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방화·살인 피해유족 분노
경찰 안일한 대처 지적 잇따라
경남경찰청, 진상조사 착수

진주 방화·살인사건 피의자가 이전부터 범행 징후를 보였고, 수차례 신고가 접수됐는데도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경찰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8일 경찰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와 조치를 주문했다.

안인득(42)은 지난 17일 오전 4시 25분께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4층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전부터 피의자와 관련해 주민과 다툼 등으로 모두 8차례 경찰에 신고됐고, 피의자는 한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유족과 주민들은 경찰 대응이 부실해 사전에 참극을 막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에서 "피의자는 오래전부터 이상행동을 보였고, 불행을 막을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며 "경찰은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는가 돌이켜봐야 한다.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 결과에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경찰청은 이날 오후 진상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시작했다.

◇안 씨 수차례 신고·입건 = 피의자는 2015년 12월 범행을 저지른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이후 피의자 관련 경찰 신고는 모두 8차례에 이른다.

지난해 9월 26일 오후 아파트 출입문에 오물, 올해 2월 28일 아파트서 계란 투척 신고가 있었다. 3월 들어 출근길에 간장을 뿌림, 아파트 주민과 시비, 재물손괴, 윗집 주민과 시비 등 신고가 잇따랐다. 경찰이 아파트 신고 중 입건한 것은 재물손괴 1건뿐이다. 나머지 신고는 경찰이 피의자가 특정되지 않는다거나, 증거불충분·계도 등으로 종결했다. 물증이 없다며 윗집 주민에게 CCTV를 설치하라고도 했다.

아파트 밖에서 범행도 있었다. 피의자는 지난 1월 17일 자활센터에서 직원 등 3명을 폭행한 혐의로 벌금형 약식기소됐고, 지난 3월 10일 진주 한 주점 앞에서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쇠망치로 위협하고, 폭행하는 등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앞서 2010년 8월에는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20대 남성을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명령을 받기도 했다.

▲ 사건 발생 전 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되는 가운데 민갑룡 경찰청장이 18일 진주시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경찰은 뭐 했나" = 그간 경찰은 일명 '동네조폭'이라 이름 붙인 생활폭력을 근절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경찰청은 2017년 2월부터 한 달 동안 생활폭력 등을 집중 단속해 폭력·재물손괴 등 292명을 입건해 50명을 구속했었다. 그러면서 "생활주변 폭력 근절을 위해 적극적으로 신고하라"고 했다. 지난해 3월부터 100일간 특별단속을 벌여 주민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폭행·협박 등을 일삼은 2만 4548명(구속 599명)을 검거했다. 지난 2월에는 또 '생활주변 악성 폭력' 특별단속을 추진한다며 "경미한 사건이라도 피의자의 상습성·재범위험성을 확인해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피의자와 관련해 잇따른 신고가 있었는데도 안일한 대처가 화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한 피해자 유족은 이날 진주 한일병원에 차려진 합동분향소를 찾은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수차례 문제 제기를 해왔다. 그런데 경찰은 자료나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우리더러 잡으라고 하지 그랬나. 경찰은 왜 있나"라고 질타했다. 다른 유족도 "폭행과 층간소음, 재물손괴 등 경찰 신고와 관계기관 민원을 합하면 10건 이상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민 청장은 "조사해서 그에 따른 조치를 하겠다.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파악하겠다"고 했다. 또 민 청장은 이번 사건을 '작은 세월호'에 비유하며 경찰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사고 징후가 있었는데 왜 대응하지 못했느냐. 소홀한 부분이 있다면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국가배상소송까지 제기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대응하라"고 했다.

◇사법체계 안전망 부실 = 사법체계상 사회안전망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이 피의자에 대해 제때 정신감정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2017년 5월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자신이나 다른 이에게 해를 가할 위험이 있는 이를 절차에 따라 정신병원에 응급입원시킬 수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한 경찰은 "정신감정을 왜 진작에 않았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데, 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만 돼 있고, 실제 전문의도 판정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뚜렷한 위험이 아니면 응급입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법무부가 정신질환 전력 등을 경찰에 알려주지 않는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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