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도 티타임은 계속됐다
집안 홍차관리 맡던 제인
그의 작품에도 단골 등장
홍차 하동 사투리 '홍잭살'
순하고 담백한 맛 특징

'시간이 이른 아침이라면 첫 번째 할 일은 차를 끓이는 것이다. 차는 움츠린 영혼을 북돋워주는 가장 탁월한 약이다. 그러고나서 우리는 다양한 임무를 시작한다.'(제인 오스틴 작 <오만과 편견> 중) 영국 출신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은 홍차를 좋아했다. 책 <오만과 편견>과 <엠마>에는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국 차문화 작품에 오롯이 = 제인 오스틴은 영국이 사랑하는 작가다. 그는 영국 BBC가 선정한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 부문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여성에게 제약이 많았다.

작가로서 글을 써도 본명을 숨겨야 했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오빠에 의해 알려졌다.

제인 오스틴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영국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를테면 만찬회, 무도회, 구혼 등이다. 그의 작품에는 홍차가 자주 언급된다. 홍차는 사교문화의 중요한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한자리에 모여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꺼내어 서로의 주의를 끌고 있었으므로 패니는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차를 마시고 나자 휘스트를 한 판 벌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어. 차를 마실 시간이 되면 그때 차만 마시겠어.'(<맨스필드 파크> 중)

17세기 동양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차는 왕실과 상류계급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차 문화는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전해졌다.

제인 오스틴은 집안에서 홍차를 직접 구매하고 관리하는 티 소믈리에였다.

'제인 오스틴은 구입한 차를 아무나 꺼낼 수 없도록 차 보관함에 넣고 자물쇠로 잠갔다. 식사 때나 손님이 방문했을 때 그녀는 직접 차를 준비했다. 조카 캐럴라인 오스틴은 <나의 고모 제인 오스틴>에서 "아홉시면 고모는 아침식사를 만들었다. 이것은 고모가 맡은 집안 일이다. 차와 설탕은 고모의 감독 아래 있었다"고 기억했다.'(<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중)

그가 자주 갔던 찻집은 트와이닝스며 좋아하는 도자기 브랜드는 웨지우드였다. 트와이닝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 홍차 브랜드다.

▲ 홍차에 유자와 구기자, 생강을 넣은 유자홍차. /김민지 기자

◇부드러운 하동 '홍잭살' = 서양은 찻잎이 검다고해 홍차를 블랙티(black tea)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차의 빛깔이 붉어서 홍차(紅茶)다. 홍차 원산지는 중국, 인도, 스리랑카, 히말라야 등 다양하며 우리나라에서도 홍차를 만든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에이티(A.tea)는 하동 홍차로 만든 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순애(53) 사장은 홍차를 홍잭살이라고 불렀다. "홍잭살은 홍차와 같은 발효차로 하동 방언이다." 그는 녹찻잎을 80% 정도 발효시킨 홍잭살과 홍잭살에 맨드라미·유자·구기자·사과 등을 섞은 블렌디드 티를 판다.

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녹차, 백차, 우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다. 녹차는 발효를 거의 하지 않은, 생잎에 가까운 차다. 녹차는 잎을 딴 후 뜨거운 솥에서 덖어 수분을 제거해 만든다. 이에 반해 홍차는 찻잎을 발효시켜 만든 차다.

이순애 사장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녹차를 겉절이, 홍차를 묵은지라고 비유했다. 그는 "차 하면 흔히들 어렵다, 예의를 갖춰서 먹어야 한다, 풀맛이 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홍차는 녹차와 달리 발효차라 물의 적정온도가 따로 없으며 펄펄 끓는 물에 우려내면 된다"고 말했다.

▲ 홍차는 찻잎을 발효한 차로 붉은 색을 띤다. 홍잭살은 일반 마트에서 파는 홍차보다 색이 옅었다. /김민지 기자

이 사장이 홍차를 건넸다. 마트에서 파는 홍차 티백과 달리 색깔이 연했다.

향을 음미한 후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진하고 떫은 맛일 거라고 생각했건만 오산이었다. 순하고 부드러웠다. 목넘김도 가벼웠다.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온 몸으로 퍼졌다.

이 사장은 "일반 홍차와 달리 하동 홍차는 순하고 담백한 게 특징이다"며 "홍차 초보자는 스트레이트 티(한 가지 찻잎으로 우려낸 것)보다는 홍차에 진피, 사과, 생강 등을 섞은 블렌디드 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차는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휴식과 같다. 차를 우려내는 동안 자신을 되돌아보고, 차를 마시면서 나쁜 감정을 씻어낸다.

이 사장에게 홍차는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홍차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차를 마시면 자기도 모르게 '맛있다', '좋다'라는 감탄사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는 곧 자신의 순수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홍차, 계피홍차, 맨드라미홍차, 유자홍차. /김민지 기자

<홍차를 쉽고 간편하게 즐기는 법> 티팟(차 주전자)에 차를 2~3g(티 한 스푼 정도)을 넣고 3~4분 우린다. 만약 연하게 즐기고 싶으면 시간을 더 짧게 해서 우린다. 진하게 즐기고 싶으면 시간을 더 길게 잡으면 된다. 취향에 따라 과즙이나 우유, 꿀이나 시럽을 첨가해 먹어도 좋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