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여는 주인공은 평범한 시민들
주인공 '노사모'회원들 인터뷰
팬클럽 결성서 서거 이르기까지
사계절에 비유하며 궤적 따라가
세상 바꿀 주체 누구인가 물어

▲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제작 과정 중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 /사진작가 김기종

또 노무현 이야기냐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벌써 그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노무현과 바보들>(김재희 감독) 이야기다.

◇노사모에서 시작한 이야기

영화는 애초부터 노사모를 주인공으로 했다. 그래서 원래 정했던 제목도 <바보들>이었다. 노사모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로 2000년 인터넷 PC통신으로 시작한 국내 최초 정치인 팬클럽이다. 본명보다는 절세미녀, 상추, 포청천, 가가멜, 여왕벌 같은 닉네임으로 기억되는 사람들.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이런 노사모 회원의 인터뷰다.

제작진이 만난 건 모두 84명. 지난해 4월 시작해 올해 3월에야 겨우 끝낸 긴 여정이었다.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기면 A4지로 3000매가 넘는다.

김재희 감독은 영화판에서 두드러지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상 기법과 기술 분야에서는 나름 고수로 통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미리 보면서 가장 먼저 '스타일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뜻에서 이번 영화 촬영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록 영상을 제외한 모든 인터뷰 영상은 김 감독이 이끄는 '스페이스 055'팀이 찍었다. 진주를 근거지로 한 이 팀은 이미 페이스북 페이지 '오프스테이지 라이브', '휴먼스 오브 진주', '디스커버 진주' 등을 통해 특히 경남에서 개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진, 음향, 영상 전문가 집단이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 경험이 없다시피 한 팀이었다. 아마 정식 영화가 아닌 인터뷰 영상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컷

◇기록보다 메시지에 집중하자

노무현을 다룬 <변호인>(양우석 감독, 2013년), <노무현입니다>(이창재 감독, 2017년)를 어떻게 비켜 갈 것인가가 마치 이번 영화에 주어진 가장 큰 숙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굳이 노무현이란 인물을 우회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노무현 없이 노사모 이야기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김재희 감독은 그래서 단순한 기록이 아닌 서사와 메시지에 집중했다. 노사모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2000년 4월 13일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당선이 확실한 서울 종로 지역구를 떠나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출마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던 그는 오히려 지역감정을 부추기던 한나라당 후보를 넘지 못하고 낙선한다.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만든 팬클럽이 노사모였다.

김 감독은 이런 노사모와 노무현의 관계를 사계절로 표현했다. 노사모가 결성되고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가 봄, 대통령 당선 이후가 여름, 퇴임 이후가 가을, 그리고 그의 죽음이 겨울이다.

◇여름을 가을로 착각한 사람들

노사모의 탄생 이야기가 들어간 봄 부분은 거의 영화 절반을 차지한다. 노사모 초기의 그 에너지가 그대로 잘 느껴진다. 만화 같은 연출을 선보이며 꽤 코믹하기까지 하다. '상식과 원칙' 그 하나로 뭉친 평범한 사람들. 돼지저금통으로 포장마차로 선거 자금을 모으고, 어렵게 취직한 직장도 때려치우고, 자기 돈 들여가며 선거 운동에 열을 모았던, 그러면서도 그런 일들이 그렇게 재밌고 좋았다던 바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는 여름이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를 은유하고자 김 감독은 성경 마가복음 13장 무화과나무 구절을 인용했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다가온 줄 아나니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 인지 알지 못함이라."

농사로 치면 여름은 농부가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절이다. 이때 부지런히 움직여야 가을에 결실이 풍성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 모든 열정을 쏟아낸 노사모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할 일은 다했다, 목표를 이뤘다며 각자 일상으로 돌아갔다. 당선 직후부터 정치권은 끊임없이 대통령 노무현을 흔들었다. 애초에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서도 지독하게 외로웠다. '저 좀 도와주세요.'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 이런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를 알아보는 이들은 잘 없었다. 대선 승리가 결실을 본 가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는 여름이었던 거다.

▲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컷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영화

결론적으로 <노무현과 바보들>은 노무현의 일대기를 그리자는 것도 아니고 노사모가 얼마나 훌륭했나를 알리자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관객을 향해 '바로 당신들이 세상을 바꾸는 주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도 노사모도 아닌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는 영화다.

실제 영화에 인터뷰를 한 84명이 다 등장하는 건 아니다. 실리지 못한 인터뷰 내용은 앞으로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또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 '휴먼스 오브 진주'에 '노무현과 바보들 특집'으로 인터뷰를 한 이들의 사진과 인터뷰 내용이 실리고 있으니 영화를 보기 전후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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