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적 농사,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켜
흙 보살피는 전통농업에 미래가 있다

권력이란 상대를 무릎 꿇리고 복종하게 만드는 억지력이다. 지배 목적에 따라 정치권력, 문화권력, 경제권력, 군사권력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농사에도 권력이 작용한다. 일정 면적 안에서 더욱 많은 수확량을 내고 이익을 높이기 위한 목적을 지녔는데, 근대화 이후 갖가지 유독성 화학물질과 기계 종류들을 동원하는 산업적 영농법이 확산하면서 생겨난 권력이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미국 등은 WTO, 세계은행, IMF 및 다양한 '원조' 전략을 빙자하여 미국이 세계 전역에서 자원을 약탈하고 식량부족을 초래한 외교정책을 통해 시장 개방, 군사적 개입, 구조조정, 조건부 차관, 불평등한 무역협정 등의 지원을 받으며 작고 가난한 나라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농업자본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 이윤창출에 대한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한 전세계적인 계획 밑에서 움직였다. 가난한 나라들은 농업자본이 만들어낸 화학물질 의존적 농사방법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농사에 드는 재료와 인프라 개발을 위해 빚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예속적인 부채와 불리한 무역을 강요하는 글로벌 시스템으로 속수무책 끌려들어 갔다. 우리나라의 1970, 80, 90년대의 농업실태가 증명한다. 농업자본의 지배 아래로 들어간 한국 농업은 민족적, 지역적 경제가 서서히 무너져갔다. 마침내 한국 농업은 경쟁력이 없는 애물단지 취급 대상이 되어간다. 농업으로 소득 증대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어 간다. 농가 경영 구조는 악화하고 농촌 소득 감소는 인구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농촌인구는 1980년 1083만 명에서 1996년 469만 명, 2017년 245만 명, 2027년이면 2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인구 비중은 갈수록 증가한다. 농촌사회 전반의 붕괴를 우려하며 농정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한 긴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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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한 농사와 식량생산 방법은 전통적인 농사를 부정하고, 농민의 인간성을 말살하며 민족국가를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세계화의 제물로 만드는 농사권력의 실체다. 산업적 농사는 유독성 화학물질을 주된 도구로 삼기 때문에 온난화 가스의 주요 배출원인이 된다. 농기계의 운용에 필요한 석유와 화학비료, 농자재 생산물질, 축산동물들의 배설물이 그러하다. 토양의 유실과 산성화는 땅속 수질 악화에도 영향을 끼치며 생물종 다양성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특히 경운기, 트랙터를 이용한 경작방법은 흙의 세포 파괴를 가속화시켜 흙의 건강성을 해치게 됨으로써 사막화를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흙이 잘 보존되고 가꾸어진다면 기후변화의 위험 속에서도 어느 정도 대응은 가능하여 꼭 필요한 식량만이라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비참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거기에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전통농업을 알고 있는 농민은 단지 식량생산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만이 흙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는 지혜와 기술을 익힌, 어쩌면 인류 최후의 문명인들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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