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향한 끈질긴 통찰

김진엽 시인의 시집 <꽃보다 먼저 꽃 속에>(천 년의 시작, 2018년 11월). 잔잔히 흐르는 시들을 보다가 문득 오랫동안 시선이 멈춘 시 '골고루 젖는 세상'. 여기에 삶을 오래 관찰해 온 시인의 시선과 호흡이 잘 담겼다.

"갯마을에 비가 내린다. 어장막 눅눅한 방 갯내 절은 알전구 눈알이 발개지는 화투판 벌어졌다. 이 괴춤 저 괴춤에서 나온 판돈 꼬깃꼬깃 멸치 기름이 났다. 비릿한 천 원짜리 몇 장 야금야금 홀아비 김 씨한테 붙었나 싶더니 고향이 강원도라는 정 씨에게로 팔랑팔랑 간다. (중략) 늘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만 있는 희한한 뱃사람들 화투판, 화투 놀이 끝나고 그 방 그 자리 윗목 아랫목 실실 밀어 치우고 새우잠을 잔다. 잡힐 듯 보일 듯 두어 걸음 앞인가 쫓아가면 어느새 저만치 가버리는 꿈 건지고 놓치다 등이 구부정하다. (후략)"

풍경 속을 가만히 걷는 시인, 그러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며 우두커니 선 생각들. 그러고는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지난 삶의 이력이 시가 된다.

"퇴근길/ 피자 한판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도의 가장/ 구슬땀에 몇 번이나 젖고 말랐을까/ 등판에 얼룩얼룩 핀 하얀 소금꽃/ 소금꽃 핀 조선소 작업복이 당당하다/ 안전화 소리/ 뚜벅뚜벅 힘차다/ 커다란 세상 한판 들고 가는 (중략) 피자 한 판에 골목이 넉넉해지는 봄밤," ('저녁' 중에서)

"팔월에는/ 금평리로 가봐/ 길이 바다고 바다가 길이다/ 사람들이 모두 다 바다와 한편이다/ 집집마다 대문이 바다 쪽으로 나있고/ 잘 때는 머리를 바다로 두며/ 눈은 감아도 귀 열어놓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산다" ('팔월에는' 중에서)

2000년 <조선문단>으로 등단해 18년 만에 낸 시집. 시인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삶의 창을 열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차마 단호하지 못한 시인의 심성이 시집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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