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풀꽃 먹어보고 향 맡아보고
'관심 가지면 보인다'재밌어 하는 아이

이른 봄 제일 먼저 피는 꽃 중에 봄까치꽃이 있습니다. 까치처럼 주변에 봄이 오고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꽃. 조금이라도 따뜻한 날이 이어지면 겨울에도 꽃이 핍니다. 봄까치꽃이 피어날 무렵이면 여기저기 쇠별꽃도 피어납니다. 광대나물은 '나도 봐달라'는 듯 앙증맞은 표정으로 살며시 고개 내밉니다. 점나도나물이란 특이한 이름 가진 식물도 있습니다. 양지바른 논밭 가에는 일찌감치 냉이가 꽃대를 밀어 올립니다. 냉이는 생각보다 종류가 많은 편입니다. 그냥 냉이도 있고, 황새냉이, 다닥냉이, 말냉이 같은 종류도 있습니다. 봄까치꽃, 별꽃, 점나도나물, 냉이 종류들은 대부분 땅바닥에 붙어서 자라는 식물들입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발걸음에 밟혀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봄이 깊어갈수록 꽃들은 더 많이 피어납니다. 앞다투어 핀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제비꽃도 피고, 민들레도 핍니다. 괭이밥은 건물과 건물 사이, 계단과 계단이 만나는 사각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습니다. 고양이가 뜯어 먹는 풀이라서 '괭이' 밥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식물입니다. 괭이밥 이파리를 살짝 뜯어 아이들 입에 넣어줍니다. 처음엔 거부감을 보이는데, 조금 있으면 다양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선생님! 시큼한 맛이 나요." "그래. 옛날에 소꿉장난할 때는 괭이밥 잎으로 김치를 담갔단다. 맛이 괜찮지?" "쌤! 저도 한입만 주세요." 점심시간에 짬을 내 선생님 따라나선 아이들 표정이 몹시 재미있다는 듯 반짝거립니다. 고개 들어 시선을 나무로 옮기면 매실나무에 핀 매화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선생님과 아이들한테 코를 대 향기 맡아보게 합니다. 모두 깜짝 놀랍니다. "매화 향기가 이렇게나 좋았어요?" 질문이 이어집니다.

운동장 옆 키 큰 느티나무에도 꽃이 핍니다. 아주 작은 꽃입니다. 나무 덩치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도 못 미칠 정도입니다. 느티나무 꽃과 열매는 자세히 관찰해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천년을 살아가는 나무치고는 씨앗이 정말 작은 나무입니다. 따라온 아이들에게 저렇게 큰 나무가 이렇게나 작은 씨앗에서 비롯되었단 사실을 강조합니다. 배고픈 시절 우리네 조상님들은 느티나무 꽃 따서 쪄 먹었단 얘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줍니다.

산수유도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정말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조그만 꽃망울 안에 마흔 개나 되는 꽃봉오리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산수유나무는 지난가을에 달린 열매를 아직도 달고 있습니다. 신구 조화가 절묘합니다. 새로운 꽃이 작년에 달린 씨앗을 억지로 밀어내진 않습니다. 가만히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신기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옛것과 새것이 교체됩니다.

화단 구석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앵두나무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빨간 앵두가 맛나게 달릴 거라 일러줍니다. 듣고 있던 아이들은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대체로 믿기 어렵단 표정입니다. 성급하게 핀 목련은 꽃샘추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뚝뚝 떨어져 내린 꽃잎이 매우 안쓰럽게 보입니다. 꽃 필 때와 꽃 질 때. 때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도 되새겨 봅니다.

윤병렬.jpg
지금까지 살펴본 풀꽃과 나무들은 모두 우리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입니다. 이른 봄부터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화단을 기웃거리며 관찰한 식물들입니다. 운동장 주변 숲을 거닐며 나무 얘기 나누고, 꽃향기 찾아 돌아다니며 만난 봄 손님들입니다. 다른 학교, 다른 직장 건물 주변도 비슷하리란 생각입니다. 관심 가지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업 시간에도, 산책 시간에도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한마디 말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발밑 풀꽃들에도 딱 맞는 말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