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 정신적 고통 호소
국가트라우마센터·적십자사 등
현장 찾아 진료·상담·치료 진행

진주 방화·살인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같은 동 7층에 사는 ㄱ(58) 씨는 처음에 불이 난 줄 알았다. 오전 4시 30분께 무슨 소리가 나 못질을 하는가 생각했는데 10분 정도 지나 비명이 들려 이상하다 생각했다.

현관문을 여니 연기가 올라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ㄱ 씨는 어두컴컴한 가운데 한 사람이 누워 있는 걸 봤다. 핏자국이 있었다. 불 때문에 뛰어내려오다 넘어진 줄 알았던 그는 끔찍한 사건이 난 줄 몰랐다. 누워 있던 사람을 챙기지 못했다는 데 대해 죄스러웠던 그는 하루 종일 사건 장면이 떠올라 잠 한숨 못 잤다.

ㄱ 씨는 "오늘 상담을 받으니 의사 선생님이 잊으라고 하더라. '고생했다, 고생했다, 고생했다' 하고 나 자신을 격려하고 북돋워주라고 하더라"며 "버스에 타서 상담을 받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혼자서 다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 18일 진주 방화·살인사건이 일어난 아파트 현장에서 국가트라우마센터 의사가 상담을 하고 있다./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18일 오후 3시 국가트라우마센터 이동진료버스가 방화·살인사건이 난 진주시 가좌동 아파트를 찾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주민들을 다독였다. 대형 재난이나 사건사고 이후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생겼다.

1대밖에 없는 이동진료버스는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에 있다 이날 진주 현장에 도착했고, 19일까지 주민들 상담과 치료지원을 하고 다시 고성으로 돌아간다.

트라우마 상담을 받고 싶은 이는 이동진료버스를 찾으면 된다. 진료·치료·상담까지 다 할 수 있는 이동진료버스는 재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영남권역을 담당하는 이영렬 국립부곡병원장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져서 그 트라우마를 보듬는다고 우리들이 나와 있지만 굉장히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가 보인 '이상한 분노'가 다른 이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사회적 전염병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심리지원 현장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진단·치료·상담까지 이동진료버스에서 다 할 수 있다"며 "장소나 날씨 제약 없이 재난 현장 어느 곳이든 돌아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의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는 게 우리 임무다. 정신질환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발전할 기미가 보이는 분들은 전문기관과 연계한다든지 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챙길 수 있도록 연결한다"며 "이 버스 안에서 심리적 응급조치를 한다. 앰뷸런스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슬퍼해야 할지, 자책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 병원장은 "분노할 땐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분노가 역기능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전문가들이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며 "트라우마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넘어서 그것이 역기능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을 막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 18일 아파트에는 대한적십자사 심리회복지원센터도 문을 열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와 대한적십자사 심리회복지원센터, 경남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진주보건소도 아파트 단지 내 작은 도서관에서 주민 심리치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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