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만에 핀 난초 꽃 보고 벅찬 고마움
당연한 듯 여긴 것들의 빈자리 돌아봐

베란다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5년 만에 앙증맞은 연분홍 꽃봉오리를 살포시 안고 온 난초과에 속하는 난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예쁜 꽃말을 가진 꽃이다. 공기정화 기능도 있다며 근처에 사는 친구가 선물로 준 화분이다. 꽃이 가득 핀 화분을 선물 받아 몇 달간 은은한 향기를 지닌 꽃을 보면서 기뻤다. 친구는 해마다 예쁜 꽃이 피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꽃이 한 번 지고 난 후 몇 년간 꽃은 피지 않고 잎만 자라고 있어 안쓰러웠다. 마치 바쁜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아 물을 줄 때마다 미안했다. 나름 영양제도 주고 물도 주며 꽃 피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꽃은 피지 않고 베란다 한쪽에서 잎마저 말라가는 듯했다. 환하게 꽃 핀 화분의 화사한 기억이 선명하기에 그날의 느낌을 언젠가는 받고 싶었다.

잎만 무성한 화분에 계속 몇 년간 관심을 주며 물을 주었다.

겨울이 끝날 무렵 햇살 가득한 날, 푸른 잎 속에서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를 보며 무척 기뻤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한동안 화분 앞에 앉아서 꽃잎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꽃잎을 닦아주는 손길이 떨렸다.

때론 오랜 기다림에 야속하기도 한 난을 조심스럽게 닦으며 늦게라도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고 속삭였다.

부재중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늘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늘 곁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존재는 부재중에 비로소 확인되는 것이다.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사랑했던 사람도 언젠가 떠날 것이다. 숨 쉴 수 있는 공기도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눈만 뜨면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 푸른 하늘의 부재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존재할 때는 당연히 곁에 있으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부재중에 하나씩 그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대부분 좋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내 마음과 다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어서 두터운 신뢰를 받고 우정을 나누고 싶지만, 가끔 오해를 받거나 야속하게 생각하는 지인도 있을 것이다.

사람도 꽃과 마찬가지이다. 당장 꽃이 피지 않더라도 물이나 영양제 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다면 꽃도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식물을 통해서 느꼈다.

이제는 일기예보에도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며 외출 자제까지 알려주고 있다. 숨 막히게 뿌연 하늘과 도시의 우중충한 모습을 며칠 동안 보고 있으면 혼란스럽다. 미세먼지뿐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극도로 위협하는 초미세먼지 농도까지 높아지고 있다.

감기에 목이 잠긴 지 오래다. 보통 며칠 약을 먹으면 낫는 감기도 오랫동안 내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면역이 약해진 탓인지 계속 내 몸에 남아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이 역시 부재중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거리마다 벚꽃이 활짝 피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잠시 미세먼지의 걱정은 접어두고 꽃구경에 현혹되고 싶다. 오늘 하루도 '눈부시게 살자'는 여배우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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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에 눈 부신 긴기아난의 꽃망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꽃차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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