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전 국가사적' 보존 일념으로 뭉친 파수꾼들
함안문화유적 지킴이 자처
주민 10여 명 93년부터 활동
개발 저지·연구·집필 '활약'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고대 가야 역사를 연구하고 복원하는 사업을 정책 과제에 포함할 것"을 당부했다. 가야사 복원은 국가적으로 중요해졌으며, 현재 민관이 앞다퉈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함안지역 아라가야에는 왕릉급 무덤을 포함한 크고 작은 고분이 곳곳에 산재한다. 그 고분에는 가야인의 인골과 목간 등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이 묻혀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 시절, 일제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증거를 찾고자 가야 고분 발굴에 열을 올렸고, 이후 상당수 유물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됐다. 짐작하건대, 대부분 일본으로 빼돌리거나 악덕 골동품상에게 넘겨졌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처럼 가야역사와 유적에 대한 관심이 무지했던 1993년 당시, 1400년의 찬란한 아라가야 유적지 보호를 위한 민간 파수꾼이 등장한다.

▲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회원들의 모습. 왼쪽부터 배종대, 이완수, 구순근, 이순일, 조희영(회장) 순.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그해 7월 당시 재일교포이던 정현규(작고) 선생이 이른바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라는 순수 민간단체를 구성하면서부터 국가사적 고분군 보호에 앞장서게 된다.

아라가야 파수꾼에 대한 정현규 씨의 열정은 쇠약했던 건강 탓에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 건설업을 하던 현 조희영(71) 씨가 회장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아라가야 유적 지킴이 역할에 앞장서 오고 있다.

토기와 철기문화가 왕성했던 아라가야 시대. 1992년 함안 가야읍 도항리 마갑총에서 국내 최초로 발굴된 철제 말갑옷(마갑·馬甲)이 대표적이다. 이 말갑옷은 그해 아파트(현재 해동아파트) 공사 도중 주차장 터에서 신문배달 소년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때마침 공사장을 지나던 소년이 독특한 모양의 녹슨 쇳조각을 발견해 신문지국장에게 말했고, 지국장이 이를 신고해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현재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를 벌인 것이다.

온전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낸 말갑옷은 쇠를 비늘처럼 잘라 연결한 찰갑이었다. 형태가 다른 쇳조각 450여 개를 연결해 길이 226~230㎝, 너비 43~48㎝의 갑옷으로 만들었다. 보호 부위에 따라 비늘 조각의 크기는 서로 달랐고, 비늘의 연결 상태는 질서정연했다. 줄을 꿰는 구멍도 정교했다. 철의 나라, 아라가야의 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철제 유물이었다.

▲ 함안 가야유적지에서 발견된 말갑옷. 말갑옷 전체 원형이 드러난 건 함안 가야유적지가 최초였다. /함안군

이러한 국보급 유물, 유적들이 당시 현대화에 따른 개발논리에 짓눌려 파괴되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들이 목격되면서,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회원들의 활동은 왕성해진다.

일정한 회원 규모를 갖추거나 지자체나 문화재보호기관 등에서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오로지 지역 내 문화유적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하나로, 뜻있는 10여 명의 조촐한 인원이 전부였다.

이들은 1994년 말이산 고분군 유적지 내 중간 지점에 들어설 계획이던 함안군의회 의사당을 설계변경을 통해 현 위치로 이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듬해 작고한 전원용 당시 관선 군수시절 계획했던 고분군 내 너비 2.5m의 도로개설을 막아낸 일화는 그 당시 함안지역을 넘어 전국적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아라가야 권역이던 칠원읍 유원리 칠원산성에 대한 석산 개발을 막아내고자 투쟁을 벌여온 이 단체는 사업자로부터 거액의 금전 로비에도 휘말리지 않았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들의 일관된 집념은 1999년 왕궁지로 추정되는 가야읍 선왕동 일대 들어설 계획이던 1000여 채의 아파트 건립을 무산시켰고, 왕궁지 내 당시 함안종고(현 함안고) 농업학교 건립을 도교육청과 장기간에 걸친 투쟁 끝에 무산시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

또 2010년 함안면 봉성리 일대 국립 원예시험장이 들어설 전체 터에 청동기시대 고인돌 발굴을 요청해 당시 옥숫돌과 붉은관토기 등 100여 점을 발굴한 사례 또한 큰 업적으로 남을만 하다.

지난 2015년에는 국가사적인 말이산 고분군 내 수목정비를 벌이던 공사 업체가 인력작업으로 해야 할 일을 중장비를 동원해 공사를 벌이다 이들 연구회에 적발돼 공사 중지와 함께 원상복구토록 한 것은 이들 숨은 파수꾼의 역할이다.

이들 연구회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97년 '안라국 관련 논문집' 발간을 계기로 이듬해에는 지역 내 유적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안라고분군>과 <함안고인돌>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향토사연구회 회원들이 일일이 발품을 팔아 기록하고 집필한 작품들이다.

2002년 펴낸 <함안문화유적분포지도>는 말이산 고분군과 남문외 고분군을 비롯한 국가 사적지와 문화유적지로 추정되는 함안지역 분포도를 발품을 팔아 직접 제작한 자료들로, 현재 행정 기관에서도 <함안문화유적분포지도>를 근거로 각종 개발허가에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으면서 기관으로부터 수없는 표창을 건의받았지만, 일체의 수상을 거절하고 있다.

조희영 회장은 "함안지역은 선사시대부터 마을을 형성해 성읍 국가를 이루었고, 이후 안라국의 중심 세력으로 신라·백제·고구려와 더불어 가야시대를 열어간 엄연한 4국을 이루어 왔음에도, 문헌적 사료의 미미함과 열악한 연구 여건 등으로 은폐 또는 왜곡 축소돼왔음을 안타깝게 여겨왔다"고 말했다.

최근 조 회장은 행정기관에 개발제한 관련한 대책을 건의하고 있다. 왕궁지나 유적지 주변을 둘러싸고 펜션 등 위락시설이 들어설 계획이라는 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오늘도 고심이 크다.

◇임나일본부설 = 일본 야마토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고 지배했다는 주장으로, 일본의 한국사 왜곡 사례 중 하나. 2010년 3월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사실이 아니며, 용어 자체를 폐기하기로 합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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