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젠토서 출발해 7시간 만에 도착
아르키메데스도 젠체하지 않고 서있을 뿐

아그리젠토에서 시라쿠사(Siracusa)로 가는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카타니아까지 가서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야 했다.

아그리젠토에서 카타니아로 가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지난 후에 버스는 카니카티(Canicatti)라는 곳에 정차를 해서 손님을 태웠다. 운행 횟수가 그리 적지 않음에도 아침부터 65인석 초대형 버스는 만석에 가까웠다. 그 후에도 시칠리아 정중앙 정도에 위치한 칼타니세타(Caltanissetta)에 정차를 했고 카타니아에 도착할 때 까지 한두 번 더 정차를 했다.

카타니아에서 시라쿠사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든지 기차를 타든지 해야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더 지체가 되더라도 기차를 탔다. 답답한 버스가 맘에 걸리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에 와서 기차와 많이 가까워져 자연히 버스보다는 기차를 더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차역에서의 기다림은 또 하나의 즐거운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출발 시간까지 한 시간, 연착 시간 25분, 그래도 그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그 후에 내가 받게 될 보상이 기다리는 시간을 상회하고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로마의 테르미니역이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해졌던 피렌체 중앙역과 같이 사람에 밟혀 죽을 것 같은 복잡한 역에서도, 거의 간이역 수준에 이르는 시골의 작은 역에서도 여행의 묘미를 전달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 동상. 로마군사들에게 아르키메데스는 1개 군단과 맞먹을 만큼 두려운 존재였다. 로마군이 쳐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수학문제를 풀다가 칼에 죽었다. /조문환 시민기자

◇기차여행

카타니아역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 왔던 다른 역과는 또 다른 감흥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의 플랫폼은 바로 바다와 연결되어 있고 플랫폼 바닥과 평평한 지붕의 뻥 뚫린 넓은 공간 사이에는 이오니아해가 출렁이고 있었다. 짧은 기다림이 지난 후 한 시간 가까이 시라쿠사로 가는 운행 시간은 모든 것이 절제되고 단순화된 하나의 영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카타니아역에서 출발 후 약 10분간은 숨을 멈추게 할 만큼 멋진 광경이었다. 기차가 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 앉아 있는 내 옆으로 바다가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느리게, 느리게 동네가 지나가고 바다가 지나가고 올리브 나무가 스치더니 철교를 지나는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까지 누군가 정교하게 연출을 했을 것 같은 한편의 무성영화였다.

한참 동안 바다가 보이다가 작은 동네가 보이고 또 바다가 보이다가 저 멀리 카타니아 시가지가 바다에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듯이 가늘게 보였다. 오전에 세 시간 동안 사람들의 호흡과 체취에 힘들었던 나를 위로해 주는 시간이었다. 이런 때는 생각과 사고의 양을 축적하는 시간이 된다. 많은 도시를 방문하는 내게는 그 도시마다 절대량의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 동안에는 나의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감각을 통해서 그 도시의 인상을 뽑아내곤 했었다. 마치 크로키처럼.

◇농업국가

이탈리아는 농업 국가로 보인다. 이곳 시칠리아뿐 아니라 본토의 국경 시작 부분인 최북단의 볼차노부터 남쪽 끝 타란토까지, 로마 인근 서쪽의 바닷가인 오스티아부터 리미니나 그 훨씬 아래 비에스테까지 모든 국토의 산야는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농경지로 개간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 해 온 나라다. 그래서 산에 맥이 흐르고 그 맥이 동네나 사람의 운명까지 가른다고 믿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풍토다. 풍수지리설은 산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산이 뭉툭한지, 뾰족한지, 완만한지, 앞에 강이 흐르는지, 산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쭉 뻗어 있는지, 반의 반 풍수도 못되는 내가 이런 것까지 읊조릴 상황은 아니지만 동네 앞산이 뾰족하게 붓처럼 생기면 필봉이라고 해서 문인이나 학자가 날 터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산은 생산과 삶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운명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더 맞다. 이곳 이탈리아의 산 정상에는 성이나 성당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곳에는 풍력발전기가 수십 대씩 돌아가거나 밀이나 올리브와 같은 종류의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어 있다. 단 한 군데도 그냥 놀리는 땅이 보이지 않는다. 아그리젠토에서 카타니아로 오는 풍경은 들판이 만들어 놓은 지상 최대의 낙원 쇼였다.

▲ 시라쿠사 고대 원형극장. 이 도시국가 또한 그리스 이민자들이 세운 것이다. 하지만 본국과는 독자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조문환 시민기자

◇원형극장

아침 8시에 버스를 탄 이후 근 7시간 만에 카타니아를 거쳐 도착한 시라쿠사는 무게를 잔뜩 잡고 있을 줄 알았다. 아르키메데스가 암호 같은 글자들을 벽에 써 놓고 뭔가 혼자 읊조리고 있을 줄 알았다. 아폴로 신전에는 소나 염소를 잡아 놓고 제사가 드려지고 그리스식 원형극장에는 플라톤이 그 지루한 국가론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치열한 수 싸움을 벌였던 참주 히에론은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고 있을 줄 알았다. 로마 백부장과 그의 병졸들에게 잡혀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사도 바울은 배가 난파되어 겨우 생명을 부지 했다고 하면서 배고픔과 오랜 뱃멀미에 죽겠노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산타루치아 다리 옆 광장에서 작은 저울 하나 들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었고 아폴로 신전 옆에는 바다 건너 튀니지나 알제리에서 왔을 법한 사람들이 어시장을 펼쳐 놓고 찾아온 관광객들과 흥정을 벌이기에 바빴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그리스식 원형극장은 그 색깔로 인해 마침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아빠와 함께한 금발의 어린 소녀가 무대 가까이에 내려가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치열한 수 싸움을 벌였을 참주 히에론을 대신해 현장학습 나온 유치원 어린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마니아체 성(Castello Maniace)에서 술래잡기 놀이 중이었다. 이튿날 아침 내내 바울을 찾아 다녔지만 그는 메시나해협 건너 레조디 칼라브리아(Reggio Calavria)를 통해 이미 시칠리아를 떠나 버렸고 로마에서 전도하기 바쁘다고 했다.

시라쿠사역에 내려 움베레티노(Ponte Umvertino) 다리를 건너 오르티지아(Ortigia) 섬으로 오는 구 시가지와 그 도로 양측으로 늘어 서 있는 르네상스식 건물들은 대부분 3층짜리 낮은 건물들로서 파스텔 톤의 색깔이 이탈리아 속의 이국적인 모습으로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 카타이아역 플랫폼. 바다의 수면과 플랫폼이 수평을 이룰 정도로 바다 수면이 높아 보였다. /조문환 시민기자

◇공정한 세월

호텔에 도착하여 주인장에게 세레노(sereno)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 봤다. 좋은 날씨를 일컫는 말이란다. 그러면서 사람의 경우에는 화내지 않고 밝고 좋은 얼굴을 가진 이를 말할 때 쓰기도 한단다. 언젠가 책에서 세레노 리더십이라는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쾌활하고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밝은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을 세레노한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숙소에 들어와 그 말을 확인하기 위해 번역기에 검색을 해 보니 '공정한 날씨'로 나왔다. 날씨가 공정하다? 어느 누구에게나 같은 하늘 아래 있다면 날씨는 공정하다는 뜻인가? 같은 장소에 있다면 상대가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그런 사람 말인가?

사람이나 신들이나 모두 세월 앞에는 공정하게 대접을 받는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 아그리젠토와 시라쿠사다. 아그리젠토는 신을, 시라쿠사는 사람을. 이 두 개의 도시에서 세월이라는 것 앞에 이들이 얼마나 공평하게 대접을 받는지 판단할 수 있다. 세월은 신이고 사람이고 모두 공정하게 대한다. 불멸의 도시처럼 여겨졌었던 베네치아도 오직 세월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하필이면 왜 시라쿠사역에서 움베레티노 다리를 건너 오르티지아 섬으로 오는 그 길목에서 세레노라는 단어가 생각났을까? 내일 아르키메데스에게 물어 봐야겠다. 그 저울을 가지고 무엇을 달아 볼 것이냐고, 로마군이 쳐들어왔을 때 왜 피하지 않고 수학 문제만 풀고 있었느냐고, 승자에 의한, 승자만을 위한 승자 독식의 역사에 있어서 공정이라는 말은 무엇이냐고.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