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서울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서울 중심
"시간 지나면 지역역할 중요…지역별 치료기관 확충 절실"
내달 부곡에 영남권센터 개소

5년 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처럼 사회 곳곳에서 재난을 겪은 이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재난에 따른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유 등 후속 대책이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역·권역별 치료기관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주기를 맞아 세월호 사건의 현실적 의미를 진단했다.

세월호 참사는 생존자와 유족,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이자 상처다. 하지만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체계는 서울 중심으로 짜여 있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등 재난 후유증을 치유하려면 지역·권역별 치료기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해마다 발생하는 대형 사고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트라우마 환자가 속출한다. 경남에서도 지난해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62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다치는 등 192명이 사상자로 집계됐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 유족들과 생존자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당시 합동분향소에서는 일시적이나마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대한적십자사 심리회복지원센터와 국립부곡병원이 활동했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크레인 붕괴 산업재해 부상자들뿐 아니라 목격자들도 트라우마를 호소해왔다. 2017년 5월 1일 거제조선소에서 800t급 골리앗크레인과 32t급 지브형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면서 지지대가 현장을 덮쳐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고, 25명이 다쳤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재난 발생 시 국가가 치료를 지원하는 트라우마센터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서울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작년 4월 문을 열었다. 그러나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서울에만 국한돼 있다. 트라우마센터가 제 역할을 하려면 예산과 인력 확충은 물론 지역사회에도 지원 체계가 갖춰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평상시에도 재난 후 피해자들의 심리치유를 지원할 수 있게 지역사회에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찾은 시민들이 교실을 둘러보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 부장대행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심리적·정신적 치료와 지원을 위한 국가적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센터 개소로 이어질 수 있었다"면서도 "재난은 수도권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서울에서 모두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최소한 권역별로 트라우마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 대행은 "재난 초기 중앙에서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역사회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며 "재난 피해자들이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역에도 준비된 트라우마 지원 체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스쿨닥터였던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도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지역 체계 필요성을 말했다. 김 원장은 "재난 트라우마는 성격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 자연재난과 달리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인공재난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심리 치료가 어렵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서 꾸준히 치료를 도와야 한다"며 지역별 치료기관 설치를 제안했다.

김 원장은 참사로부터 한발 떨어진 지금이 오히려 지원이 더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참사 당시 유가족 중에는 '아이를 먼저 보내 놓고 내가 뭘 잘했다고 치료를 받나. 진상 규명이 더 시급하지'라는 생각에 심리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이 많았다"면서 "긴 세월을 극복할 힘을 지니려면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 세월이 흘러 사건에 무뎌질 때야말로 참사 유가족들과 공동체에게 치유가 절실하다. 세월호뿐 아니라 모든 인공재난에 포함되는 문제"라고 했다.

국립부곡병원에 5월 20일 경남을 비롯한 경북, 부산, 울산, 대구 등을 포함하는 영남권 트라우마센터가 개소한다. 이영렬 부곡병원장은 지역 트라우마센터가 국가트라우마센터와는 달리 꾸준한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국가트라우마센터는 넓게 보면 전국을 돌본다고 볼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권역별 트라우마센터는 지역사회에서 상처 받은 이들을 치료할 수 있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부곡병원이 그 역할을 다해 인공재난 피해를 최대한 지역사회에서 풀어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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