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고 산업생태계 파괴 뻔해
고용창출 외치는 정책에 불합치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월 31일 산업은행은 갑작스럽게 대우조선의 매각 계획을 발표하였다. 대우조선의 현직 사장도 구성원인 노동자들도 거제시장도 모르게 기습적으로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3월 8일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넘기기로 하는 본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런 일련의 결정에 대해 대우조선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거제시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매각되는 것을 거제시민들은 왜 이토록 반대하는가?

첫째, 인수 합병의 명분과 이유를 신뢰할 수 없다. 어떤 이유로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해야 하는지 이유와 명분이 턱없이 부족하다.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무게를 뒀다고 하지만 경쟁력 강화와 같은 이유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대우조선이 조선 3사 중 유독 경쟁력을 잃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와 산업은행의 책임이다. 2016년 6월 14일 감사원의 감사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1)무능한 낙하산 인사를 한 점 2)방만한 자회사 경영을 한 점 3)조선경기를 읽지 못한 점 4)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무능과 안이한 자세' 등이다. 이에 반해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7.58%로 경쟁사 대비 가장 낮다(경쟁사는 각각 9.37%, 8.05%). 이것은 가장 낮은 급여를 받았거나 노동생산성이 가장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우조선 부실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명약관화하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대우조선의 매각을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밀실 협상에 맡겨야 하는가? 아무리 뜯어보아도 부실 특혜 매각이다.

둘째, 조선산업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거제경제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매각되면 거제와 부산·경남의 남해안 조선 기자재 벨트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대우조선은 조선 기자재 대부분을 남해안 조선 기자재 벨트의 1200여 개 중소기업을 통해 공급받는다. 이곳에서 연 3조가 넘는 조선 기자재가 대우조선으로 납품되고 있으며 7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조선 기자재 납품 방식은 다르다. 80% 이상의 기자재를 자회사나 그룹 체계에서 납품받는다. 대우조선의 매각은 곧 부산·경남 조선 기자재 벨트의 황폐화를 의미하며 협력업체 노동자와 가족들의 생계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대우조선의 현대중공업 매각을 막는 것은 거제경제의 파멸을 막는 것이며 부산·경남의 노동자들을 지키고 지역경제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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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력 감축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동종업체 간의 기업결합 목적은 경쟁력 확보와 설비 자본의 효율화에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력 감축은 전제 조건이며 피할 수 없다. 대우조선을 싼 가격에 판다는 것은 그 가격의 가치만큼만 남기겠다는 의미이다. 일터를 잃은 노동자가 절망의 끝에 서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정부는 고용창출을 위해 엄청난 국가예산과 행정력을 쏟고 있다. 대우조선 매각은 과연 일자리 보전과 고용창출이라는 정부 정책에 합치하는지 묻고 싶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성군과 삼천포에 조선특구를 만들고 방만한 정책지원을 하던 정부와 산업은행 아닌가. 불과 몇 년이 지나 기업결합을 해야 한다는 산업은행의 주장에 어찌 무조건 옳다고 찬성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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