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가수의 덕목 제때 제대로 먹기
돈 안 되는 예술하며 잘 살아남으려면 요리는 기본

이 세상에서 밥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밥과 삶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는 해묵은 논쟁만큼이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잘 먹고 잘 싸야 잘 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겠지만 솜이불 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 따신 밥 떠먹으면서 결코 인디펜던트 스피릿을 논할 수가 없다. 자기 밥은 자기가 챙겨 먹고 설거지도 자기가 해야 진정한 인디 생활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요리에는 간장, 된장, 참기름, 파마산(파르메산) 치즈, 후추와 같은 소스와 쌀, 라면, 스파게티 면, 부추와 같은 기본적인 식자재가 사용된다. 이런 것들은 한 번 사 놓으면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으니 술 사 먹을 돈을 아껴서라도 꼭 구비해 놓아야 하겠다.

▲ 값싸고 양이 많은 부추를 사와서 부추비빔밥을 만들었다. 사투리로 정구지라고 부르는 이 풀이 나는 너무 고맙다. /김태춘 시민기자

◇부추비빔밥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동네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간다. 과일이며 채소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일단 값싸고 양이 많은 부추를 한 단 집어 든다. 사투리로 정구지라고도 부르는 이 풀이 나는 너무 고맙다. 아마도 수천 년 동안 나와 같이 돈 없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줬을 것이다. 값이 쌀 뿐만 아니라 비타민 A, C뿐만 아니라 칼슘, 철, 카로틴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고 하니 영양적으로도 훌륭하며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싱싱함이 오래가지는 않으니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리고 특유의 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으니 먹고 난 뒤 이를 깨끗이 닦도록 하자.

쌀은 살 때는 무겁게 가져오지만 자주 먹기 때문에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 쌀을 서너 번 씻어 밥솥에 정해진 눈금만큼 물을 넣고 취사버튼을 누른다. 밥이 다 됐다는 멜로디가 나오면 계란프라이를 한다. 계란이 익는 동안 넓은 그릇에 밥을 잘 담는다. 먼저 노른자가 반 정도 익은 계란프라이를 얹고 그 위에 잘 씻은 부추를 가위로 슥슥 잘라서 수북하게 넣는다. 진간장을 한 스푼이나 한 스푼 반 정도 넣고 참기름을 가볍게 둘러준다. 숟가락으로 잘 비벼주면 '부추비빔밥'이 완성된다.

◇부추라면·부추파스타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라면도 먹어야 된다.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이 쉽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이다. 라면을 끓일 때 수프는 반만 넣는다. 라면 수프 하나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일일 나트륨 권장 섭취량인 2000㎎ 이상의 나트륨이 들어 있다. 건강한 식습관이 건강한 육체를 만든다. 대신 물에 다진 마늘을 반 스푼 넣고 수프와 같이 끓인다. 물이 팔팔 끓을 때 면을 넣고 면이 익을 때쯤 계란을 넣는다. 계란은 취향에 따라 풀 수도 있고 모양 그대로 익힐 수도 있을 것이다. 면이 적당히 익으면 그릇에 라면을 붓고 역시 잘 씻은 부추 한 줌을 얹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골고루 둘러 준다. '부추라면'이 완성된다. 라면과 곁들일 김치가 없다면 양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물과 함께 식초, 설탕에 미리 절여 놓자. 어느 정도 김치의 역할을 대체 할 수도 있다.

라면마저도 이제 질렸다면 파스타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큰 냄비에 일단 물을 적당히 넣고 소금을 넣고 끓인다. 스파게티면 1인분을 미리 빼놓는다. 이제 소스를 만들 것이다. 원래는 계란 노른자만 써야 된다지만 흰자가 아까우므로 그냥 같이 젓가락으로 휘저어 잘 섞는다. 후추가 있다면 같이 넣어도 좋다. 피자를 배달시켜 먹을 때 딸려온 파마산 치즈가 냉장고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다면 이 또한 같이 섞어준다. 이것만으론 아직 부족하다. 간장을 반 스푼 정도 넣어줘야 짭짤하게 간이 된다.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타이머를 누른다. 당연히 집에 베이컨은 없을 것이다. 지난밤 먹다 남은 대패삼겹살이나 지난 명절에 수중에 들어온 스팸이 있다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약간 두르고 타지 않게 약한 불에 볶는다. 그마저 없다면 그냥 마늘이나 버섯이나 볶을 수 있는 재료라면 아무거나 넣어도 좋다. 타이머가 울리면 무언가를 볶고 있던 프라이팬으로 면을 이동시킨다. 면을 이리저리 괴롭혀 글루텐이 생성되게 하고 기름을 입혀준다. 이제 불을 최소로 줄여 프라이팬의 온도를 낮추고 앞서 준비한 계란간장치즈소스를 면에 고르게 흘려 짜장면을 비비듯이 잘 비벼준다. 완성된 스파게티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부추를 얹으면 '부추카르보나라'가 완성된다. 이때 불을 줄이지 않으면 계란이 아예 익어버려서 계란스크램블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 부추씨앗을 심었는데 싹이 났다. /김태춘 시민기자

◇음악과 정수기

언젠가 음악을 하는 형님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딴따라들의 흔한 이미지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때에 전 추리닝 차림으로 휴대용 가스버너에 라면을 끓여 끼니를 때우는 것인데 자기는 라면 말고 밥이나 고기도 잘 사먹는데 자기에게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형님이 얘기하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예술인이 창작활동으로 버는 평균 수입은 한 달에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평균이 그 정도니까 그보다 더 수입이 높은 사람과 함께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예술인도 많다는 뜻이다. 월세 및 각종 공과금과 교통비, 통신비, 창작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모두 제외하고 남은 돈을 식비에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끼니마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가 힘들다. 이로 인해 병을 얻거나 이를 비관해 목숨을 끊는 사례도 우리는 적지 않게 보았다. 그러니 예술이란 돈 안 되는 짓, 예술가란 세상 물정도 모르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음악 때려치우고 정수기 팔러 돌아다닐 수도 없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위하여 어딘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그 밥을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음식에 관련된 노래들이 넘친다. 쫄깃한 면발이 사랑을 엮어준다는 짬뽕, 어머니가 싫다고 하신 짜장면 같은 중화요리에서부터 프라이드를 좋아하던 첫사랑을 그리며 먹었다는 치킨, 단 한 번도 마음속에서 잊은 적이 없었다는 고기에 대한 예찬과 된장국, 김치, 딸기, 연탄갈비, 팥빙수, 아메리카노, 아이스크림, 떡볶이, 가락국수, 냉면 등 밥에 대한 노래도 종류별로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노래들에서 음식이란 게 다소 코미디스럽게만 묘사되는 면이 아쉽다. 노래를 듣는 이들이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람들도 아닌데 유독 음식을 주제로 한 노래들에는 동요 같은 멜로디와 그림일기에나 쓸 법한 얘기들이 유치하고 식상하다. 좋은 밥 먹고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 또한 인디가수의 덕목이라 하겠다.

해가 지고 어르신 내외가 사는 아래층에서 맛있는 냄새가 올라올 때 즘이면 나도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을 한다.

울타리 밑에 씨래기단은

바램이 불어도 더 둬라

낼 아침에 쪽절가매다(작은 가마솥) 홀 부세 넣고

토장(된장)을 풀어라 간장을 풀어라

지제라 볶아라 먹어만 주자

아이구 음 아이구 음

칠사만사가 음 백만사로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백촌리 잣골 민요 '시래기 타령'

그래, 오늘은 흰 쌀밥에 뜨뜻한 시래기 된장국을 먹어야겠다. 부추도 쫑쫑 썰어서 간장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과 같이 넣고 버무리면 맛있겠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밥 한 그릇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또 다른 행복도 느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아이구 음 칠사만사가 백만사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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