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개혁개방 경제시스템 도입 후 고속 성장
한식당부터 커피체인점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출발 전 베트남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마침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고퀄(고품질)의 최신 정보를 다수 접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두 정상께 심심한 감사를.

대개 이런 식이다. '베트남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 '공산주의 국가의 개혁개방 성공 모델' 등. 화려한 수식은 제각각이지만 핵심은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는 얘기다. 크게 와 닿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쌀'이었다. 고등학생 때 배웠던 '기후적으로 강수량이 풍부하고 일조량이 많아 1년에 삼모작을…….'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첫인상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1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천지개벽한 베트남이란 것을 알고 갔음에도, 공항에서부터 풍기는 자본주의 냄새가 낯설게 느껴졌다. 돈을 더 내면 입국심사를 빨리 받을 수 있다니.

▲ 베트남 호찌민 탄손누트국제공항. 수하물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한국 기업 '효성'과 '신한은행' 광고판이 반갑다. /김해수 기자

◇박항서와 25달러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입국심사장으로 쏟아졌다. 입국심사 부스마다 30~40명씩 늘어선 줄을 보니 빨리 들어가긴 글렀다 싶은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7~8개 부스 앞 사정은 비슷했지만 그나마 줄이 빨리 줄어들 것만 같은 '느낌 좋은' 줄에 붙었다.

그런데 맨 왼쪽 부스 앞에는 줄을 선 사람이 없다. 물론 내 쪽에서 접근할 수 없도록 막혀 있다. 자세히 보니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다. 전자비자 신청 때 봤다. 25달러를 내면 직원 도움으로 빠르게 입국심사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여기에 15달러를 더 내면(총 40달러) VIP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패스트 트랙 이용은 물론 짐까지 찾아 옮겨준다. 흔하다면 흔한 서비스지만 이곳은 베트남이 아닌가.

부러운 눈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9㎏에 육박하는 딸을 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남편이 서 있다. 25달러를 쥐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여차여차 줄을 선 지 30분 만에 나는 직원의 간단한 질문에 어정쩡한 웃음으로 답하고 입국심사장을 통과했다.

짐 찾으러 가는 길에는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자본주의 꽃' 대형 광고판 두 개가 걸려 있다. 효성과 신한은행. 무려 한국 기업이다. 애국심이 출중한 편은 아닌데, 국외에 나오니 괜히 자랑스럽다.

특히 신한은행 광고판에 눈이 갔다. 베트남에서 핫하다는 박항서 아저씨가 환한 미소와 더 환한 헤어스타일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효성이 광고 효과를 높이려면 서둘러 박항서의 대항마를 찾아야겠다. BTS(방탄소년단) 정도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익숙한 이름을 찾느라 20분이 훌쩍 지났다. 세계 어딜 가나 광고 명당을 차지하는 삼성을 비롯해 한화, KCC, GS, 롯데리아 등이 눈에 띈다.

▲ 사이공 스카이덱에서 바라본 호찌민 풍경. /김해수 기자

◇'도이머이'로 도약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다. 정식명칭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이다. 어떻게 외국 기업이 제품을 홍보하고, 돈을 내면 편의를 봐주는 일이 가능할까.

잠시 공부한 것을 썰로 풀자면, 현재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체제이지만 실질적인 경제는 자본주의를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베트남 토지는 전인민 소유로 국가가 관리한다. 다만 현지인은 영구 사용권, 외국인은 50년 사용권을 살 수 있다. 물론 1회 연장할 수 있고, 현지인에게 팔 수도 있다.

과거 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베트남이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976년 통일을 이뤘다. 그 때문에 통일 베트남은 자연스럽게 공산화됐다.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한 것은 1986년 개혁개방의 신호탄인 '도이머이(Doi Moi)' 정책을 도입하면서다.

쇄신이라는 뜻의 '도이머이'는 기존 공산국가 틀은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베트남 정부가 통일 이후 날로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를 돌파하고자 파격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베트남은 도이머이 초기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대규모 공적개발원조(ODA)와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에 성공했다. 그러나 근절되지 않는 부정부패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난관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베트남 정부는 개혁 의지를 꺾지 않았고, 2010년 전후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를 모색하는 세계시장 흐름에 호응하며 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베트남 GDP가 2474억 달러를 달성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10년 GDP 1160억 달러의 2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GDP 성장률은 지난 10년 이상 5%를 웃돌고 있으며, 2015년 이후 6%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한국 GDP 성장률 전망치가 2.6%라고 하니 우리로서는 참 부러운 나라다.

베트남에서도 호찌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항구로, 무역과 상업 중심지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오늘날 역시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로서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발전했다.

▲ 주상복합아파트 에스텔라하이츠의 쇼핑몰 에스텔라플레이스 모습. /김해수 기자

◇없는 게 없는 동네

숙소에 도착했는데 잘못 온 줄 알았다. 기사가 대형 쇼핑몰 앞에 내려준 것이다.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조금 돌아오면 입구가 있단다. 2분 정도 걸어가니 아파트 로비가 보였다.

집을 소개받은 후 저녁을 먹을 겸 쇼핑몰을 둘러봤다. 5층 규모 쇼핑몰은 한국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1층에 들어서니 다국적 기업 '스타벅스'의 초록색 간판이 떡하니 걸려 있다. 이 몰의 성격을 상징하는 듯했다.

카테고리별로 식당, 카페, 아기용품점, 피부관리실, 스포츠용품점, 수입식료품점, 잡화점, 옷가게 등이 있다. 얼마 있으면 소아과와 산부인과도 입점한다는 안내가 보인다. 한국에서 뭘 걱정했던 것인가.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한식당도 곳곳에 있다. 쇼핑몰 안에 떡볶이 전문점과 한식 고깃집이 있고, 푸드코트에서는 순두부찌개와 꼬리곰탕 등을 판다. 며칠 후 걸어서 10분 이내에 한식당 3~4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배달은 필수!

딸 이유식은 한국 죽 체인점에서 주문하기로 했다. 한국인 주인에게 아기가 6개월이라고 하니 알아서 곱게 갈아주겠다고 했다. 가격은 14만 동(약 7000원). 7번 정도 먹을 양이 나온다.

없어서 불편한 걸 찾는 게 더 어렵겠다. 한국이나 여기나 돈 있으면 살기 편한 건 매한가지다.


※참고문헌

<다시 뜨는 아시아의 별 기회의 땅, 베트남>(2019), 이광욱, 북오션콘텐츠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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