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소통하며 선곡…독특한 가사·묵직한 주제 매력
팬들 "심리치료받은 듯 위안 얻을 수 있어 계속 찾게 돼"

▲ 지난달 23일 창원 오색카페에서 열린 가수 이랑 공연. /기획자 허민지

지난달 말에 일주일 간격을 두고 두 번의 공연을 봤다. 3월 23일 창원 카페 오색을 찾은 가수 이랑(33)과 30일 진주 카페 다원에서 공연한 밴드 엉클밥. 사실 방송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고, 편안하고 익숙한 형식의 노래도 아니다. 그런데 공연장은 항상 관객들로 가득 차고 이들은 합창을 하며 열광한다. 이랑과 엉클밥 공연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요상한 환희는 무엇일까.

◇이랑의 라이브가 주는 굉장한 위로

솔직히 이번 이랑 공연은 거의 공연 막바지에 도착해서 분위기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는데, 뭔가 평소와 달랐다. 평소와 다르다는 말은 관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창원에서 이른바 인디로 불리는 가수들 공연이 열리면 대개는 그 가수의 열혈 팬 몇 명 아니면 가수와 친분이 있는 지역 음악가들, 그리고 그 음악가들의 친구가 찾아온다. 근데 이날은 생판 모르는 젊은 친구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오롯한 가수 이랑의 팬들이다.

이랑의 매력이야 원래 알고 있긴 했다. 그의 노래는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괜찮아요 다 잘될 거예요, 라며 예쁘게 격려하지도 않는다. 느낀 그대로의 괴로움이나 슬픔, 고통과 분노를 노래하는, 이랑은 그런 가수다.

"어려서부터 울 언니가 나보다 훨 예뻤어 얼굴도 작고 늘씬한 서구형 미인 그래서 내가 언제부턴가 멋 부리려고 했더니 못생긴 애가 멋 부린다고 어른들이 놀렸어 그래서 그랬어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난 그 말만 듣고 그럼 나랑 사귀자고 했어 그런 식으로 만난 남자만 해도 벌써 한 명 두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 여섯 명 일곱 명 여덟 명 (중략) 함부로 나한테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그렇게 말하지 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1집 <욘욘슨> 중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사)

"나는 언젠가 후회하게 되겠지 오늘 엄마의 전활 받지 않은 것 내 평생 아빨 용서하지 않은 것 키우는 고양일 세게 때렸던 것" (2집 <신의 놀이> 중 '가족을 찾아서' 가사)

그런데 그런 음악이 20, 30대에 엄청난 위로를 주고 있었다.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이랑님 공연을 봐서 너무 행복하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술을 마시고 시를 써야지.'

'죽고 싶을 때마다 듣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이 노래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이랑 공연을 본 이들이 SNS에 남긴 이런 글 속에 그 위로의 강도가 잘 드러난다. 힘든 입시 생활에서 힘이 되었다거나 심지어는 성폭행의 끔찍한 기억을 잘 견디게 해줬다는 말도 있다.

이날 공연을 기획한 음악가 허민지(28·창원시) 씨도 이랑의 열혈 팬이다.

"이랑 공연에 가면 우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되게 솔직한 아티스트라서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여성이 보편적으로 겪는 일을 함께 겪고 있다 보니 공연 현장에서 최근에 있었던 슬픈 일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그래요. 자신도 노래하면서 울기도 하고요. 이런 건 음반을 아무리 들어도 알 수 없고, 공연 현장에서만 가능한 거예요."

"또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지 인천 공항에서도, 나리타 공항에서도 울지 말자고 서로 힘내서 약속해놓고 돌아오며 내내 언제 또 만날까 아무런 약속도 되어 있지 않고" (미발매 곡 '환란의 세대' 가사)

개인적으로는 이랑의 라이브가 엄청난 위로로 작용하는 그 지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40대인 내가 겪지 못한 이 시대 젊은 친구들만의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 지난달 30일 진주 다원카페에서 열린 밴드 엉클밥 공연. /이서후 기자

◇세상과 공명하는 사소한 노래, 엉클밥

정서로 치자면 내게는 차라리 엉클밥 공연이 더 친근하다.

이번 3월 30일 진주 공연은 지난해 4월 정규 1집 앨범을 내고는 사정으로 1년이나 연기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인 셈이다. 지난해 4월 밴드 활동 8년 만에 1집 앨범이 나왔다. 공연을 자주 안 하기도 하지만, 공연을 할 때마다 늘 부르던 노래들이라 싫증 날 만한데, 그게 그렇지 않다. 록과 포크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펑크에 기반을 둔 그들의 음악 정신, 무덤덤하지만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한 가사들이 매 공연 관객에게 희열을 준다. 정말로 솔직히, 연주 수준으로 따지만 엉클밥 라이브 공연은 앨범보다 훨씬 못하다. 그런데 이런 연주에 사람들이 더 열광한다. 자유, 해방을 중요시하는 펑크라 가능하다.

무엇보다 엉클밥 노래는 가사가 좋다.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일상 속에서 문득 만들어진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삶과 세상에 대해서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것들이 많다.

"술에 취한 내가 던진 기타는 땅바닥에 울고 있었지 화가 난 내가 밟은 탬버린 아마 다신 춤을 추진 않을 거야 하얀 눈이 내려 모든 걸 덮었지만 그날 이후 난 더러운 새끼" (공동앨범 <허수아비들의 성탄절>에 실린 곡 '더러운 새끼' 가사)

"나쁜 사람이 있었다 나쁜 사람은 착한 사람을 만나 나쁘고 착한 사람을 낳았다 나쁘고 착한 사람은 강한 사람을 만나 나쁘고 착하고 강한 사람을 낳았다 나쁘고 착하고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만나 나쁘고 착하고 강하고 약한 사람을 낳았다…" (1집 <엉클밥> 중 '나쁜 사람' 가사)

어쩌면 이랑과 엉클밥 공연이 사랑을 받는 건 관객과 바로 소통할 수 있는 소규모 라이브인 덕분이기도 하다. 허민지 씨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소규모 공연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큰 콘서트와는 달라요. 가수가 관객들에게 듣고 싶은 노래 뭐예요, 하고 직접 불러 주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거든요. 이걸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 라이브를 계속 찾게 돼요. 공연을 보고 나면 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온 것 같은데, 실제 정신적인 문제로 병원 가기는 어려워도 공연장 가기는 쉽잖아요."

그러고 보니 이랑과 엉클밥 같은 음악가들의 공연은 차라리 현대인에게 필요한 집단 심리 요법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공연인가 치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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