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친구 만나기만 바라는 사람들
내가 먼저 좋아하면 서로 좋은 사람 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분명 있다. 누구나 동의하는 '좋은 사람'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도 남을 것이다. 부드러운 사람, 따뜻한 사람, 사회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 겸손한 사람, 헌신적이면서도 양보할 줄 아는 사람, 관용적인 사람, 지혜로우면서도 용기 있는 사람 등. 근데 진짜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 누구도 좋은 사람을 꼽을 때 돈 많은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이나 인기 있는 연예인을 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본능적으로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좋은 사람'에는 넣지 않는 것이다. 묘한 모순이 발생한다.

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그 열의에 비하면 자기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귀농이나 귀촌 교육을 할 때 문답을 하다 보면 알 수 있다. 땅값 싸고 양지바르면서도 인심 좋고 이웃 좋은 마을을 고르지만 정작 자신이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고자 살피지는 못한다. 참 재미있는 불일치 현상이다.

지난달 말에 아주 좋은 곳에서 아주 좋은 사람들과 1박 2일 동안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영광에 있는 원불교 영산성지다. 아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20여 명이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는 걸 못내 아쉬워하면서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지켜질지 모르지만, 다음 약속을 함으로써 작별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고 하겠다.

평소 알고 지냈지만 특별한 인상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의 행사를 통해 인품이나 연륜 등에서 전혀 새로운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원로 교무님이 퇴임하게 되었고 이를 축하드리는 모임이었다. 그 교무님을 뵌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분이 그렇게 고귀한 집안에 태어나 평생을 성직자로 봉직하며 존경의 삶을 살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동료 교무님의 축사에서 절절히 느껴졌다. 한 사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든 생각은 '좋은 사람'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날 영산성지에서 뵌 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분들이었다.

좋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누구를 좋아하면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딱 그만큼의 '좋은 사람'이 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해도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거나 멀리하면 나도 그 사람이 싫어지고 멀어진다. 그래서 인심 좋은 사람이 한순간에 헤픈 사람으로 보인다든가, 똑똑하다고 여겨지던 사람이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강직한 사람이 융통성 없고 외고집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다.

영산성지를 다녀와서 그 감동이 남은 때에 동네 한의원에 들렀다. 갓 출간된 졸저 <마음농사 짓기>라는 책을 뒤적이고 있자니 옆자리 안마의자에서 쉬고 있는 장년의 아주머니가 "나도 요즘 우리 원불교에서 마음공부 한다"면서 책에 관심을 보였다. 오늘의 내 결론은 이렇다. 나는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고로, 내가 좋아하면 그 사람이나 그 장소도 나를 좋아하게 되고 서로 좋은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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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말을 빌려 내 결론에 권위를 더하고자 한다. 공자는 논어 옹야 편에서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낫다'고 했다. 이 말을 이렇게 고쳐보자. '좋아하면 알게 되고, 좋아하면 즐기게 된다'라고. 한마디 더 덧붙이자. 좋아할지 말지는 환경변수에 종속되지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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