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거창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식 풍경이 달라졌다. 지난 8일 제68주기 거창사건희생자 합동위령제추모식이 거창군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날, 정부 대표로 행정안전부 정구창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이 참석했다. 이날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 거창군, 거창군의회, 전국거창향우연합회는 정부에 희생자들과 유족에 대한 배상 입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거창사건 희생자들과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요구는 1960년 4월혁명 이후 처음 제기되었다. 그러나 군사정변과 독재정권 치하를 거치며 유족들은 좌익으로 몰려 핍박을 받았으며 1996년 비로소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으로 명예회복 조치의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유족에 대한 배상이 빠지는 등 매우 미흡했다. 지금까지 배상과 실질적인 명예회복은 유족들의 숙원이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유족들은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있다.

거창사건은 한국전쟁 기간 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대표하는 비극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1951년 2월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에 의해 산청·함양·거창 일대에서 며칠 간격으로 1400여 명의 주민이 학살되었다. '특별조치법'은 산청과 함양 관련자들을 망라하고 있지만, 거창사건에 산청과 함양이 얽혀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아가 한국전쟁 기간 전국적으로 행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도 정부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경남만 해도 거창·함양·산청 외에도 창원·진주·사천·하동·통영·거제·밀양 등에서 끔찍한 참극이 일어났다. 전쟁을 계기로 정부가 자국민에게 대규모 인적 청산을 자행한 것은 세계 현대사를 통틀어 보아도 유례가 드물다.

한국전쟁 때 실종된 민간인은 10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시신도 수습되지 못한 민간인들일 것이다. 아직 정부는 민간인 희생자 숫자, 희생자 매장 위치, 유해 발굴 등 진상규명의 첫 삽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굴절된 한국현대사의 첫 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민간인 학살의 총체적인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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