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서 만난 모두가 선생님이었다

"지훈아 낚시 갈래?"

"네, 아빠.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울산 간절곶 쪽으로 가볼까?"

"좋아요. 낚싯대는 제가 챙길게요. 아빠는 지하주차장에서 오토바이 가지고 오세요."

지훈이와 여행 다녀온 지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년 사이에 아들의 키가 더 커졌고 1년 전보다 조금은 더 의젓해졌다.

여행이 나와 아들의 생활에 많은 것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변한 건 아빠와 아들 사이의 관계였다. 나는 아들이 사춘기가 되기 전에 아빠와 친한 친구처럼 진한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보통 아들들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부모님 양육 아래 학교를 다니며 집에서 지낸다. 대학을 멀리 가면 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다 군대를 2년간 다녀오고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해서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아빠와 아들 가깝고도 먼 사이, 친해질 시기가 사춘기가 지나면 그냥 재미없는 사이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둘만의 잊지 못할 추억 만들기는 사춘기가 오기 전 초등 5~6학년이 적기라 생각했다.

지훈이와 김해를 출발해 차들이 꽉 막히는 부산 해운대를 지나자 송정해수욕장부터 동해 바다가 펼쳐졌다. 울산 간절곶을 얼마 안 남겨두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 바닷가 쪽 작은 해안공원 주차장이 보여 오토바이를 주차한다.

▲ 아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최정환 시민기자

◇이방인

해안 갯바위에는 파도가 일으키는 포말이 크게 부서진다. 바닷바람이 제법 세다.

"지훈아 오늘 날씨 보니 완전 꽝이다. 파도가 높아 오늘 고기 잡기는 힘들겠는데?"

"아빠! 고기 좀 못 잡으면 어때요. 시원한 바다만 바라봐도 좋은데요."

지훈이 손을 잡고 바닷가에 내려가 주위를 돌아보는데 자갈 한쪽 옆 구석진 곳에서 4~5명의 외국인 남자들이 고기를 굽기 위해 숯불을 피우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우리나라에 일을 하러 온 외국인들이며 작년 우리가 여행하면서 수없이 봐왔던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지훈이와 나는 그들에게 다가간다.

"우리는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앗살라이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저도 아빠랑 작년에 오토바이 타고 키르기스스탄에 갔었어요."

지훈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에게 현지말로 인사말을 건넸다.

그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정말 우리나라 키르기스스탄을 갔었다고요?"

"네, 거기서 나술 아저씨도 만나고 주르마 형도 만났어요. '비쉬켁' '이식쿨' '송쿨' '오시' 다 다녔어요."

처음에 우리가 다가갈 때 긴장하던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이야기가 나오자 어느새 미소를 띠며 옆 자리를 내어준다.

"지금 무슨 요리 만들어요? 혹시 샤슬릭?"(러시아식 숯불꼬치구이)

고기와 함께 쇠 꼬치가 보여서 내가 물었다.

"네, 소고기로 샤슬릭을 만들고 있었어요. 좀 있다 익으면 드시고 가세요."

◇여행자들의 친구

그들은 울산 근처 작은 공장에서 나무 팰릿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하늘을 보며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지만 언제나 이방인 대우를 받는 그들이다. 그들은 한국의 작은 아이가 다가가도 항상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지훈이와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하며 그런 사람을 너무나 많이 만나고 왔다.

첫 여행지였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이고르', 아이에게 총 쏘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자르갈', 벨로고르스크에서 헬기를 태워준 '알렉산더', 한밤에 길을 잃고 헤맬 때 도와 준 '알렉세이 샤샤 디마', 폭풍을 앞에 둔 우리를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로 인도한 '헤지스렁', 몽골사막에서 만난 부제 가족, 몽골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 '질', 키르기스스탄 송쿨 호수에서 환대해준 '주르마',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황현정' 씨, 스위스 취리히에서 자신의 집을 숙소로 내준 '마이클', 마지막으로 프랑스 툴롱에서 만난 씨몽-손보리 씨 부부. 그 외 셀 수도 없을 만큼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한국인들 눈으로는 못 보는 진짜 '한국'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서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 했을 건데도 그들은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어 나와 지훈이에게 잘 곳을 내어주고 먹을 것을 나눠 줬다. 어설픈 한국말이지만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때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123일 동안 바이크의 좁은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아이를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하지만 아빠와 단 둘이 보낸 시간들도 훗날 잊지 못할 예쁜 추억이 되겠지. 지나고 생각해보니 지훈이에게는 지나는 길이 학교였고 만나는 사람들이 선생님이었다.

◇여행에 정답은 없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해외여행을 떠나지만 모든 여행에 정답은 없다. 사람들마다 목적도, 방법도 다 다르다.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 길을 걷기도 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생 아들과 둘이 다녀온 여행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4개월 123일의 여행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평생 잊지 못할 나와 아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둘만의 영화 한편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저기요, '샤슬릭' 다 익었어요. 어서 와서 드세요."

"지금 갈게요. 원래 술은 안 드시니 우리가 음료수라도 좀 사 올까요?" <끝>


<경남도민일보>에 아들과 함께한 여행기를 1년 넘게 연재하게 되어서 너무나 큰 영광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좋은 기사를 위해 계속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아빠고래 최정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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