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거제포로수용소 배경, 포로 탭댄스단 사연·열정 그려
바흐 '평균율 1권 1곡 프렐류드' 전쟁 지나 귀향 앞둔 심정 표현

'재즈가 뭐야?' 평소 잘 몰라 궁금했고 왠지 매력적이라 여기던 참에 일가견이 있는 후배에게 던진 질문이다. 친절한 설명이 이어지고 함께 흘러나오던 음악을 듣던 중 '참 좋은 연주다'라고 하기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이게 왜 좋은 연주야?' '스윙이 있잖아요'. 이제 스윙이 뭔지 물어보는데 포기한 듯 바라보기에 이해하는 척 넘어갔었다.

그리고 몰래 찾아본 어학사전, '스윙풍으로 연주하다'. '그러니깐 스윙 풍이 어떤 거냐고?' 아무튼 스윙이라는 것이 영화 <스윙키즈>의 주인공 말을 빌려 사람 환장하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swing, swing, swing(스윙 스윙 스윙)'이라는 멋진 곡이 있으니 어떤 풍인지 들어볼 일이다. 15년 전쯤 재미있게 본 일본 영화 <스윙 걸즈>의 마지막 장면,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오른 소녀들이 연주했었고 영화 <스윙 키즈>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주인공들은 이 곡에 맞춰 그들의 흥을 펼치니 스윙의 대표 곡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제목부터가 스윙을 세 번이나 외치고 있지 않은가.

◇대립

한국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 북으로의 송환을 원하는 포로들과 남쪽에 남으려는 이들이 또 하나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양립하고 있다. 당연 서로간의 대립이 첨예하다. 소장은 수용소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자신의 입지를 세울 계략에 브로드웨이 출신의 흑인 하사 '잭슨'에게 탭댄스단을 만들 것을 지시하지만 이런 곳에서 탭댄스라니 터무니없는 명령일 뿐이다. 하지만 그곳엔 정식으로 춤을 배운 적이 있는 북측 포로 '로기수'가 있었다우연히 그의 춤을 목격한 잭슨은 그를 댄스단으로 끌어들이고 먹보 중국인포로를 포함한 다양한 사연을 지닌 포로들이 함께 춤을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인민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로기수는 자신이 미제 춤에 미쳐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하여 조심스럽지만 그의 재능은 특별하였고 춤이 주는 짜릿함에 매료되어 점차 탭댄스에 빠져들게 되면서 영화는 흥겹게 흘러간다. 외신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병장에서 탈을 쓴 채 좌충우돌 벌이는 춤판, 포로들을 괴롭히는 미군들과의 댄스배틀 장면 등 춤이 주는 시각적 쾌감이 한껏 무르익을 즈음 사상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의 친구 '광국'이 수용소로 끌려 오면서 영화는 다시 잔인한 현실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그의 주도하에 남측 수용소와 북측 수용소의 대립은 더욱 깊어지고 미군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는 와중 광국은 점점 로기수의 행동을 의심하게 된다. 서로가 의심하고 죽고 죽이는 살벌한 현장, 하지만 이미 그 어떠한 것도 주인공 로기수의 춤에 대한 열정을 빼앗을 수 없다. 잭슨을 죽이고 자신의 사상을 검증할 기회조차 걷어차 버린 로기수에게 이제 남은 것은 가족 같은 댄스단원들과 잭슨밖에 없는 것이다.

▲ 영화 <스윙키즈> 스틸컷. /스틸컷

◇비극

혼자 버려진 사랑하는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의 전쟁에 영문도 모른 채 참전한 중국 젊은이, 사상으로 뭉쳐진 듯하지만 타고난 춤꾼 로기수, 그리고 이들에게 춤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또 한 명의 흑인 아웃사이더 잭슨. 이들은 이렇듯 가혹한 상황을 비웃듯 춤을 춘다. 잭슨은 로기수에게 카네기홀에서의 공연을 약속하고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만 현실이 혹독하기에 부질없으며 '너는 좋겠다. 돌아갈 나라가 있고 춤도 출 수 있어서'라는 로기수의 말은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의 한탄인 듯하여 서글프다. 이제 마지막 크리스마스 공연, 앞서 언급한 음악 'swing, swing, swing(스윙 스윙 스윙)'에 맞추어 그들은 춤을 춘다. 이때 잭슨은 곡의 제목을 이렇게 소개한다. '엿먹어 이데올로기(Fucking Ideology)'. 각자 춤을 시작한 이유가 달랐고 무대 뒤에는 검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으며 무대 앞의 사령관에게 이 무대는 자신의 안위를 위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들은 춤을 추고 있고 그럴 수 있기에 행복하다. 신명 나는 한 판의 춤 사위,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그들의 춤이 끝날 무렵, 사령관을 향한 테러는 실패로 돌아가고 댄스팀에게로 향해진 총구, 잭슨의 만류에도 발사된 탄환이 그들을 더 이상 춤출 수 없게 하고 만다. 부둥켜 안은 듯 바닥에 쓰러진 그들은 한마디 말이 없고 그들 앞에서 숨죽인 듯 눈물을 흘리는 로기수 또한……이렇게 시대는 젊은이들의 푸르른 목숨을 앗아 간다.

◇프렐류드

수용소 소장이 '잭슨'에게 본국소환의 기쁜 소식을 알리러 오는 장면, 이때 잭슨이 잔잔히 연주하던 귀에 익은 곡이 있으니 바로 독일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중 제1곡 전주곡(프렐류드·Prelude)'이다. 제목이 어렵다 느껴지겠지만 누구나가 들었을 선율이다. 총 2권으로 구성된 이 곡은 각 권이 똑같이 전주곡과 푸가 24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구 음악의 기초라 할 수 있는 12음계의 모든 장조와 단조가 사용되어 있다. 이러하기에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져도 평균율만 있으면 복원 가능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서양 음악의 기초를 이루는 조성의 기술적인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보여준 평균율은 아들과 제자들의 교육목적으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미 교본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건반음악에 있어 그 예술적 가치 또한 높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제1곡의 선율은 너무나 유명하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으며 가장 매력적인 활용은 역시나 프랑스의 작곡가 '구노'가 이 곡을 바탕으로 그 유명한 '아베 마리아' 선율을 입힌 것이라 할 것이다. 기초가 탄탄하니 그 위에서 마음껏 노닐 수 있는 것이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피아노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는데 그렇다면 신약성서는 무엇일까? 바로 '베토벤'의 32개 피아노소나타이다. 이러한 평가는 음악사에서 두 작곡가의 건반음악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하겠다. 음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곡의 그것도 첫 곡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에서 사용된 것 또한 인상적이다. 세상과 어울려 그것도 냉혹한 현실에 휩쓸리다 결국은 돌아가야 하는 시작점 고향, 소식을 전하는 출세밖에 모르던 소장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곡을 듣고 있으니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걸'. 음악에 있어서도 '바흐'는 고향 같은 존재인가 보다. 독일의 작곡가 '막스 레거'는 그를 두고 '모든 음악의 시작과 끝'이라고 했으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바흐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남겼다. 제1번 전주곡이 사용된 또 하나의 영화로는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주제곡 'Calling you'의 매혹적인 선율과 함께 영화의 분위기에 따라 연주방식을 달리하며 평균율이 지닌 표현의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많으니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감상해 보시라 권하는 바이다.

◇회귀

영화를 보며 처음을 생각한다.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이었던가? 생각의 차이로 서로를 헐뜯고 그것으로 인하여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시작일 리 없다. 그러하여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시대의 가해자로서 그리고 피해자로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 돌아갈래'라고 외쳤던 것이다. 순수로의 회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으로 돌아가기. 영화 <스윙 키즈>에 등장하는 '만철', 그는 항상 '로기수'의 옆에서 그를 인민영웅으로 칭호하며 닮기를 원한다. 아니 닮아보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수용소장의 스파이가 되고 만다. 왜? 자신의 할머니를 살리기 위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로기수'는 그를 닦달한다. 이때 만철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그는 사람으로서의 처음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었나 보다.

'미쳤냐?!'

'이념이라는거이 그거 다 사람이 만들어 낸 거 아이가. 왜 그것 땜에 우리 할머니가 죽어야 하는데, 이념 갖고 사람 죽이고 하는거이 미친거이지. 내는 지금이 제일로 말짱하다.'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산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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