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몸에 익어가는 6년차 농부
그래도 자연은 매해·매일 다르다

겨울에는 푹 쉬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농사가 시작되는 봄이 오면 몸이 먼저 들썩거린다. 추위에 웅크려 있던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 신기하다. 가장 먼저 감자밭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감자밭을 다 만들면 생강밭, 고추밭, 고구마밭 심는 차례대로 거름을 넣는다.

처음 농사를 지었을 때는 늘 한 박자씩 늦게 일을 했다. 마을 어르신이 "감자 심었나? 장마 전에 캘라모 퍼뜩 심어야 할 낀데" 하시면 그제야 서둘러 감자를 심었다. 나름대로 책을 보며 공부를 했지만, 책만으로 농사를 척척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부랴부랴 따라서 일을 하는 날이 많았다. 올해 여섯 번째 농사를 짓는다. 이제는 몸이 때를 알고 농사를 준비한다. '이번 주는 감자밭에 거름을 넣고, 다음 주는 생강밭이랑 고추밭에 거름을 넣어야지. 참, 고추랑 가지 모종을 만들어야겠구나. 삼월 셋째 주쯤에는 쑥차 만드는 일을 시작할 테니까 그 전에 감자를 심어야겠다.' 이제는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언제 무얼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농사 흐름이 몸에 익은 것만으로도 농사일이 훨씬 여유롭다.

나는 올해 배운 걸 다음 해에 다시 하면서 더 좋은 농사법을 찾기도 한다. 사실 감자 농사를 십 년 지었다 해도 따지고 보면 감자를 열 번 심어 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농사를 지은 지 육 년이 되었지만 이제 겨우 초보 농부 티를 벗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날씨에 따라서 심는 날을 달리 정해야 하고, 심는 밭에 따라 거두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므로 잘 살펴 주어야 한다. 어느 해에는 벌레가 너무 많이 생겨서 골치가 아프기도 하고, 어느 해는 두더지가 밭을 헤집고 다니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걱정과 달리 작물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쑥쑥 잘 자라기도 한다. 자연은 늘 똑같지 않아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작물을 돌본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도 자란다. 그러나 욕심내지 않고 자연이 주는 만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감자 심고 거두고, 고구마 심고 거두고, 해마다 똑같은 일을 하는 게 지루하지 않아?" 하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도 아직은 농사가 지루할 틈이 없어. 농사를 지을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거든. 처음에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어.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해 나가고 있는데 나는 날마다 똑같은 밭에서 풀을 매고, 또 매고 있다는 게 덜컥 겁이 났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농사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어. 왠지 모르게 그 단순한 시간이 나에게 소중한 걸 알려 줄 거란 마음이 들었어.

농사일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그럴 땐 하루 쉬어가면 돼. 쉬다가 문득 '내년에는 고추 두둑을 조금 더 크게 만들어 봐야지, 내년에 이 밭에 생강을 심으면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해. 쉬면서까지 일 생각을 해야 하나 싶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들이 싫지 않아. 앞으로도 일과 삶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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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봄이 오면 어김없이 밭에 거름을 넣고 있다는 것이, 고된 농사일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농부로 살고 있다는 것이, 봄마다 새로운 추억이 피고 진다는 것이 새삼스레 고마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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