경에 돌아와 목욕탕에 갔다'고 적혀 있다. 공식적인 출발점은 1904년으로,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1872~1938)가 '황성 YMCA 야구단'을 만들면서다.

이후 성인팀 아닌 '학교 팀'이 전국적으로 우선 퍼져나갔다. 1905년 한성학교, 1907년 휘문의숙, 1911년 경신학교·중앙학교·배재학당·보성학교·오성학교 창단이었다. 이 대열에 동참한 것이 마산(현 창원) '창신학교(현 창신중·고)'였다. 1906년 설립된 창신학교는 1914년 야구부를 만든다. 그 중심에 자산 안확(1886~1946) 선생이 있었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짙게 담겨 있다.

안확 선생은 1911년 창신학교 부임 후 학생들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창신 90년사>에 잘 담겨 있다. '유교 사상과 조선 500년 풍습이 몸에 배어 있어 학생들의 생활상을 보면 걸음걸이나 동작이 느렸고 점잔을 유지하려 했다. 또한 매사에 소극적이었고 소 먼 산 보듯 했다.'

안확 선생은 학생들에게 진취적인 의식·행동을 심어주려 했다. 그가 수업 시간에 한 얘기로, 그의 제자인 노산 이은상(1903~1982) 선생 구술로 전해지는 내용이다.

"나라 없는 백성은 사후에 천당 거지가 되나니, 잃었던 나라를 찾기 위해 무엇보다 여러분의 정신자세가 중요하다…(중략)…우선 여러분 걸음걸이부터 고쳐야겠다. 이 시각부터 당장 빨리 걷는 모습부터 가져라. 방안에 앉아서 책만 읽다가 나라를 잃어버렸으니, 이 어찌 피눈물 나는 선배들의 모습이 아니냐. 우리는 문도 해야 하지만 무도 닦아야 하겠다. 곧 건강한 신체가 나라를 찾는 원동력이 되니, 매일 집에서 체조하고 운동장에서 놀 때는 뛰면서 놀아라."

이러한 안확 선생 의지는 1914년 야구부(축구부 동시) 결성으로 이어졌다. 박영주(60) 지역사 연구가는 이렇게 풀이했다. "창신학교에는 민족주의 의식이 강한 사람이 많았죠. 마산 야구 탄생은 이분들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특히 안확 선생이 체육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야구는 팀 경기잖아요. 조선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일본을 이기기 위한 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미입니다."

일제가 이러한 분위기를 경계할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호주 선교사가 세운 학교라는 점이 야구 도입 초창기 일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계성학교와 친선전' 최초 기록 = 창신학교 당시 선수는 김성두·백두광·이광래 등이었다. 김성두는 나중에 마산 구성야구단(1926년 창단) 주축 멤버로 활동하기도 한다. 야구는 체육 종목 가운데 특히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하는데, 창신학교 당시 사정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은 새끼줄을 뭉쳐 야구공으로, 나무막대기를 방망이로 사용하는 식이었다. 당시 창신학교에 재직하던 호주 선교사들은 딱한 마음에 본국에서 운동 장비를 들여왔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장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연습 때는 사용하지 않았다.

창신학교는 당시 '연식야구'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과 같은 '딱볼' 아닌 '고무처럼 탄력 있는 공'을 사용하기에 위험도가 낮다. 실제 전국적으로 남아있는 1910년대 야구 사진을 보면, 포수가 대부분 얼굴 마스크만 착용하고 있다. 1920년대 이후부터 가슴·무릎 보호대까지 착용한 모습이 많아진다. 이재문(64) 경남야구협회장은 당시 경기 규칙에 대해서는 이렇게 전했다. "변함없이 같은 9인제였습니다. 규정이 지금과 같이 세세하지는 않았더라도, 큰 틀에서 지금과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창신학교 야구부가 외부 팀과 첫 시합을 한 것은 1915년이었다. 당시 대구 계성학교(현 계성중·고) 운동부가 친선경기를 위해 창신학교를 찾았다. <창신학교 90년사>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창신학교 밴드부가 양교 교가 연주와 응원을 하면서 마산이 떠나갈 듯했다. 이 광경을 보려고 창신학교 운동장에 운집한 군중은 경기 중 벌어지는 묘기와 새로운 운동을 보는 것이라서 그 신기함에 놀랄 뿐이었다.'

하지만 야구가 친선전 종목에 포함됐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마산야구 첫 시합'은 1917년으로 받아들여진다. 창신학교는 마산으로 수학여행 온 대구 계성학교와 시합을 펼쳤다. 계성학교 선수 가운데는 이후 '조선의 홈런왕'으로 이름 날린 이영민(1905~1954)이 포함돼 있었다. 말 그대로 친선전이었지만, 창신학교는 난타전 끝에 13-14로 석패했다.

1917년 또 다른 경기가 마산에서 열렸다. 7월 '제4차 일본 도쿄 유학생 모국 방문 야구단'이 국내를 찾았는데, 마산에서 1승을 거두고, 이후 대구에서 대구청년회와 1승 1패를 한 후 경성으로 향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산 상대 팀'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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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야구단 잇따라 구성 = 1910년대 말은 학교 밖 야구단까지 태동하는 시기였다. 1920년대 들어 여러 야구단 이름이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다. '마산청년회'는 1920년 4월 11일 창신학교 운동장에서 대구청년회 야구팀과 하루 두 차례 친선경기를 펼쳤다. 결과는 7-2, 17-2, 완승이었다. 이때 '마산 맹호단'이라는 축구팀이 대구청년회와 축구 친선전도 펼쳤는데,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마산청년회' 야구팀은 그해 9월 18일 역시 창신학교에서 부산진 청년단 구락부와 친선경기를 펼쳐 11-4로 이겼다. 당시 <동아일보>는 '마산의 야구경기'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을 짧게 다뤘는데, '마산의 대승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마산청년회'는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했다.

'마산실업청년단'은 1921년 2월 26일 창신학교 운동장에서 야소교청년면려회 야구단과 경기해 7점 차로 승리했다. 경기가 열린 시점이 겨울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를 더한다. '마산구락부 소속 전마산군'도 등장한다. '구락부'는 지금으로 치면 '클럽'이며, '마산구락부 소속 전마산군'은 마산 대표팀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팀은 같은 해 7월 13일 창신학교에서 '제6차 도쿄 유학생 모국 방문 야구단'과 경기를 펼쳤지만,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렇듯 창신학교는 1914년 마산야구 출발뿐만 아니라, 1920년대 접어들 때까지 마산에서 펼쳐진 모든 경기 주 무대 역할까지 했다. 그 이전 '마산야구 여명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김재하(61) 창신고등학교 교사 얘기다. "마산항이 1899년 개항했습니다. 일본이 마산포로 들어와 여러 새로운 문물을 퍼트렸는데, 야구도 그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창신학교 안확 선생이 어느 날 갑자기 야구를 꺼내든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뭔가 꿈틀대는 게 있었다는 거죠. 관련 기록이 없지만, 그리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 지역사회는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창원NC파크 마산구장' 명칭 관련 논란을 빚었습니다. 야구장 이름에 '마산'이라는 이름을 넣을지 여부가 핵심이었죠. 경남도민일보도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요, 결론적으로 타이틀을 <창원야구 100년사>라 정했습니다. 이 지역 야구 뿌리·줄기는 분명 '마산'입니다. 다만, 이 작업이 통합 창원시(2010년 창원·마산·진해) 이후 진행된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창단 과정, 그리고 현재와 앞으로의 이야기까지 담는 것이기에, 큰 틀에서 '창원'으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 참고 문헌

-<마산시사>, 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마산시 체육사>, 조호연 책임 집필, 마산시, 2004

-<창신 90년사>, 창신 90년사 편찬위원회, 1998

-<한국 야구사 연표>, 홍순일 편저, KBO·대한야구협회, 2013

-<사진으로 본 한국야구 100년>, 구본능·하일 편찬, 새로운사람들(대한야구협회·한국야구위원회 협찬), 2005

-<인천야구 한 세기>, 인천야구 백년사 편찬위원회, 2005

-경남야구협회 소장 자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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