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않겠어 내 글 내 삶까지
프랑스서 문화계 한 획 그은 여성작가 콜레트 실화 바탕
남편 억압 속 대필하는 삶 벗어나 주체성 찾아가는 여정

<콜레트>는 프랑스에서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첫 여성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의 초창기 얘기를 다룬 영화다. 콜레트는 남편 앙리 코티에 발라르(필명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한 소설에 대한 권리를 되찾은 후 활발히 글을 썼고, 여성의 욕망을 주제로 대담하게 표현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 배우, 댄서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다. 콜레트는 프랑스에서 사회적 명예를 얻은 첫 번째 여성이라고 불린다.

▲ 영화 속에서 재현된 프랑스 작가 콜레트의 모습. /스틸컷

#1.

프랑스 생 소뵈르에 사는 콜레트(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글쟁이 사업가 윌리(배우 도미닉 웨스트)와 결혼을 해 파리로 이주한다. 목가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파리는 동경의 대상이다. 파리의 내로라하는 여성 대신 자신을 선택한 윌리가 고맙다. 하지만 파리 생활은 지루하다. 살롱의 파티장에 참석한 자신이 보석으로 치장되어 진열된 살아있는 거북이 같다.

윌리는 유명 인사다. 유령 작가를 고용해 재능을 착취하며 자신의 명성을 유지해나간다. 여성 편력도 심하다. 콜레트에게 사랑한다고 늘 말하지만 "파리에서 외도를 하지 않는 남자는 없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윌리의 사업은 순탄하지 않다. 채무가 쌓여만 간다. 윌리는 콜레트에게 글을 써보라고 권한다. 콜레트는 평소 편지를 썼는데, 윌리는 그녀의 재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콜레트는 남편을 위해 펜을 든다. 자신의 10대를 회상하며 <학교에서의 클로딘>을 완성한다. 책은 윌리의 이름으로 출간된다.

실제로 1900년에 출간한 <학교에서의 클로딘>은 시골에서 들판과 숲을 쏘다니는 클로딘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젊은 여성이 책 구매를 이끌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 파티에 빠져사는 콜레트의 남편. /스틸컷

#2.

윌리는 <학교에서의 클로딘>이 흥행하자 제멋대로 출판사와 차기작을 계약하고, 자연을 그리워하는 콜레트를 위해 별장을 선물한다. 하지만 윌리의 노림수다. 아내에게 글쓰기를 강요한 윌리는 급기야 그녀를 별장에 가두고 만다.

콜레트는 소리치지만 이내 펜을 든다. 그리고 <파리의 클로딘>을 완성한다. 이 책도 윌리 이름으로 출간한다.

책은 새로운 여성상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클로딘'은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클로딘에게 열광하는 독자는 머리 모양과 옷을 흉내 내고 클로딘의 로고가 붙은 비누와 향수, 부채가 불티나게 팔린다. 윌리와 콜레트는 파리 최고 유명부부가 된다.

콜레트는 윌리가 저자가 된 현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글임을 알아봐 주는 미시(배우 데니스 고프)가 좋다.

콜레트는 순종적인 아내가 아니다. 윌리는 클로딘 속에 파묻혀 젊은 여성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남편의 외도 속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자유를 찾는다.

미시와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미시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는 않는 것이다.

미시는 콜레트에게 "목줄을 느슨하게 맸다고 목줄을 안 맨 것은 아니다"고 말하며 자신이 클로딘인지, 콜레트인지 결정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미시는 훗날까지도 콜레트의 정신적 지주이자 연인으로 남는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콜레트는 남편의 강압 속에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다. 또 책으로 얻게 된 부와 명성을 마다치 않고 남편과 함께 나누고 즐겼다. 이를 두고 누가 콜레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영화를 아주 평면적으로 예상한 관객이라면 콜레트의 다양한 심리 변화에 당황할 수 있겠다. 하지만 콜레트는 이제 자신을 가두려는 남편 앞에 서 있지 않다.

▲ 글감을 생각하고 있는 콜레트. /스틸컷

#3.

콜레트는 글쓰기를 관둔다. 윌리와도 헤어진다. 남편은 온갖 거짓말로 자신을 속여왔고 급기야 클로딘 시리즈의 판권을 팔아넘겼다. 윌리는 남자인 자신이 알아서 다 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콜레트는 "클로딘은 나 자신이었다. 이제 클로딘은 죽었어. 이제 난 클로딘을 넘어섰어"라고 말한다.

그녀는 프랑스 촌구석을 떠돌며 삼류 극장에서 배우로 산다. 생계를 위한 선택이다. 콜레트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자신에게 기쁨이자 고통인 글쓰기를 고민한다.

그리고 영화 <콜레트>는 끝이 난다.

대필작가로 문학계에 첫발을 내디딘 콜레트는 이후 자신의 이름을 찾고자 나섰고, 결국 클로딘에 대한 판권을 되찾는다.

콜레트는 직설적이고 간결한 문체로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또 식물과 고양이를 사랑하며 자연을 아름다운 문학에 녹여냈다. <지지>, <암고양이>, <셰리>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가 됐고, 연극화한 <지지>의 여주인공으로 오드리 헵번(1929~1993)을 섭외하기도 했다.

콜레트는 81세로 타계하기까지 작품 70여 권을 남겼고 프랑스 아카데미 콩쿠르 회장직을 맡으며 문화계를 이끌었다. 말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콜레트의 장례는 프랑스 여성 가운데 처음으로 국장으로 치러졌다.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은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굴욕적인 여자의 삶을 영위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고 말한 콜레트.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렸던 책 <순수와 불순>처럼 콜레트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주체적인 여성 그 자체로 남았다. 이 영화는 창원 씨네아트 리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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