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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수의 생생 베트남] (2) 신짜오 호찌민

비행기서 한번도 울지 않고 내 딸 너무 기특해
집 떠나 아프면 가장 서러운 법, 예방접종에 비상약 한가득 구입

김해수 기자 hskim@idomin.com 2019년 04월 03일 수요일

임신 4개월차. 국밥집 출입문을 열자마자 닫고 나와야 할 만큼 입덧이 심했다. 우울감에 빠져있을 무렵, 태교를 핑계로 기분전환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가족여행계의 스테디셀러 '괌'.

기내에 들어서니 단체 가족캠프라도 가는 양, 아이 동반 승객이 대부분이었다. 이륙 얼마 후. 복도 건너편에서는 예상했고,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훌쩍거리더니 '빵'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몇 분이 지나도 그칠 줄 몰랐고, 급기야 구토를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부모도 안타까웠지만, 진주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양손으로 엄마 어깨를 꽉 쥔 아기가 몹시 안쓰러웠다.

6개월도 안 된 딸과 비행기 탈 생각을 하니 그때가 떠오른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무슨 미안할 일이 그렇게 많다. 이번에도 괜한 고생만 시키는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한 짐이다. 더 꼼꼼하게 준비하겠노라 다짐했다.

▲ 출국 전 예방접종을 하고자 병원을 찾았다. 진료 받는 딸보다 딸바보 남편이 더 긴장했다.

◇출국 준비

집 떠난 서러움의 최고봉은 뭐니뭐니해도 아플 때지 싶다. 베트남에서도 예방접종을 할 수 있다지만, 가능한 한 한국에서 하고 가고 싶었다.

딸 3차 예방접종부터 알아봤다. 출국일이 접종 가능한(권장) 날짜에서 며칠 빠졌다. 병원에 문의하니 떠나기 직전에 맞으면 문제없단다. 시크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답변이 신뢰가 갔다.

출국 이틀 전 아이가 다니는 병원을 찾았다. 베트남에서 유행하는 홍역 예방접종도 함께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딸은 어려서 주사를 맞을 수 없단다. 생후 6개월 이후에 가능한데 딱 4일이 모자랐다. '안 맞는 것보단 맞고 가는 게 낫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으나 보건소 답변은 단호했다.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남편과 나만 팔뚝에 주사 한 대씩을 맞았다. 나오는 길에 약국에서 비상약을 한가득 구입했다.

국가별 전염병은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나라에서는 특정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 확인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입국을 위해서도 출국 전 확인은 필수다.

짐을 미리 싸야 한다는 생각은 진작에 하고 있었다. 엄두가 안 났을 뿐. 미루고 미루다 열흘 전쯤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다. 남편을 급히 호출해 메모지를 펼쳐놓고 준비물을 나열했다. 옷, 의약품, 아기 용품, 전자기기 등 카테고리별로 정리하고 보니 남편과 내 짐은 생각 외로 간소했다. 더운 나라라 옷 부피도 많이 차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딸 물건은 어디까지 챙겨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분유 포트, 부스터(휴대용 아기 식탁), 이유식기부터 분유, 쌀가루, 아기 과자 등등. 장난감은 어찌나 많은지.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도 속속 도착했다. 열 많은 딸을 위한 여름 매트와 베개, 딸에게 즐거운 수영 시간을 선물할 보행기튜브, 뜨거운 햇살로부터 딸의 소중한 피부를 지켜줄 래시가드와 선크림 등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20인치, 24인치, 28인치 캐리어 각 1개씩과 상자 1개, 노트북 가방 2개, 아기 가방 1개. 일단 짐을 넣어보기로 했다. 마감이 임박하면 글이 술술 써지는 것과 같은 원리랄까. 출발일이 가까워지자 일사천리로 정리가 마무리됐다. 이유식 냄비 하나를 두고 넣을까 말까 고민한 시간이 무색해졌다. 마지막 가방의 지퍼를 채우고 보니 밤 10시가 지났다. 열두 시간만 있으면 출발이다.

▲ 해열제, 소화제 등을 잔뜩 구입했다. 모두 버려도 좋으니 우리 가족 아프지 않길.

◇괜히 간다고 했나

여권을 만든 건 대학생 때다. 봉사활동을 하러 처음 여권에 도장을 찍은 후 종종 국외에 갈 기회가 생겼다. 여행, 취재, 어학연수 등 목적은 달랐지만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일은 익숙한 스트레스로부터 분리된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설렘이고 즐거움이며, 생기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뭔가 이상하다. 떠날 날을 떠올리면 속이 답답하고 매스꺼운 것이 잠들기도 쉽지 않았다.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한 계절에 달하는 긴 기간 아이를 건사해야 한다니. 책임감이 너럭바위처럼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불안이 극에 달하자 나도 모르게 "안 갈래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 가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투정에 가까웠다. 비행기 예약도 마쳤고, 짐도 반쯤 쌌을 때다. 남편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남편이 당황하면 왠지 모를 쾌감이 든다.) 남편은 침착하게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불안해요. 그런데 재밌는 일도 많지 않을까요? 물가가 저렴하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을 거예요. 휴일에는 바닷가로 여행 가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딸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거예요."

역시 성실한 남편이다. 반쯤 설득이 된 것처럼 "그래요?"라고 했더니 "다른 나라에서 살아볼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니까 즐겁게 지내다 와요"라며 나를 다독인다.

즉흥적으로 뱉은 말이었는데 남편 말을 듣고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 공항에 가고자 택시를 타러 가는 길. 꼭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짐이 많다.

◇4시간 날아 도착

아기 비행기 타는 법을 검색했다. 이착륙 때 기압 차가 커 아기가 놀라는 경우가 많단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재우는 것인데, 여의치 않으면 이착륙에 맞춰 분유를 먹이면 된다고 했다. 어른이 귀가 먹먹할 때 물을 마시거나 침을 삼키는 것처럼.

사실 이것도 부모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아기가 분유를 잘 먹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제 마음이다.

우선 딸을 최대한 굶기고서 비행기에 올랐다. 예습한 대로 비행기가 이륙하려고 엉덩이를 들썩일 때 젖병을 물렸다. 세상에. 젖꼭지를 쪽쪽 빨던 딸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후에도 도착까지 4시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내 딸은 효녀가 분명하다.

최근 비행기 사고 소식이 많아 바퀴가 땅에 닿을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 비행기는 좀 터프하지만 무사히 착지에 성공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이 딸을 안고 서 있었다. 잠깐 대화를 하고 있는데 승객들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한국 사람, 베트남 사람 할 것 없이 남편에게 매달린 딸을 보며 웃고 있다. 눈치를 챈 남편이 무심한 듯 딸이 잘 보이도록 고쳐 안았다. 숨길 수 없는 뿌듯한 표정을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곧 비행기 문이 열렸다. 공항 건물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 무지하게 더울 것 같던 베트남 날씨는 볕이 뜨겁지만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 꼭 초여름 같다. 6월까지 4개월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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